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66회]
  • 관리자
  • 2010-06-04 10: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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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김일성의 집무실은 3층에, 서기실은 1층에 있었다. 나는 김정일을 자주 만나면서 그가 정치적으로는 영리하지만 성격이 과격하고 질투심이 강하며 수단을 많이 부리는 것으로 봐서 앞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괴면 나라의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에게서 권력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자라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름철에는 서기들에게 1개월간의 휴가를 주었는데, 나는 휴가를 주로 금강산이나 묘향산에서 보냈다.

내가 이 두 명산을 처음 찾은 것은 1961년 9월 제4차 당대회가 끝나고 나서였다. 김일성으로부터 휴가를 받은 우리 서기들은 모두 함께 금강산으로 떠났다. 나는 금강산을 처음 보고는 그 경치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일반 관광코스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물어서 찾아다녔다. 그 후로 나는 매년 휴가를 얻으면 금강산으로 갔다. 찾아가면 갈수록 더욱 반하게 되었고, 마치 떨어져 있던 애인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 장엄한 경치 앞에서는 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정도였다. 나는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해외여행 때도 가능하면 그 나라의 명산을 찾곤 했다. 같이 간 서기실의 동료들은 사냥을 즐겼으나 나는 사냥에 흥미가 없었다. 원래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았으나 금강산을 찾은 후부터는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또 하나의 취미는 잠자기 전에 동화를 읽는 것인데, 동화를 일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동심으로 돌아가 잠이 잘 온다는 실용가치를 노리다 보니 동화책을 읽는 것이 그만 취미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을 방문해서도 기회가 닿으면 그 나라 동화책을 구해오고 있다. 1963년 최용건의 아프리카 방문을 계기로 나는 주체사상을 군중노선에 기초하여 일단 체계화했다. 그 해에 나는 서기실 일에도 어느 정도 자신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이론문제를 심화시켜 나가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시절
마흔 두 살의 대학총장

서기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자신감을 찾고 있을 때, 나는 생각지도 않게 김일성대학 총장에 임명되었다. 그 전까지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중앙당 과학교육부장으로 있던 사람이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미 김일성이 김정일을 대학에 입학시키면서 대학초장으로서 좀 더 급수가 높은 사람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재학시절에 대학 당 책임비서와는 마음이 맞았던 모양이지만, 총장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김정일이 졸업하자 그 여동생 김경희와 김일성의 처남이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김일성의 후처 소생들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대학총장을 자기 심복으로 교체할 생각을 갖게 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김정일이 나를 추천함으로써 결국 내가 총장으로 임명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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