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56회]
  • 관리자
  • 2010-06-04 10:48:42
  • 조회수 : 1,652
질녀의 정신병은 그때까지도 고치지 못한 상태였다. 미친 질녀도 이럭저럭 나이 예순이 다 되었는데, 지금도 때때로 정신이 돌아오면 외삼촌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는 걸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애가 일생을 망치도록 방관한 잘못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누이를 보호하지 못한 것은 계급투쟁이론 때문이라고 하면 배부른 장삼이사들은 너무도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적 이익을 최상의 이익으로 보라고 주장함으로써 부모-자식 간이나 형제자매간의 관계를 갈라놓고 민족을 분열시켜 적대시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자기 의지대로 월남한 것이 아내에게 무슨 죄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가 있다고 해도 그 남편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다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계급투쟁으로써 계급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더 유력한 도적질로 도적을 없애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논리다. 도적은 없어질지 몰라도 도적질하려는 마음, 도적놈의근성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욱 강화될 게 뻔한 일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계급적 입장, 계급적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무의식적인 계급사회보다 더 무서운 의식화된 계급사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1950년대의 김일성
1958년은 북한역사에서 한의 전환점이 되는 해이다. 북한은 농업협동화를 끝내고 사회주의 경제제도 수립이 나름대로 완성되었다고 선포했다. 또 정치적으로는 국내의 반대파뿐만 아니라 소련파, 연안파를 숙청하여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가 확립되어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모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며, 인민들의 생활도 전쟁 직후보다는 눈에 뛰게 나아졌다.

만일 김일성이 1958년부터 10년간만 집권하고 물러났더라면 지금처럼 인민이 연간 100만 명씩 굶어죽는 사태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6.25전쟁을 일으켰다든가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든가 하는 것은 그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보다 큰 원인은 스탈린주의의 잘못,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 이론의 잘못이라고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계급투쟁의 원리에 따르면 계급적인 적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의의 전쟁과 부정의의 전쟁을 갈라놓고, 정의의 전쟁은 빨리 할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김일성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인 것만 가지고도 그를 존경하며 따랐다.

내가 삼척에서 징용살이를 하면서 김일성 장군의 독립투쟁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비록 과도하게 포장된 설풍이라 할지라도 그가 이끄는 민족의 군대를 한 번 보기만 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해방 후에 김일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북의 김일성이 빨치산에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받드는 것이 마땅하다.

진짜 김일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대단한 존재도 아니며, 또 허명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떻단 말인가.’ 나는 김일성만이 아니라 빨치산 출신들은 비록 무식했지만 그들의 용기를 존경했다. 그리하여 나는 최용건, 김일, 임춘추, 오진우, 백학림 등을 비롯한 모든 빨치산 출신 간부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