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19회]
  • 관리자
  • 2010-06-04 1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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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외국의 학자들과도 토론회를 열어 내 사상을 서서히 조심스럽게 전파했다. 토론회가 아닌 외국인과의 면담은 반드시 면담록 정리과에서 녹음을 하여 김정일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론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학술토론회라고 하면 녹음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학술토론회를 이용하여 북의 사정을 외국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알려진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김일성의 80회 생일이 든 1992년 4월로 접어들었다.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주체사상 국제토론회가 토오쿄오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래서 북한의 학자들이 평양에서 나고야까지 전세기를 타고 토론회에 대거 참가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북한은 외국학자들을 초청하여 전세기 편으로 평양에 돌아왔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외국학자들을 초청한 이유는 김일성의 80회 생일기념행사에 그들을 참가시키기 위해서였다. 인민들에게 외국에서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수령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음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여러 면에서 크게 발전한 일본에서는 주체사상의 진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 학자들과 깊이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없어, 토론회가 끝난 다음 한 열흘쯤 더 체류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학자들과 진지하게 토론하면 적지 않게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뜻처럼 안 되었다. 생일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토론회 성과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총련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지, 김정일은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는 토오쿄오 토론회에 참가했던 대표단을 목란관(김정일 전용의 연회장)에 불러 성대한 연회를 베풀기까지 했다. 대표단은 김정일 전용의 예술단 공연도 보면서 그야말로 질펀한 대접을 받았다. 김정일 전용 예술단의 공연은 견실한 사상을 가진 눈으로 보면 실로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내가 자꾸 박수를 치자, 내 옆에 앉아있던 고지식한 인노우에 슈우하찌 교수가 물었다. “황 선생은 정말 재미나서 박수를 칩니까?” “어쨌든 무조건 박수를 치시오. 명령이오(그는 나와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다).” 그도 내 말을 듣고는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김정일은 자신의 전용 예술단이 공연을 할 때 박수를 잘 치지 않으면 몹시 화를 냈다. 나는 그가 카메라를 통해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을 보면서도 힘껏 박수를 쳤던 것이다. 떠들썩한 생일잔치가 끝난 뒤로, 나는 차츰 주체사상을 종교와 결부시키는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 반영론 등과 함께 그의 종교에 대한 그릇된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상과 문화의 계급성을 주장하는 이론에 따라 지난날의 일을 적대계급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종교의 비과학성과 계급성을 강조하면서 종교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그에 비해 나는 새로운 것은 반드시 낡은 것을 계승한다는 데 기초하여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낡은 시대를 대표했던 사상 중에서 결국 종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따라서 새 사상으로서는 종교를 옳게 계승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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