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15회]
- 관리자
- 2010-06-04 1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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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은 우리 부부에게 적지 않은 잡비를 주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 물건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고 바삐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휴양을 다녀와서 보니 당내 분위기가 나에게 유리하게 변해 있었다. 김정일이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문서사건이 있기 전보다도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지도자의 문서를 집필해야 할 업무가 잇따라 주어졌고, 나는 그 일을 비교적 만족스럽게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흥진비래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들 경모의 결혼문제였다.
경모는 김일성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다음 박사원을 졸업하여 학위를 받고 주체과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운동에 소질이 많고, 특히 태권도를 잘해 인기가 있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경모는 어릴 때부터 장성택 집안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다가 장성택의 맏누이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만 임신을 시키고 말았다. 당시는 간부들의 자녀끼리 결혼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만일 중앙당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 사람을 당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뿐이 아니라 이 결혼을 누구보다도 김경희가 반대하고 나선 데 있었다. 우리에게는 불행한 우연이지만, 그 무렵에는 김경희와 장성택의 사이가 벌어져 우리를 서로 자기들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애쓰던 때였다. 장성택도 그랬지만 경희도 경모를 집으로 자주 데려가곤 했다. 김경희는 경모가 장성택의 생질과 결합되어 장성택과 더 가까워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경모의 결혼을 싫어한 또 한 사람은 허담의 부인 김정숙이었다. 김정숙은 경희가 내 아내를 더 신임하는 것을 늘 시기해왔다. 그런 마당에 경모가 장성택의 조카사위가 된다는 것은 우리 집의 지위도 그 만큼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김정숙은 경희를 부추겨 이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성택이 찾아왔다. “경모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 조카와는 짝이 기우니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친한 경희가 반대를 하고 나서자, 아내도 주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모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지, 저는 그녀와의 의리를 지키겠습니다.” 이번에는 장성택의 생질을 만나 얘기를 해봤더니 그 애는 울면서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경모가 성인이 되도록 자상하게 보살펴주지 못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 애들 스스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얘기해주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은 노력하는 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면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여보, 또 그 소리요? 그만둬요. 내가 녹음했다가 틀어놓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리를 지키겠다는데, 내 지위에 불리하다고 하여 이것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고서야 무슨 애비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 물건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고 바삐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휴양을 다녀와서 보니 당내 분위기가 나에게 유리하게 변해 있었다. 김정일이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문서사건이 있기 전보다도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지도자의 문서를 집필해야 할 업무가 잇따라 주어졌고, 나는 그 일을 비교적 만족스럽게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흥진비래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들 경모의 결혼문제였다.
경모는 김일성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다음 박사원을 졸업하여 학위를 받고 주체과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운동에 소질이 많고, 특히 태권도를 잘해 인기가 있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경모는 어릴 때부터 장성택 집안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다가 장성택의 맏누이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만 임신을 시키고 말았다. 당시는 간부들의 자녀끼리 결혼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만일 중앙당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 사람을 당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뿐이 아니라 이 결혼을 누구보다도 김경희가 반대하고 나선 데 있었다. 우리에게는 불행한 우연이지만, 그 무렵에는 김경희와 장성택의 사이가 벌어져 우리를 서로 자기들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애쓰던 때였다. 장성택도 그랬지만 경희도 경모를 집으로 자주 데려가곤 했다. 김경희는 경모가 장성택의 생질과 결합되어 장성택과 더 가까워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경모의 결혼을 싫어한 또 한 사람은 허담의 부인 김정숙이었다. 김정숙은 경희가 내 아내를 더 신임하는 것을 늘 시기해왔다. 그런 마당에 경모가 장성택의 조카사위가 된다는 것은 우리 집의 지위도 그 만큼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김정숙은 경희를 부추겨 이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성택이 찾아왔다. “경모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 조카와는 짝이 기우니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친한 경희가 반대를 하고 나서자, 아내도 주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모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지, 저는 그녀와의 의리를 지키겠습니다.” 이번에는 장성택의 생질을 만나 얘기를 해봤더니 그 애는 울면서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경모가 성인이 되도록 자상하게 보살펴주지 못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 애들 스스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얘기해주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은 노력하는 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면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여보, 또 그 소리요? 그만둬요. 내가 녹음했다가 틀어놓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리를 지키겠다는데, 내 지위에 불리하다고 하여 이것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고서야 무슨 애비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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