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13회]
- 관리자
- 2010-06-04 11:09:35
- 조회수 : 1,546
나는 중국의 간부들에게 내가 개발한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이해시켜 그들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중국에서 오는 학자대표단은 예외없이 만나 담화를 나누었으며, 그들을 통해서 개혁·개방에 대한 내 견해를 중국당 지도부에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나라 일이 잘 풀리고 있었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론에는 큰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체철학이라는 것이 김정일이 주장하는 그렇고 그런 것이겠거니 지레 짐작하고는 상대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국제토론회를 이용하여 인간 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외국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일 때 창작사업을 많이 했다는 선전을 하면서, 나는 김대 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철학적 원리의 기초를 김정일이 이미 예전에 제시했던 것처럼 꾸미도록 하는 일을 뒤에서 지휘했다.
이 일은 조직부 교시편찬과가 협조해주어 큰 성과를 거둘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시절의 김정일 노작집이라는 것이 15권이 넘는 대문헌으로 종합되었던 것이다. 이 문헌은 새로운 주체철학에 대한 반대자들을 반박하는데 무엇보다 좋은 무기였다.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김대 문헌집에 실려 있는 내용을 인용하여 반대파를 몰아붙였다. 이 작업을 끝낸 뒤, 나는 김정일의 명의로 인간중심의 유물론과 변증법의 원리를 쉽게 풀어쓴 글을 김정일에게 보냈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 일이 성공하려면 먼저 문서 정리실의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 사업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예상대로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문서정리실장 대리는 내가 서기실에 있을 때 뽑아온 김대 경제학부 졸업생으로, 머리가 총명하고 글 재간도 뛰어난 친구였다. 그러나 주체철학의 진수를 파악할 만한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문서정리실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무장시키려면 내 직속인 자료연구실의 연구원들이나 주체과학원의 학자들에게처럼 다년간 강의도 해주고 서로 논쟁도 시켜야 실력이 느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지도 아래 공동집필사업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히 진리를 터득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여 문서정리실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무장시키는 일을 서두르지 않은 것도 하나의 실수였다.
그런 까닭에 내가 유물론과 변증법을 쉽게 풀어 발표하자 반대의견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지지하지도 않았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고, 또 그 문제는 바로 나의 허점이었다. 글을 보낸 뒤로는 한동안 종용히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일이 느닷없이 전화로 나를 찾았는데, 내가 자리에 없어 실장대리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실장대리는 김정일과 이론문제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김정일이 말하면 ‘예, 예’하면서 끌려다닌 모양이었다.
김정일은 자기에게 글이 올라가면 물론 직접 읽어보지만, 한편으로는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16호시’(선전부 아래에 있는 5~6명으로 구성된 글쓰는 조직) 담당부부장이나 조직부 교시편찬과장에게 회람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철학에는 관심이 없고 알지도 못했으며, 더구나 주체철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전화를 직접 받았더라면 충분히 설명을 하여, 비록 문건으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문제로 비화하지 않게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실장대리가 지레 겁을 먹고 공손히 대답하면서 김정일의 의견에 무조건 맞장구를 치다 보니, 김정일은 이번 기회에 나를 공격하여 자신의 이론적 권위를 높여볼까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말한 의견을 정리하라고 하면서 내가 써 보낸 글을 선전부와 사회과학원에 회람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나라 일이 잘 풀리고 있었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론에는 큰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체철학이라는 것이 김정일이 주장하는 그렇고 그런 것이겠거니 지레 짐작하고는 상대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국제토론회를 이용하여 인간 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외국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일 때 창작사업을 많이 했다는 선전을 하면서, 나는 김대 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철학적 원리의 기초를 김정일이 이미 예전에 제시했던 것처럼 꾸미도록 하는 일을 뒤에서 지휘했다.
이 일은 조직부 교시편찬과가 협조해주어 큰 성과를 거둘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시절의 김정일 노작집이라는 것이 15권이 넘는 대문헌으로 종합되었던 것이다. 이 문헌은 새로운 주체철학에 대한 반대자들을 반박하는데 무엇보다 좋은 무기였다.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김대 문헌집에 실려 있는 내용을 인용하여 반대파를 몰아붙였다. 이 작업을 끝낸 뒤, 나는 김정일의 명의로 인간중심의 유물론과 변증법의 원리를 쉽게 풀어쓴 글을 김정일에게 보냈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 일이 성공하려면 먼저 문서 정리실의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 사업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예상대로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문서정리실장 대리는 내가 서기실에 있을 때 뽑아온 김대 경제학부 졸업생으로, 머리가 총명하고 글 재간도 뛰어난 친구였다. 그러나 주체철학의 진수를 파악할 만한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문서정리실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무장시키려면 내 직속인 자료연구실의 연구원들이나 주체과학원의 학자들에게처럼 다년간 강의도 해주고 서로 논쟁도 시켜야 실력이 느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지도 아래 공동집필사업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히 진리를 터득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여 문서정리실 학자들을 주체철학으로 무장시키는 일을 서두르지 않은 것도 하나의 실수였다.
그런 까닭에 내가 유물론과 변증법을 쉽게 풀어 발표하자 반대의견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지지하지도 않았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고, 또 그 문제는 바로 나의 허점이었다. 글을 보낸 뒤로는 한동안 종용히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일이 느닷없이 전화로 나를 찾았는데, 내가 자리에 없어 실장대리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실장대리는 김정일과 이론문제로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김정일이 말하면 ‘예, 예’하면서 끌려다닌 모양이었다.
김정일은 자기에게 글이 올라가면 물론 직접 읽어보지만, 한편으로는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16호시’(선전부 아래에 있는 5~6명으로 구성된 글쓰는 조직) 담당부부장이나 조직부 교시편찬과장에게 회람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철학에는 관심이 없고 알지도 못했으며, 더구나 주체철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전화를 직접 받았더라면 충분히 설명을 하여, 비록 문건으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문제로 비화하지 않게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실장대리가 지레 겁을 먹고 공손히 대답하면서 김정일의 의견에 무조건 맞장구를 치다 보니, 김정일은 이번 기회에 나를 공격하여 자신의 이론적 권위를 높여볼까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말한 의견을 정리하라고 하면서 내가 써 보낸 글을 선전부와 사회과학원에 회람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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