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96회]
  • 관리자
  • 2010-06-04 1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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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또 다른 힘, 조직부

조직부와 선전부의 세력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는 자들은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나에게 사상이론 문제에 대한 지도권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사상이론적 지도를 방해하고 나섰다. 조직부와 선전부 요원들은 김정일을 가장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이른바 성분이 좋다는 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양형섭, 허담 등에게는 수령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이라 하여 환상을 가지고 대했고, 또 자신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일이 많았다.

훗날의 일이지만 인도에서 김일성의 생일을 경축하여 주체사상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었다. 나는 세미나가 끝난 다음 주요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김일성의 접견을 주선했다. 손님들은 김일성에게 국제세미나가 큰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그리고 나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김일성과 김정일은 매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외교부 당 위원회는 그 세미나에 참석했던 부국장을 따로 불러, 국제세미나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조직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조직부 해당 과의 외교부 담당 지도원과 외교부 당위원회가 서로 짜고 국제세미나가 잘 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김정일에게 올렸다. 김정일은 그 보고내용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보고서를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외교부 부국장을 불러 사태의 전말을 따졌다. 결국 그 보고서가 허위날조라는 게 입증되었다. 나는 김정일에게 그 보고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하면서, 외교부 부국장을 철직시켜 노동현장으로 보낼 것을 제의했다.

김정일은 그 제의서에 서명을 하여 비준해주었다. 김정일이 직접 이름을 쓰고 날짜까지 쓰면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된다. 조직부에서는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반영보고를 한 조직부 부부장의 입장이 곤란해졌던 것이다. 그는 나를 찾아와 제발 잘못했으니 사태를 무마시켜 달라면서 빌었다. 그는 또 외교부 부국장은 6.25전쟁에서도 공을 세웠으며 품성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조직부 부부장을 돌려보냈는데, 그러자 간부담당 책임자가 찾아왔다.

그는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 외교부 부국장을 철직시켜 노동현장으로 보내려면 그를 거쳐야 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비서 동지. 이번에 대단한 용단을 내렸더군요.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조직부와 대결하면 일시적으로는 이길지 몰라도 결국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번 사건을 외교부장인 허담이 몰랐을 리 없고, 그럼 적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친필비준까지 받았는데 이제 와서 그만둔단 말이오?” “친필비준 문제는 조직부에서 적당히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고집 부리지 않을 테니 적당히 처리해달라고 했다. 조직부와 선전부에서는 장성택과 김경희가 나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허담과 양형섭이 수령의 가계라는 걸 은근히 앞세워 계속하여 드러내놓고 그 사람들 편을 들었다. 나는 과학교육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헛되이 속을 썩이기보다는 주체사상 선전이나 실속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체사상 대외선전기지로서 주체과학원을 창설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의하여 김정이로부터 비준을 받았다.

과학원 청사는 당시 평양 교외에 유학생 기숙사 용도로 지은 건물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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