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6회]
  • 관리자
  • 2010-06-04 11: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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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망치게 한 수령절대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강하게 느꼈다. 1996년 여름, 나는 태국과 인도의 여러 정당들과 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김덕홍을 만나기 우해 기차로 선양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비행기 편으로 태국을 가려했다. 해외출장 때면 나는 대개 비서 개인자격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를 올리곤 했으나, 이번에는 국제부 계획에 따라 출장을 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국제부 이름으로 출장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에서 나는 국제비서의 베이징 통과를 중국측에 알리고 중국측이 연회를 차리는 경우에는 응하겠다고 제의했다. 본래 나는 김정일이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 내가 중국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중국측에 알리지 않고 그냥 태국과 인도로 떠난다는 것만 보고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담당 부부장은 중국측에서 비서(나)를 여러 번 초청했는데 그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을 통과하면서도 통지까지 안 하면 중국측에서 오해를 할지도 모르고, 또 두 나라 당의 관계에 좋지 않다면서 중국측에 사실대로 통보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친중국적인 태도만 이해하고 김정일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관례상으로도 당 국제비서와 외교부장이 중국을 통과할 때는 중국측에 알리기로 되어 있었다. 김정일은 보고서를 접하고는 이렇게 지시했다.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로 가는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가도록 여행계획을 다시 짜시오.” 보고서가 지적을 받고 내려오자 국제부 일꾼들은 벼락이나 맞은 듯이 법석을 떨었지만,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베이징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타이 항공을 타고 방콕에 가서 현지사증을 받기로 했다. 나는 김정일의 그런 조치야말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짓으로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그가 우리 간부들에게 늘 하던 말을 떠올렸다. “동무들한테서 당(김정일)의 신임을 떼놓으면 무엇이 남겠소. 단순한 고깃덩이일 뿐이오.” 나는 권력으로만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김정일의 봉건적 사고방식에 격분하면서도 가까스로 억누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만일 우리가 고깃덩이라면 너 또한 권력을 떠나서는 인민이 심판을 받아 난자당해 마땅한 고깃덩이다.’ 나는 더 이상 김정일에게 아부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권력만능주의자의 통치하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의 신세가 더없이 가련하게만 생각되었다. 가을이 되면서 북한의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인민들의 고통과 불행은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다. 비서들이 모여 1996년도 알곡 생산량을 종합해 보았더니 210만 톤밖에 안되었다.

물론 여름에 식량이 떨어져 미리 따다먹은 강냉이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210만 톤의 식량을 가지고는 군량미로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이 되자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하여 농민들은 정말 어렵사리 남겨놓은 3개월분의 식량을 군대에 무조건 내줘야 했고, 우리 비서들도 장에 나가 200킬로씩 쌀을 사다가 군대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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