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7회]
  • 관리자
  • 2010-06-04 11: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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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는 김일성보다 후계자를 더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그 누구도 이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부터 김정일에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호칭 대신 ‘위해한 장군님’이라는 칭호를 더 많이 붙이게 되었다. 당내에서도 대남부서에서는 ‘최고사령관’이라는 존칭을 공식문건에까지 쓰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 그에게 ‘대원수’칭호를 바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을 때도 나는 반대했었다. 내가 그렇게 공식적으로 반대하던 자리에 김정일도 있었다. 나는 김정일이 동석하고 있어 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수령님에게 군사지도자로서의 칭호를 붙이기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위대성과 덕성의 위대성을 부각시키는 존칭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이 유일하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결론을 내렸다. “남조선해방전쟁을 승리적으로 끝마치고 수령님을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실 때 대원수 칭호를 올리도록 합시다.” 김정일은 당시 그렇게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다가 김일성 80회 생일 때에는 김정일에게 원수 칭호를 주자는 의견이 나온 것인데, 나는 반대했다.

“수령님에게 대원수 칭호를 올리는 것은 좋지만 지도자동지에게 무엇 때문에 원수 칭호를 올려야 합니까? 원수 칭호는 군사칭호지만 최고사령관은 군사칭호가 아니라 군대의 수령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 높은 칭호는 없습니다. 차라리 최고사령관 복장을 제정하고 지도자동지께서 최고사형관복을 입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민무력부장이 이미 수령님께 보고를 올려 김정일에게 원수 칭호를 주는 것이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봉건주의와 군국주의는 뗄 수없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북한의 간부들이 봉건사상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채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후회했다. 10월이 되자 러시아 자유민주당 당수인 지리노프스키가 수십 명의 대의원을 수행하고 그의 가족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나는 그전에도 모스크바에서 지리노프스키와 그 밖의 당 간부들을 만났었다. 또 주가노프를 비롯한 여러 공산당계 간부들도 마난 알고 있었다. 김정일은 지리노프스키의 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당과 연계를 가져 그들이 러시아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나에게 밝혔다.

그러면서 백만 불을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김정일은 그때 많은 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무렵에 나는 인민들의 식량난이 심각하여 농업담당비서가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외화를 그처럼 쓸데없는데 탕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검토해보자면서 일단 돈을 주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나라가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더 이상 김정일에게 의존하여 주체사상 선전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주체사상 선전비용을 세계 각국에 있는 주체사상 조직들, 나아가 친선관계를 맺고 있는 당들과의 협조를 통해 자력으로 벌어보겠다고 제의했다. 그때까지는 매년 김정일로부터 주체사상 선전자금으로 120만 불 가량을 받아썼다. 이 외화는 근래들어 국제부가 쓰는 외화예산의 무려 3배나 되었다. 김정일은 외화벌이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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