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실을 보았다 [제122회]
  • 관리자
  • 2010-06-04 11:12:45
  • 조회수 : 1,638
나는 대만이 절대로 중국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대만과의 교류에 반대했다. 김정일은 중국의 개방도시들인 선전, 주하이 등을 북한주민들이 참관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의 견학까지 금지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중국을 처음 방문해도 만리장성을 가보지는 못했다. 왜 그런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싹틀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김일성 부자는 베트남을 괘씸하고 의리가 없다면서 계속 헐뜯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잘못은 베트남에 있는 게 아니라 북한측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정일의 중국에 대한 반감을 오히려 베트남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이용했다. 즉, 북한과 베트남은 중국 대국주의를 반대하는 데는 입장을 같이한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유리하다. 또 라오스, 캄보디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베트남과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된 조건에서 우리가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서 베트남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방문하여 관계유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내가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김정일은 베트남과 라오스 방문을 허락해주었다.

베트남에는 나와 안면이 있던 간부들이 적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개혁·개방정책을 적극 지지해주고 두 나라 당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도모이 총서기의 북한방문을 적극 추진하여 그 길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도모이 총서기의 북한방문은 불발로 끝났다. 라오스를 방문하면서 나는 지난 시기에 김일성이 지리적으로 먼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는 한편 그들 나라에 대한 소규모 원조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여보려 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라오스를 지원했더라면 지금같이 어려운 형편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이미 라오스를 도와줄 만한 힘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사람들이 들어가 순진한 라오스 사람들을 속이며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결국 개인우상화가 권력우상화로 옮겨가고, 그것이 다시 국민을 노예화할 뿐 아니라 통치자 스스로를 자기환상으로 몰아넣어 머저리로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김일성만 하더라도 젊었을 때는 현실적으로 사고했지만 늙어가면서 점점 자기환상에 빠져, 세계 혁명의 수령 행세를 해보려고 분별없이 능력도 닿지 않는 일을 늘려갔다. 그 결과는 너무도 명백하게 나타나 죄 없는 인민들만 굶주리는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은 자신을 외교의 천재인 것처럼 선전하면서, 미국이나 중국도 그의 고자세 외교를 무서워한다고 떠들었다.

그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무서워서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는 영리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답답할 정도로 머리가 트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국제부 일꾼들에게 김정일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외교부 일꾼들의 고자세 외교의 부당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애썼다. 또 외교에서는 허명보다는 실리를 취해야 하며, 멀리 내다보면서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져주면서 국제적인 지지와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