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0회]
  • 관리자
  • 2010-06-04 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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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어떻게 성과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옳게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와의 관계를 옳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서 내가 중요한 진전을 본 데는 중국에 장기간 체류한바 있는 미국의 시튼홀 대학교 명예총장인 머피 교수와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주체과학원에서 그와 오전, 오후 여섯시간 동안 담화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종교의 본질을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찾는다는 것, 주체사상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생명으로 여긴다는 것, 인간이 서로 배척하고 증오하며 싸우기보다는 서로 믿고 사랑하며 협조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론이라는 것, 따라서 주체사상과 종교는 서로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머피 교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여 동양의 예절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되겠습니다.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의식한 즉흥적인 발언이라 할지라도, 나로서는 중요한 힌트를 얻은 계기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종교와 주체사상을 결부시켜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초점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실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종교인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으며, 모든 종교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각 종교가 내세보다는 현실세계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이바지하는 방향에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종교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비록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시작만이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계가 그야말로 급변하던 1992~93년 무렵에 나는 많은 글을 썼다. 그 중에 93년 10월에 초고를 끝낸 「주체철학의 기본문제」는 내 사상의 기본을 요약해보려고 시도한 글이었다. 이 글은 1장 우주관, 2장 사회역사관, 3장 인생관(가치관), 4장 변증법, 5장 방법론(이상사회 건설의 방법론)의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시간이 안 되면 하다못해 이 글만이라도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망명할 때도 가지고 왔다. 의암초대소에서 나는 6년 동안 좋은 조건에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었다. 이는 학자로서는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특별한 혜택이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늘 감사해왔다. 1993년 말경 김정일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비서를 다시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기쁘기보다는 가슴이 철렁했는데, 처음 국제비서가 될 때보다도 심적인 부담이 더 컸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야릇한 호기심도 마음 한구석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이미 권력의 중심부가 얼마나 살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알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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