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09회]
- 관리자
- 2010-06-04 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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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갈등과 망명
동유럽의 몰락과 ‘우리식대로’
체제의 몰락은 대체로 외부적인 충격이나 침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부적인 순과 균열에서 온다. 북한정권의 몰락도 그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시기와 북한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새로 맡은 문서정리실은 김일성 부자의 이론서기실인 만큼, 그곳에는 북한에서 취급되는 각종 통계들이 집중되었다. 나는 통계에는 ㅈ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으나, 북한경제가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에게 허위사실을 보고하고 외부에도 각종 통계를 왜곡시켜 발표해왔다. 그러나 문서정리실에 남겨진 정확한 통계로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떠오른 무렵인 1975년부터 이미 북한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특히 김정일이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1985년 이후부터 급격히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모술수에는 능했으나 나라를 실속 있게 꾸려나가지는 못했으며,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개인우상화 수준을 높이려는 그릇된 정치효과를 우선시하면서 경제건설에 나선 점이었다.
김정일은 1970년대에 실권을 잡으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70일 전투’라는 유명한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경제적인 고려 없이 무작정 속도전이라거나 전격전의 구호를 내걸고 인민들을 무리하게 내몰았다. 그래서 설비를 혹사하고 원가를 무시하여 각종 자재와 노력을 엄청나게 낭비했으며, 경제학의 초보적 이론마저 무시하여 국가경제발전에 치명적인 차질을 초래했다.
예컨대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굴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저 높이 세운 목표의 달성만 요구하다보니 굴진을 선행시키는 원칙을 무시하고 이미 굴지하여 확보된 타맥의 탄만 긁어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생상계획을 달성한 사람들은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굴진은 하지 않고 계속 채탄만 하다 보니 결국 석탄생산이 중지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자기 공로를 과장하여 보고하기 일쑤였다.
김정일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를 가르친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책은 원래 참을성이 없는데다 탐구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런 만큼 경제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김정일은 경제의 경우에도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속임수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설비를 보수하고 생산을 정상화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권력기관을 장악하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김정일이 모든 분야에서 당의 독재를 강화함에 따라 경제관리는 경제를 모르는 당일꾼들이 좌지우지했으며, 그 결과 북한의 경제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신격화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 경제를 더욱 가파른 절벽으로 몰아갔다. 김정일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것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방대한 규모의 체육시설을 건설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그는 평양에서도 올림픽을 연다고 떠들면서 극력 수준에 어울리지도 않게 많은 체육시설들을 자신의 기분대로 착공했다. 나아가 한술 더 떠 평양을 세계 1등급의 현대도시로 가꾸겠다며 광복거리, 통일거리를 건설하라고 인민을 몰아붙였다.
동유럽의 몰락과 ‘우리식대로’
체제의 몰락은 대체로 외부적인 충격이나 침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부적인 순과 균열에서 온다. 북한정권의 몰락도 그 원인은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시기와 북한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새로 맡은 문서정리실은 김일성 부자의 이론서기실인 만큼, 그곳에는 북한에서 취급되는 각종 통계들이 집중되었다. 나는 통계에는 ㅈ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으나, 북한경제가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에게 허위사실을 보고하고 외부에도 각종 통계를 왜곡시켜 발표해왔다. 그러나 문서정리실에 남겨진 정확한 통계로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떠오른 무렵인 1975년부터 이미 북한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특히 김정일이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1985년 이후부터 급격히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모술수에는 능했으나 나라를 실속 있게 꾸려나가지는 못했으며,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개인우상화 수준을 높이려는 그릇된 정치효과를 우선시하면서 경제건설에 나선 점이었다.
김정일은 1970년대에 실권을 잡으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70일 전투’라는 유명한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경제적인 고려 없이 무작정 속도전이라거나 전격전의 구호를 내걸고 인민들을 무리하게 내몰았다. 그래서 설비를 혹사하고 원가를 무시하여 각종 자재와 노력을 엄청나게 낭비했으며, 경제학의 초보적 이론마저 무시하여 국가경제발전에 치명적인 차질을 초래했다.
예컨대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굴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저 높이 세운 목표의 달성만 요구하다보니 굴진을 선행시키는 원칙을 무시하고 이미 굴지하여 확보된 타맥의 탄만 긁어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생상계획을 달성한 사람들은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굴진은 하지 않고 계속 채탄만 하다 보니 결국 석탄생산이 중지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자기 공로를 과장하여 보고하기 일쑤였다.
김정일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를 가르친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책은 원래 참을성이 없는데다 탐구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런 만큼 경제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김정일은 경제의 경우에도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속임수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설비를 보수하고 생산을 정상화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권력기관을 장악하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김정일이 모든 분야에서 당의 독재를 강화함에 따라 경제관리는 경제를 모르는 당일꾼들이 좌지우지했으며, 그 결과 북한의 경제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신격화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 경제를 더욱 가파른 절벽으로 몰아갔다. 김정일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것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방대한 규모의 체육시설을 건설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그는 평양에서도 올림픽을 연다고 떠들면서 극력 수준에 어울리지도 않게 많은 체육시설들을 자신의 기분대로 착공했다. 나아가 한술 더 떠 평양을 세계 1등급의 현대도시로 가꾸겠다며 광복거리, 통일거리를 건설하라고 인민을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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