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01회]
- 관리자
- 2010-06-04 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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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주체사상연구소를 없애고 그것을 국제부로 합병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는 주체사상연구소 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우겼다. 그래서 내가 계속 소장으로 있고, 사무실과 서기실도 그대로 두도록 허락을 받았다. 내 생각을 모르는 가족들은 내가 승진한 것을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또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이제는 주체사상연구소 사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국제비서 사업에 전념하라고 했다. 심지어 사리판단이 늘 정확한 맏딸까지도 기뻐하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 저명한 외교관이 되시길 바랍니다.”그러나 나는 그같은 출세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내 사명은 주체사상을 완성항여 세상에 남기는 것이라고 줄곧 다짐했다. 철학문제는 기본적으로 해결되었지만, 나아가 경제학과 정치학 문제도 꼭 해명해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감 같은 것도 느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권위는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인기가 시들해졌다. 게다가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가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소련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기는 바닥권이었다.
국제비서가 되고 나서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김경희는 국제부 부부장으로 있었는데, 그녀 주변에는 신분상승이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속셈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끓었다. 더구나 부장대리를 하던 사람도 외교실무에 대해서는 나보다 앞서는 사람이었다. 김경희는 김용순 때와 같이 서로간에 직통전화를 놓아 은밀하고 밀접하게 업무를 진행해 나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선생이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무리 권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제자에게 아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어, 나와 김경희의 업무에 구분을 지으려고 했다. 차라리 권력을 김경희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나는 김정일에게 김경희를 제1부부장 혹은 부장으로 승진시킨 다음 내부의 일을 담당하게 하고, 나는 외국으로 나가는 대표단 일이나 봤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면서 승인하지 않았다. 나는 외국출장도 자주 나가게 되고, 당과 관계가 있는 손님과 주체사상 문제로 찾아오는 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간 것 같아 밤에는 주체사상 선전에 필요한 강의안이라도 쓰고서야 잠을 청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없어 김정일이 내려 보낸 많은 자료도 재대로 못 보는 형편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김정일이 베푸는 만찬과 파티에 몇 번 참석했다. 그러나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아 조금만 먹어도 괴로웠다. 내가 정말로 술을 못 마신다는 걸 안 김정일은 더 이상 술 자리에 부르지 않았다. 대신에 부부장들을 불렀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생활방식이 독특하다는 것은 김정일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고학하며 단식도 하고 생쌀을 먹었다는 것이나, 주위가 소란할 때는 귀마개로 귀를 막고 있다는 것 등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저명한 외교관이 되시길 바랍니다.”그러나 나는 그같은 출세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내 사명은 주체사상을 완성항여 세상에 남기는 것이라고 줄곧 다짐했다. 철학문제는 기본적으로 해결되었지만, 나아가 경제학과 정치학 문제도 꼭 해명해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감 같은 것도 느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권위는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인기가 시들해졌다. 게다가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가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소련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기는 바닥권이었다.
국제비서가 되고 나서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김경희는 국제부 부부장으로 있었는데, 그녀 주변에는 신분상승이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속셈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끓었다. 더구나 부장대리를 하던 사람도 외교실무에 대해서는 나보다 앞서는 사람이었다. 김경희는 김용순 때와 같이 서로간에 직통전화를 놓아 은밀하고 밀접하게 업무를 진행해 나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선생이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무리 권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제자에게 아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어, 나와 김경희의 업무에 구분을 지으려고 했다. 차라리 권력을 김경희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나는 김정일에게 김경희를 제1부부장 혹은 부장으로 승진시킨 다음 내부의 일을 담당하게 하고, 나는 외국으로 나가는 대표단 일이나 봤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면서 승인하지 않았다. 나는 외국출장도 자주 나가게 되고, 당과 관계가 있는 손님과 주체사상 문제로 찾아오는 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간 것 같아 밤에는 주체사상 선전에 필요한 강의안이라도 쓰고서야 잠을 청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없어 김정일이 내려 보낸 많은 자료도 재대로 못 보는 형편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김정일이 베푸는 만찬과 파티에 몇 번 참석했다. 그러나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아 조금만 먹어도 괴로웠다. 내가 정말로 술을 못 마신다는 걸 안 김정일은 더 이상 술 자리에 부르지 않았다. 대신에 부부장들을 불렀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생활방식이 독특하다는 것은 김정일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고학하며 단식도 하고 생쌀을 먹었다는 것이나, 주위가 소란할 때는 귀마개로 귀를 막고 있다는 것 등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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