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74회]
- 관리자
- 2010-06-04 10:55:25
- 조회수 : 1,712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어느 덧 겨울이 되었다. 하루는 밤에 총장실에서 문제를 풀기 위한 작업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잠깐 동안에 내 머릿속에 끼었던 안개가 걷히고 한 가닥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계급이 있었던 게 아니며 또 앞으로 계급이 없어진다는 것도 마르크스주의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류역사 발전과정에서 극히 짧은 기간에 일시적으로 출현한 현상인 계급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인간 자체를 중심으로 역사를 봐야 맞지 않은가.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개인독재가 얼마나 많은 해독을 끼쳤는가. 이것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자행되었다. 또 중국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하면서 코흘리개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미친 듯이 문화를 파괴하고 문화의 창조자인 인텔리들을 박해했는데, 이것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전개되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절정에 달했다.
김일성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김영주와 김정일은 경쟁적으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화해 나갔다. 북한에서는 중국처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야 할 타도의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식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5.25교시를 통한 나에 대한 비판과, 선전부 계통의 일부 인텔리 간부들에 대한 숙청을 비롯한 문화 분야에서의 반수정주의 투쟁은 문화대혁명의 축소판으로 봐도 될 것이다.
당시 김일성이 만경대 혁명학원의 어린애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황장엽 같은 수정주의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황장엽은 진짜 철학박사가 아니라 여기저시서 남의 견해를 따다가 조립식으로 글을 만들어낸 조립식 박사다.” 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중국의 홍위병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내 논문을 읽어보지 않은 게 뻔했다. 무산계급을 해방시켜 다 같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겠다는 사상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무산계급이 창조한 문화만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스탈린의 개인독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권력투쟁의 형태로만 보는 데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 같은 현상에 대해, 나는 인간 자체를 귀중히 여기지 않고 계급의 이익을 절대화한 마르크스주의의 반인도주의적인 계급지상주의 사상의 표현인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평가하고 싶었다.
나는 이때부터 계급적 이익을 사회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 위에 내세우는 계급주의는 계급이기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계급이기주의는 지도자의 이기주의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그것은 다시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개인독재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과 결별하고 인간과 인류에 충실한 인본주의자로 전환했다. 따라서 나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벗어나, 역사를 인간의 발전역사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필요하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 데 철학의 사명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의 인간중심의 역사관의 줄거리는 1968년 말에 체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인간과 동물 간의 본질적 차이라 무엇이며, 인간에 고유한 속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했다. 이 무렵에 나는 회의에 참가해서도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을 노트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는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인류의 생명은 무한하다는 데 착안하여, 개인의 생명과 사회적 집단의 생명의 상호관계에 관한 견해를 정립해서, 인본주의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기초로 한 종래의 유물론과 변증법을 전면적으로 개작했다. 이 작업을 나는 1969년부터 1970년 10월 사이에 거의 끝낸 후 종합하여 원고지 100매 정도로 그 줄거리를 정리했다. 당시 모란봉에서 꽃을 보다가 새로운 인간중심철학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 하나를 지었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어느 덧 겨울이 되었다. 하루는 밤에 총장실에서 문제를 풀기 위한 작업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잠깐 동안에 내 머릿속에 끼었던 안개가 걷히고 한 가닥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계급이 있었던 게 아니며 또 앞으로 계급이 없어진다는 것도 마르크스주의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류역사 발전과정에서 극히 짧은 기간에 일시적으로 출현한 현상인 계급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인간 자체를 중심으로 역사를 봐야 맞지 않은가.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개인독재가 얼마나 많은 해독을 끼쳤는가. 이것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자행되었다. 또 중국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하면서 코흘리개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미친 듯이 문화를 파괴하고 문화의 창조자인 인텔리들을 박해했는데, 이것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하에 전개되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절정에 달했다.
김일성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김영주와 김정일은 경쟁적으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화해 나갔다. 북한에서는 중국처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야 할 타도의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식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5.25교시를 통한 나에 대한 비판과, 선전부 계통의 일부 인텔리 간부들에 대한 숙청을 비롯한 문화 분야에서의 반수정주의 투쟁은 문화대혁명의 축소판으로 봐도 될 것이다.
당시 김일성이 만경대 혁명학원의 어린애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황장엽 같은 수정주의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황장엽은 진짜 철학박사가 아니라 여기저시서 남의 견해를 따다가 조립식으로 글을 만들어낸 조립식 박사다.” 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중국의 홍위병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내 논문을 읽어보지 않은 게 뻔했다. 무산계급을 해방시켜 다 같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겠다는 사상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무산계급이 창조한 문화만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스탈린의 개인독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권력투쟁의 형태로만 보는 데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 같은 현상에 대해, 나는 인간 자체를 귀중히 여기지 않고 계급의 이익을 절대화한 마르크스주의의 반인도주의적인 계급지상주의 사상의 표현인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평가하고 싶었다.
나는 이때부터 계급적 이익을 사회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 위에 내세우는 계급주의는 계급이기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계급이기주의는 지도자의 이기주의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그것은 다시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개인독재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과 결별하고 인간과 인류에 충실한 인본주의자로 전환했다. 따라서 나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벗어나, 역사를 인간의 발전역사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필요하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 데 철학의 사명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의 인간중심의 역사관의 줄거리는 1968년 말에 체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인간과 동물 간의 본질적 차이라 무엇이며, 인간에 고유한 속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했다. 이 무렵에 나는 회의에 참가해서도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을 노트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는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인류의 생명은 무한하다는 데 착안하여, 개인의 생명과 사회적 집단의 생명의 상호관계에 관한 견해를 정립해서, 인본주의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기초로 한 종래의 유물론과 변증법을 전면적으로 개작했다. 이 작업을 나는 1969년부터 1970년 10월 사이에 거의 끝낸 후 종합하여 원고지 100매 정도로 그 줄거리를 정리했다. 당시 모란봉에서 꽃을 보다가 새로운 인간중심철학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 하나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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