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43회]
  • 관리자
  • 2010-06-04 10: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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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처녀인지 아닌지, 시집을 갔다가 왔는지 아니면 가지 않았는지, 과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뜻에서 그녀의 인성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나타나 내 책을 덮어버리고는 밖으로 나가자 하기도 했고, 때로는 만년필을 가지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물론 내가 따라나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따라나서면 그녀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비중을 두어 말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자기와 맺어진다면 내 연구사업을 여려 길로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각 듣기에도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더욱 친해지고자 하는 거짓말이라 여기고 관대하게 대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그녀로서는 2단계 시도인 셈이었다. 그때부터 싸움이 벌어졌는데, 나는 그녀의 수단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마음이 약하고 정직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정직하지 못한 자에게는 정직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상대방이 무기를 가지고 덤비는데 이쪽에서 맨손으로 방어하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그 후로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면 나도 거짓말로 대하고, 정직하게 나오면 나도 솔직하게 대해주었다. 그녀는 거짓말로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알자, 차츰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전극장에서 고전연극을 관람하고 돌아오는데 그녀가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연극 구경은 다 쓸데없어요. 관람료로 차라리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해먹는 게 낫지.” 나는 그렇듯 연신 투덜대는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고깃덩어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가 그렇게 된 데는 환경 탓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종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 해 겨울이었다.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던 소련계 조선인 고관이 모스크바로 오자, 그녀는 그 고관에게 가더니 며칠 동안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그녀가 자기 버릇을 고칠 수 없는 여자라고 단정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고관이 평양으로 돌아간 다음 나를 찾아와 사죄했지만, 나는 그녀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두어 달 동안 계속하여 나를 만나려고 쫓아다녔다. 그러나 돌아선 내 마음을 어쩌지는 못하고 차츰 멀어져 갔다. 비록 그녀와 깊은 관계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여자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두려워하던 지난날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타락시킨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것도 알았다. 조금 감상적으로 덧붙인다면 그녀를 구원해주지 못한 데 대해 오랫동안 자책감 비슷한 느낌을 품기도 했다. 이제 아내를 만난 얘기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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