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42회]
- 관리자
- 2010-06-04 1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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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겨 한번은 지도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첫 질문에는 대충 대답하더니 점점 질문이 어려워지자 화를 내는 것이었다. “당신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하루에 다 배우려고 하는가?”
지도교수가 답변하기 곤란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지도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또한 나를 부르지 않았다. 1년 동안 공부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느낄 만큼 철학적 사고능력이 상당히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학위논문을 ‘인식과 실천의 관계 문제’로 정하고 1학년 세미나에 인식의 기초로서의 실천에 관한 소 논물을 제출하여 2주일 동안 연구원 세미나에서 집중적으로 토의했다. 첫해에는 노어 수준이 달려 토론에는 자주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2년째가 되면서부터는 토론에도 자유롭게 참가할 정도로 노어로 말하고 듣는 데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러시아 사람들 못지않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내 나름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무질서하게 읽어왔던 책들에서 얻은 지식도 점차 제자리를 찾으면서 철학적 사유에 도움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 박승옥과의 만남. 아내와의 만남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한 여자에 대해 말해야겠다.
모스크바에 가서 2년이 되던 해,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김일성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연구원에 들어온 여자였다. 그녀는 평양에서도 미인으로 소문났으며, 이런저런 풍문을 꼬리처럼 늘 달고 다니던 여자였다. 함경도 여자로 일찍이 서울의 어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어 돌아왔다는 것과, 또 김일성대학 부총장인 소련계 조선인의 정부라는 따위의 풍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여자가 모스크바에 온다고 하자, 유학생 사회는 술렁거렸다. 그녀는 모스크바에 온 다음날 학생위원장인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미모가 결코 소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글거리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동무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데리고 다니면서 지도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모스크바 종합대학 교육학 강좌의 연구원으로 배치되어 나와는 같은 기숙사에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그녀와 만난 다음날 도서관에 가려고 옷을 입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더니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으로 같이 가서 각기 자기 전공을 공부하다가 돌아왔다. 며칠 동안 그녀는 군말 없이 잘 따라다녔다.
그 사실을 안 동료들, 특히 남녀문제에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나를 찾아와 타일렀다. “그 여자는 여우라서 남자를 유혹하는 수단이 4만 가지가 넘는단다. 그러니 너처럼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친구는 곧 넘어가게 돼 있다. 관계를 끊어라.”그러면서 별별 험담을 다 늘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의 입 끝에 자주 오르내린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나 생각하고는 건성으로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그 여자는 미인일 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을 떡 주무르듯 하는 일종의 여걸이었다.
지도교수가 답변하기 곤란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지도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또한 나를 부르지 않았다. 1년 동안 공부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느낄 만큼 철학적 사고능력이 상당히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학위논문을 ‘인식과 실천의 관계 문제’로 정하고 1학년 세미나에 인식의 기초로서의 실천에 관한 소 논물을 제출하여 2주일 동안 연구원 세미나에서 집중적으로 토의했다. 첫해에는 노어 수준이 달려 토론에는 자주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2년째가 되면서부터는 토론에도 자유롭게 참가할 정도로 노어로 말하고 듣는 데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러시아 사람들 못지않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내 나름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무질서하게 읽어왔던 책들에서 얻은 지식도 점차 제자리를 찾으면서 철학적 사유에 도움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 박승옥과의 만남. 아내와의 만남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한 여자에 대해 말해야겠다.
모스크바에 가서 2년이 되던 해,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김일성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연구원에 들어온 여자였다. 그녀는 평양에서도 미인으로 소문났으며, 이런저런 풍문을 꼬리처럼 늘 달고 다니던 여자였다. 함경도 여자로 일찍이 서울의 어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어 돌아왔다는 것과, 또 김일성대학 부총장인 소련계 조선인의 정부라는 따위의 풍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여자가 모스크바에 온다고 하자, 유학생 사회는 술렁거렸다. 그녀는 모스크바에 온 다음날 학생위원장인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미모가 결코 소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글거리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동무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데리고 다니면서 지도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모스크바 종합대학 교육학 강좌의 연구원으로 배치되어 나와는 같은 기숙사에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그녀와 만난 다음날 도서관에 가려고 옷을 입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더니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으로 같이 가서 각기 자기 전공을 공부하다가 돌아왔다. 며칠 동안 그녀는 군말 없이 잘 따라다녔다.
그 사실을 안 동료들, 특히 남녀문제에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나를 찾아와 타일렀다. “그 여자는 여우라서 남자를 유혹하는 수단이 4만 가지가 넘는단다. 그러니 너처럼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친구는 곧 넘어가게 돼 있다. 관계를 끊어라.”그러면서 별별 험담을 다 늘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의 입 끝에 자주 오르내린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나 생각하고는 건성으로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그 여자는 미인일 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을 떡 주무르듯 하는 일종의 여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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