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6회]
  • 관리자
  • 2010-06-04 10: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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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운명에 대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맡기고 내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겸허히 맡기려고 한다. 이제 나의 여생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스스로 정치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느 하편에 서서 이익을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또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나의 두고 온 가족들은 내가 오늘부터 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가능하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미력한 힘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하여 조총련의 존경하는 벗들이 진심으로 환대해준 데 대해 감사히 여기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나를 아는 모든 벗들이여,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중국에서 말썽을 일으켜 사랑하는 중국의 벗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 데 대해서도 죄송하기 그지없다.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은 중국외교부에 김덕홍과 나의 망명사실을 통보했다.

그때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오후 5시 30분, 한국정부가 김덕홍과 나의 망명신청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고 전해 들었다. 망명을 신청하면서 나와 김덕홍이 가장 걱정한 것은 중국정부가 우리의 한국 망명을 과연 승인해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중국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중국과 북한 간의 친선을 조금이라도 더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중국 수뇌부에서도 나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적 이익의 견지에서라면 나와 김정일을 바꿀 수 없을 것이고, 김정일이 강하게 반대할 경우 중국정부는 우리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거나 제3국으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보도를 통해 다 알다시피 우리가 망명신청을 하자, 북한은 수백명의 보위부 요원들을 동원하여 중국경찰의 경계망을 뚫고 한국총영사관으로 진입하려고 두어 차례 시도했으나 저지당했다.

중국정부는 1,200명의 무장경찰과 장갑차를 동원해 경비를 강화시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점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몇 해 전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하러 간 무장하사관이 보위부 요원들에게 사살당한 예에서처럼, 북한이 우리를 사살하려 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북한보위부 요원들의 의도를 파악한 한국대사관에서도 가능한 한 경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래도 위험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와 김덕홍이 들어 있는 방 맞은편이 바로 콩고 대사관이었기 때문이다. 콩고는 북한과 관계가 좋은 편이라서, 우리는 북한이 그 대사관을 이용하여 저격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우리의 신변안전에 더욱 신중을 기하기 위해 중국공안측에 영사관 주변의 경비강화를 요청하고, 창문에 외부로부터의 총기 공격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철판을 설치하는 등 만일의 사태 대비에 만전을 기했다.

대사관측의 노력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그 대신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밤낮으로 불을 켜놓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잠시도 방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없었다. 나와 김덕홍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샤워 때 외에는 아예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개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갑갑하게 지내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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