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근본 입장 (3)
  • 관리자
  • 2010-06-03 20: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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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자 삼촌 김영주와의 권력 싸움에서 승리」

金日成은 북한에서 정치적 지반이 없었을 뿐 아니라 1941년부터 소련에 망명하여 소련 극동군 88특수여단에 소속되어 대대장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그의 직위는 소련군 대위에 불과하였던 만큼 그가 통솔하는 대원 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스탈린이 생존하고 있을 때가지는 소련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밑에 소련 고문둘과 소련이 파견한 소련 태생 조선인들이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하였다.

6.25 전쟁을 계기로 金日成은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군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기의 권력 기반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였으며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이 강한 중국당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자기 자신의 독재체계를 세우는 데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내의 여러 파벌들을 숙청하는 투쟁을 거쳐 1958년경에 이르러 金日成은 자신의 독재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기본적으로 완성하였다.

이 무렵부터 金日成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선의 구체적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민족적 독자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자기의 독자적인 독재체계를 세우는 데 있었을 뿐, 지도사상 면에서나 정책수립 면에서는 여전히 스탈린주의에 충실하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金日成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한 흐루시초프의 노선을 수정주의라고 반대하면서 모택동과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를 계속 강화할 데 대한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독재체제는 金正日에 의하여 스탈린식 독재체제와도 질적으로 구별되는 더욱 더 포악한 독재체제로 개악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북한체제를 파악하기 위하여서는 金正日에 의해 수립된 수령절대주의체제의 기본특징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金正日은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인 김영주와 金日成에 대한 개인숭배의 도수를 더욱 높이기 위한 충성의 경쟁을 벌여 승리한 다음에는 제2인자의 자리가 아니라 金日成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金日成-金正日 공동정권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金正日은 金日成에 대한 개인숭배를 절대화하는 것이 독재권의 승계를 보장하는 기본담보로 된다고 인정하고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력(全力)을 다하였다. 그 결과 그는 수령절대주의적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스탈린식 수령관은 마르크스의 무산계급 독재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을 요약하면 노동계급은 가장 선진전인 계급이기 때문에 모든 피착취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사회에 대하여 독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응당하며,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대로서 노동계급을 대표하여 독재할 권리를 가지며, 수령은 가장 탁월한 공산당원으로서 공산당을 대표하여 독재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과 노동계급의 무조건적인 통일단결이 사회주의혁명 위업의 승리를 담보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강조하였다.
스탈린은 자기의 독재를 공산당과 노동계급의 위임에 의한 것이며 혁명의 요구에 상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전횡을 비판하면서 비극은 스탈린이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개인독재를 감행하였다는 데 있다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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