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민주주의 중 제일은 민주주의
  • CDNK
  • 2010-05-22 13: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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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강좌] 북한민주화위원회 황장엽 위원장은 7월 16일 송출된 자유북한방송을 통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면서 통일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김정일의 노예가 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위원장은 또한 햇볕정책의 대안을 제시하라는 주장에 대해, “도적놈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하는 편이 더 낫다”며, 햇볕정책보다는 대안이 없는 것이 오히려 나으며 더 적극적인 대책으로는 민주주의 원칙 고수, 미국과의 동맹 강화, 경제건설과 문화건설 등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평화와 통일 중에서는 평화가 더 중요하며 평화와 민주주의 중에서는 남한에 위대한 변혁을 일으키고 기적을 창조한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므로 평화·통일·민주주의 삼자 중 가장 중요시해야 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자유북한방송 [2007-07-17] [다음은 전문입니다.] 우리가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원칙적으로 중요하게 논의해야 될 문제가 평화와 통일과 민주주의 이 세 가지 문제입니다.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됩니다. 목적은 통일입니다. 그냥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됩니다. 전쟁의 방법은 안 됩니다.” 이것은 옳습니다. 그러면 통일은 무엇에 기초해서 해야 되겠습니까. 통일하자는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통일이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순 없습니다. 명백한 원칙인데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통일해야 된다.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 김정일이고 뭐고 어쨌든 통일해야 된다”라고 하지만 그러면 김정일의 노예가 되는 것인데 통일해서 무슨 소용입니까. 며칠 전 어떤 토론회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쟁 이후의 혼란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비상대책을 세웠다. 자유를 제한한 비상대책을 세웠다. 그게 옳은 것이다. 거기에 기초해서만 경제를 발전시키고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떤 대학교수가 제기하기를,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유를 제한해서야 되겠는가.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원칙적인 문제인데 실용주의적인 그런 경제발전을 위해서 이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게 만약에 옳다하게 되면 김일성이 6.25 전쟁 때 통일을 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도 옳다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원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민의 이익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때 치안을 유지하고 치안을 바로잡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일부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 자본주의 발전을 무엇 때문에 했습니까. 인민들을 먹고 살리기 위해서 했습니다. 인민들을 먹고 살게 하는 것이 더 원칙적입니까. 더 인민의 이익에 맞습니까. 아니면 몇몇 지식분자들의 자유를 보상해주는 것이 더 원칙적입니까. 이 지식분자들은 대체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아닙니까. 부모들이 해주는 밥이나 먹고 자라나서 학교 가서 책 꽤나 읽고서 하는 자들이 미국의 민주주의 본떠와 “우리도 이렇게 자유가 필요한데 왜 민주주의를 억제하는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유는 형식입니다. 자유 자체는 내용이 아닙니다. 대동강의 물오리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녔다고 해서 그게 무엇입니까. 자유는 무엇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인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고생을 하지 못하고 실제 생활을 모르는 이런 자들은 자유가 목적 자체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 비상대책을 세우는 데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지금 우리가 또 명예회복을 시켜야지 그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놓아야 되는데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놓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좀 아파도 참아야죠. 그리고 대체로 잘 사는 아이들 공부한 아이들의 그런 자유거든요. 이쪽에 못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때 인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동자와 농민이라든가 상인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민주주의에 맞는 것이고, 인민의 이익에 맞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이익입니다. 그 몇몇 분자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모든 사물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할 때는 그것이 옳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을 따지면서 “그때 이런 점이 나쁘니까 이것도 나쁘다. 박정희가 독재를 실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고생을 모르고 생활을 모르는 지식분자들의 나쁜 근성입니다. 적군과 아군이 대치하고 있는데 적군에서 우점과 단점이 이것, 이것이다. 우리에게서 우점과 단점이 이것, 이것이다. 적군이라고 해서 좋은 점이 없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옳고 우리가 우세하다. 공격하라. 거기에서 우점이 하나도 없어지고 약점만 있고, 여기선 약점이 하나도 없이 우점이 완전히 차지할 때까지 기다리게 되면 100년이 걸려도 안됩니다. 상대적으로 옳게 되면 여기서 공격을 해야 합니다. 하나도 투쟁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꾸 이런 것을 한단 말입니다. 여기에도 좋은 점이 있고 여기도 나쁜 점이 조금 있으니까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모르는 그런 지식분자들의 실제 실천을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서 머릿속에서만 자꾸 이렇게 따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그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라는 사람은 학자들이 관을 쓰고 다니게 되면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그럼 오줌이나 싸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말로만 자꾸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쾌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만약에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 전쟁의 목적이 인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로 나가는 방향이라고 전쟁을 해 승리하게 되면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했다고 한다면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 나쁜 것 없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목적으로 한 것은 무엇입니까. 실패한 사회주의를 계속해서 독재를 세우자고 해서 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어떻게 원칙으로 될 수 있습니까. 글쎄 대학 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이것하고 좀 다른 방향에서 햇볕정책 지지자들이 얘기하는 것은 조금 딴 방향일거 같습니다. 이들은 뭐라고 얘기하는가요. “전쟁만은 피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럼 저기 전쟁을 걸어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속 빌기만 하고 있겠습니까. 빌고 있을 때 목이 날아가는데. 싸워야죠. “전쟁만은 피해야 돼.”라고 합니다. 그 무슨 소리입니까. 그리고 또한, “햇볕정책이 잘못됐다. 김정일하고 타협하게 해갖고서 미국을 반대하고 김정일 그 독재자를 도와주고 이게 잘못됐다,” 이렇게 주장하면 “너 그러면 전쟁할려니?”라고 반박합니다. 누가 전쟁하겠다고 했습니까. “그럼 대안을 내놔라. 너희 대안이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햇볕정책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대안이 필요합니까. 그런 나쁜 대안이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왜 대안이 없겠습니까. 그 나쁜 일을 하는 것, 나쁜 놈, 도적놈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하고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대안을 안 세우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김정일을 찾아가서 돈 주고서 미국을 반대하고 여기 우리끼리 협조해서 하는 것을 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보다는 찾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계속 지금 김정일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찾아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찾아가지 않는 것만 하자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안이 왜 없겠습니까. 그 나쁜 햇볕정책보다는 대안이 없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왜 우리에게 적극적인 대안이 없겠습니까. 얼마든지 우리의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고수하면 됩니다. 북의 주인은 북한 동포들입니다. 김정일을 도와줄게 아니라 북한동표들을 도와주고 탈북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 여기서 안보질서를 더욱 강화하고 경제건설과 문화건설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더 적극적인 대책이지, 왜 대책이 없겠습니까. 나쁜 그 놈을 도와주는 것보단 대책을 안 세우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적극적인 민주주의적인 대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렇게 단순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자꾸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정일한테 무엇을 갖다 줘야지 평화가 보장된다. 우리 민족끼리 협조해야 된다.”라며 말입니다. 6.25전쟁 때는 우리 같은 민족이 아니었습니까. “공상주의자들하고는 그런 힘으로 해서는 안 돼. 그건 대화로 해야 된다. 그럼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켜가지고 나올 때 중국 군대가 나올 때도 대화로 합시다.”라고 하는데, 그래갖고 되겠습니까. 대화는 물론 해도 우선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해서 단 한 번도 공산주의자하고 싸워본 경험도 없는 자가 마치 자기가 공산주의. 그 사람이 공산주의의 졸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이 주인이 돼서 행복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게 민주주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평화하고도 바꿀 수 없고 전쟁을 안 하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버린다는 것을 결국 김정일의 노예에 그냥 복종한다는 걸로 되는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버리라는 것도 역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와 통일 둘 중에서 평화가 중요합니다. 서로 싸워서 통일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민주주의. 이 경우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우리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 그래도 민주주의 때문에, 또 미국과의 동맹 때문에 이렇게 위대한 변혁을 일으키고서 기적을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아주 단순한 원리인데 평화와 통일과 민주주의 삼자 간에서 무얼 가장 중요시해야 되겠습니까. 민주주의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민주주의적인 전략이고 우리의 목적도 민주주의고 우리 탈북자들이 이런 것들을 좀 명백하게 인식을 가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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