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문제(8)
  • 관리자
  • 2010-06-07 15:25:07
  • 조회수 : 3,388
(3) 사상문화 생활에서의 인권유린

① 사상적 노예화
② 우민화(愚民化)를 위한 문화생활
③ 사랑과 도덕을 빼앗는 수령절대주의


인권의 견지에서 볼 때 사상문화 생활은 경제생활이나 정치생활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간은 육체적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것으로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① 사상적 노예화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에게서 자주적인 사상을 가질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고 자기의 사상만을 신봉할 것을 강요한다.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주적 인간이 아니다.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는 첫째 요인은 <사상>이다. 사람의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 사람자체를 지배하게 된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사상을 지배함으로써 인민들을 자기들의 사상적 노예로 만들고 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매개 사람들의 자주적인 사상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김정일은 북한 인민들의 삶의 목적은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데 있다고 노골적으로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온 북한 땅이 울음바다로 전환되었는데 이것은 북한 인민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김정일이 9개월 동안이나 식량배급을 주지 않아 온 식구가 굶주려 누워있게 되었다면 김정일은 자기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원수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있는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북한 인민들은 몸은 비록 자기의 것인 것 같이 보이지만 머리는 김일성, 김정일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다 김일성, 김정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복무하고 있다. 결국 북한 인민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몸도 정신도 모두 수령의 것이다. 정상적인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이 노예사상을 가진 노예들의 생활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될 수 없다.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의 사상이 바로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이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이 북한 인민의 요구와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김일성이 자기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겠다는 것을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가.

수백만 사람을 굶어 죽이면서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재와 외화를 탕진하는 것이 인민들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청년들이 13년 동안이나 군대에 들어가 총폭탄이 되어 김정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청년들과 그 부모들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6.25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것이 우리 민족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북한 주민들이 기아와 빈궁에 신음하고 있는데 핵무기와 로켓트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쓰면서 새로운 남침전쟁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살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는데 계속 수령절대주의를 고수하는 김정일의 사상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에 맞는가.

만일 수령이 인민의 요구와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참고로 하여 정치를 하려면 인민들이 자기의 요구와 이익이 무엇인가를 발표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억압하는 것 자체가 수령의 사상이 반인민적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전복된 착취계급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의 혁명적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지금 북한에는 지주계급도, 자본가 계급도 존재하지 않으며 정권을 탈취하려는 그 어떤 정치적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하고 철저한 개인독재를 실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수령은 정권을 독점하고 경제를 독점하고 사상까지 독점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 말로는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한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인민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압박하는 수령과 그 추종자 집단이 지배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계급사회를 건설하였다.

북한 통치자들은 북한 인민을 다만 무산자로 만들고 정치적 무권리자로 만드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까지 빼앗고 노예근성만 가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인민들을 강제로 일 시키고 강제로 복종하여 만세를 부르게 하고 강제로 자기 사상을 신봉하도록 만들고 있다. 북한과 같이 전체 인민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면서도 통치자를 위하여 온 나라가 떠나갈 정도로 만세를 부르며 또 그렇게 만세를 부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사회는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② 우민화(愚民化)를 위한 문화생활

김정일은 김일성보다도 사상문화생활의 중요성에 대하여 더 강조한다. 그는 자기를 <사상론>의 창시자로 자처하며 문학과 예술의 <천재>라고 선전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가 사상을 중요시하는 것은 인민들의 사상을 계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들에게서 자주적인 사상을 빼앗기 위해서이다. 즉 인민들에게 인권사상을 넣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권사상이 싹트지 못하게 하고 노예적 굴종사상을 넣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민대중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주는 것보다는 빈말로 속이는 것이 밑천이 들이 않고 편리하다고 타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아름다운 생활을 정신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정신적 양식으로 될 뿐 아니라 그것이 인민들에게 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도록 고무하는 정신적 힘으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오직 문학과 예술이 수령을 우상화하는 기만수단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은 문학과 예술의 천재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왜곡자이고 파괴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문학예술 작품은 오직 수령을 우상화한 작품뿐이다.

북한에는 재능 있는 문학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재능은 수령을 우상화하는데만 바쳐지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민족문화를 빛내는데 이바지 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능 있는 북한의 문학예술인들의 신세를 망치게 하고 북한의 문학예술을 기형화 한 것 역시 북한 통치자들의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당과 국가기관들에서는 토요일은 거진 일을 전폐하고 사상문화생활만 하게 되어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학습과 저작학습, 정세강연과 영화감상회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모두다 수령우상화로 일관되어 있고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통치자들의 속셈을 짐작하는 사람은 이 토요일과 같이 고통스러운 날이 없다.

나와 김덕홍은 1997년 2월 12일부터 4월 20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북한 통치자들의 테러를 피하기 위하여 불편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이 불편은 평양에서 토요일에 사상문화 생활을 통하여 받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북한에서의 사상문화생활은 사람들의 사상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더욱 암매하게 만드는 비문화생활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혐오감만을 안겨주는 비문화생활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주민들이 외국의 신문, 잡지를 읽거나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상부의 승인과 감시를 떠나서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김정일의 직접적인 승인이나 당중앙 비서협의회의 최종승인 없이는 외국에 여행할 수 없다. 그러니 북한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극소수 계층들은 외국에도 가 볼 수 있고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이 북한이 세계의 중심이고 김일성, 김정일이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전처럼은 못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남한은 미제국주의 식민지이고 민중이 기아와 빈궁에 시달린다고 하였으며 자본주의 나라는 사람 못 살 <개 같은 세상>이라고 악선전하였다. 최근 년 간에 와서도 새로 인민학교(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하는 간부들의 연설에는 공화국(북한)의 어린이들은 수령님의 은덕으로 돈 한푼 내지 않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지만 남한에서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구두닦이나 하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노동신문>에는 전 세계 인민들이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인류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며 남한 인민들은 그이의 정치를 한번 받아보았으면 한이 없겠다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다는 기사를 매일같이 내보내고 있다.

김일성은 인민들이 모두 흰쌀밥에 고기 국을 먹으로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되면 인류의 이상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에서 평양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면서 평양은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말하였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의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 흰쌀밥에 고기 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 것이 그리도 높은 생활수준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고기를 인구 1인당 36㎏이상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는 많다. 북한의 주변나라는 다 인구 1인당 고기를 36㎏ 이상 생산하고 있다. 36.5㎏이면 매인 당 하루에 100g씩 해당된다. 초가집을 허물고 벽돌집을 짓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각종 화학섬유로 만든 좋은 옷감은 면직물보다도 훨씬 값이 싸다. 물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빈부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해서 본다면 한국에서는 벌써 훨씬 전에 이러한 생활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북한에서는 자동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전화기와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색텔레비젼 같은 것이 다 보통사람은 쓸 수 없는 특수상품, 득 <간부용>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좀 오랜 이야기이지만 북한에서 처음으로 평양에서 개성으로 나가는 길을 넓히고 시멘트로 포장한 일이 있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온 대표단을 안내하는 아가씨가 손님을 모시고 그 길을 가다가 문득 이 길을 자랑할 생각이 나서 당신네 나라에도 이렇게 넓은 길이 있는가?고 물었다. 손님은 잠시 질문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혹 농촌에 나가면 이런 도로를 찾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작가, 예술인들에게는 그래도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 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수령을 더 잘 우상화할 수 있겠는가 하는 한 가지 목표를 놓고 예술적 재능을 동원하여 서로 경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을 하는 학자들에게는 수령의 저서의 정당성과 수령의 정책의 위대한 생활력을 해설 선전하는 것 이외의 것은 일체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수령의 저서를 써주는 이론기술자들이 어디 가서 좀 색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수령의 저서가 나오기 전에 수령의 사상을 앞질러 말했다고 하여 되게(엄중히) 문제가 설 수 있다. 이들에게는 창조적 사색의 자유는 완전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수백만이 현실적으로 굶주리고 있고 경제 전반이 마비상태에 빠져도 역시 사회주의 경제의 위대한 생활력과 자립경제의 우월성에 대하여 소리높이 선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정권은 문화인들에게는 허위를 선전할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인민들에게는 허위선전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식 사상문화 생활은 많이 하면 할수록 현실로부터 뒤떨어진 더욱 우매한 사람으로 전환된다.

③ 사랑과 도덕을 빼앗는 수령절대주의

김정일은 때때로 간부들을 모아 놓고 동무들에게서 수령의 신임을 떼놓으면 단순한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김정일의 이 말은 현실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사실 북한 사회에서는 김정일의 신임만 떨어지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김정일의 신임이 모든 사람들의 <생명>으로 된다. 김정일에게 명줄이 쥐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김정일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할 각오를 한다.

수령의 독점욕에는 한계가 없다. 수령은 개인의 생명, 재산을 다 자기 손에 틀어쥐고도 만족이 안되어 그 이상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의 생명, 재산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과 도덕이야말로 개인의 생명 재산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수령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도덕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개인의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어 생사운명을 같이 하게 되면 개인의 생명과는 비할 바 없는 위력한 새로운 생명체가 출현한다. 이 위력한 새로운 생명체의 생명은 결합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공동의 생명이다. 개인은 자기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며 따라서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의 생명을 더 사랑한다.

생명과 생명을 결합시켜 보다 위력한 공동의 생명을 가지려는 요구가 <사랑>이다. 사랑이 주는 기쁨은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려는 요구가 실현되어 개인의 생명보다 더 위력한 공동의 생명을 지니게 되는데서 오는 기쁨이다. 반면에 고독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위력한 공동의 생명과의 연계가 끊어지게 되어 고립된 개인의 미약한 생명만을 지니게 되는데서 오는 슬픔과 고통이다. 보다 많은 생명이 결합될수록 보다 위력한 생명체를 이루게 되며 보다 위력한 생명체와의 결합이 이루어질수록 개인은 자기 개인의 생명보다 훨씬 더 귀중한 공동의 생명을 지니게 된다. 개인은 이 위력한 생명체의 사랑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자기 개인의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한 것으로 된다. 이것은 사람은 자기 개인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며 자기 가족보다 민족을 더 사랑하며 자기 민족보다 전 인류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도덕적 요구에도 부합된다. 물론 이것은 생명과 생명이 결합되어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사랑하는 집단>을 이루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수령절대주의는 오직 수령 한사람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수령은 가족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물론 전 인류도 아니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개인이다. 개인과 개인은 평등해야 한다. 수령은 다른 개인을 지배할 권리가 없으며, 가족을 지배할 권리가 없으며, 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수령은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민족공동의 위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수령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만큼 민족공동의 위업을 위하여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수령이 지도자로서의 의무에 충실할 때 그는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가진다. 그것은 그가 수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공동생명체를 위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수령이 아니더라도 공동생명체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한 과학자나 문학예술가, 체육인들은 민족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수령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조국과 민족 앞에 큰 기여를 한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를 위하여 충성을 다 한다는 것도 명백히 부당하다. 더구나 인민을 통치하는 이기주의자인 수령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인권유린의 전형인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자들은 오직 수령만을 사랑하여야 하며 가족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은 수령에 대한 사랑에 복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가족들 사이의 사랑에서도 절대적인 주인은 수령이다. 수령의 마음에 안 들 때에는 부부가 이혼도 해야 하고 부자간에 서로 고발도 해야 한다. 원래 계급주의자들은 모든 인간관계를 계급관계로 전환시켰다. 그들은 계급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최고의 도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계급적 관점에서 대립이 생기면 계급투쟁의 원칙에서 서로 적대시하기도 되어 있다.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의 요구와 이익에 복종하는 것을 최고의 도덕으로 보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관점에서 차이가 날 때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도덕, 부부간의 사랑과 도덕도 다 무시되어야 한다.

김정일의 서기의 한 사람은 술에 취하여 자기 부인에게 김정일의 난잡한 생활에 대하여 비밀을 누설한 일이 있었다. 양심적이며 문화수준이 높은 서기의 부인은 깜짝 놀라 한나라의 지도자의 생활이 그토록 어지러워서야 어떻게 인민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하고 고민하던 끝에 김일성이 김정일을 훈계하도록 할 생각으로 김일성에게 편지를 올렸다. 그러나 물론 그의 편지는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의 수중에 들어갔다. 김정일은 자기 서기의 부인을 체포하여 술파티에 끌어오게 한 다음 모든 술파티성원들이 보는데서 서기의 부인을 <반역자>라고 선포하고 총살하도록 하였다. 그는 술파티의 비밀이 나가면 총살한다는 것을 모든 술파티성원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서기는 자기 부인을 자기 손으로 총살하도록 김정일에게 애걸하였다. 김정일은 서기의 청을 들어주어 그에게 무기를 주어 자기 부인을 총살하게 하였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 <가신단>들 사이에는 동지적 관계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사생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다 김정일이 주인행세를 한다. 그는 자기에게 봉사하여온 미녀들을 그녀들이 요구하는 대상(상대)에게 하사하여 결혼시켜주고 그들을 계속 돌봐줌으로써 무조건 충성을 다하도록 조종한다. 김정일의 측근 가신들은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도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때 결혼하겠다는 것까지 보고 올려 결론을 받는다. 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수령에 대한 사랑에 복종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하는 조건에서 참다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사랑에 관한 도덕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수령과 그 측근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수령의 대리인들인 각급 당조직의 책임자들과 일반당원, 비당원들 사이에서도 일반화되어 하나의 관습으로 고착되고 있다. 초급당 비서들과 세포비서들은 당원들과 비당원들의 가정생활과 도덕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다 장악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산하 당원, 비당원들의 자녀결혼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노인들의 환갑잔치문제, 어린애들의 돌잔치에 이르기까지 다 간섭하며 이 과정에 범하는 인권유린도 허다하다.

김정일은 특히 간부자녀들끼리 결혼하여 간부들이 가정적으로 친해지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중앙당 간부 자녀들끼리 결혼할 때에는 그 부모들을 중앙당에서 내보내는 조치까지 취한다.

당중앙 국제부의 부부장 아들과 정무원(내각) 부총리의 딸이 연애를 하여 결혼문제가 제기되었다. 국제부 부부장은 간부 자녀들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 부인에게 말해 두었다. 그러나 젊은 청춘 남녀들은 부모들에게 결혼시켜 달라고 계속 졸랐다. 부부장이 한달 동안 해외출장을 간 사이에 두 집 부인들끼리 토의하고 결혼식을 해버렸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김정일은 부부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고 하면서 부부장을 철직시켜 산하기관에 내려보내도록 지시하였다.

수령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인간관계,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무관계한 가족관계와 친척·친우관계는 다 배척되기 때문에 순가정적 분위기에서 즐기거나 친우관계를 두터이하는 접촉은 언제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혹 쉬는 날 손자, 손녀들이 동물원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라도 그들은 데리고 동물원이나 공원에 나가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김일성의 동상이나 혁명박물관 같은 데를 가족들을 데리고 참관하는 것은 자녀들을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교양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여 환영받는다. 그러나 그저 가족들끼리 즐기기 위해 들놀이를 나간다든가,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좋지 않게 평가된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이 동물원 구경을 시켜 달라고 자꾸 조르면 그 가까이에 있는 혁명열사능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에 들리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물론 간부들의 이러한 일과생활은 빠짐없이 김정일에게 보고된다.

나에게는 어릴 때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돌봐준 8년 연상의 누님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의 남편은 6.25전쟁때 트럭운전기사로 군대에 동원되었다가 인민군대가 후퇴를 할 때 월남하였다. 그래서 누님은 평양시로부터 약 40㎞ 떨어진 곳에서 두 딸을 데리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나는 늘 누님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물건을 보낼 때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냈다. 누님이 평양시에 들어오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한다. 또 통행증을 받아 평양에 들어온다 해도 비서의 집에는 직계가족(출가한 딸과 사위)밖에는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찾아 올 수 없었다. 평양시내에는 형(해방 전에 사망)의 자녀들과 형수가 살고 있었으나 역시 한번도 그들의 집을 찾아가지 못하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나와 나의 가까운 친척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계도 없지만 내가 정치적으로 과오를 범하게 되면 나의 친척들은 무조건 추방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김정일은 크게 선심을 써서 우리 비서들이 가족을 데리고(부인과 어린 손자, 손녀) 휴양소에 나가 한달 동안 쉬고 오라고 배려해 주었다. 이 휴양소는 호위국이 관리하는 훌륭한 휴양소였다. 우리 비서들 4명은 각각 독립적인 휴양각에 들어 휴양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글쓰는 것이 본업이었던 만큼 휴양기간을 글쓰는데 이용하였지만 다른 비서들은 한곳에서 휴양하는 것이 답답하였다. 휴양기일이 끝나갈 무렵에 두명의 비서들이 가족을 데리고 금강산을 가보고 돌아왔다. 물론 그들도 당조직선을 통하여 보고하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휴양이 끝난 다음 조직적으로 비판되었다. 비서들을 비판하는 것은 김정일의 지시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판이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김정일 외에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수한 존재로서 자유로운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모든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중앙당 비서들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수령절대주의 틀안에서 사는 일반대중들의 생활이 어떤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화가 100% 도청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독재대상들과 간부들과 중요한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집에는 모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감시초소에서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물정을 아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그 누구도 가정생활은 사생활이기 때문에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겠다고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사회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편지 같은 것은 상대방에게 전달만 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편지는 예외 없이 전부 뜯어보고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거나 두고 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본인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그 어디에 가서 호소할 데가 없다. 그저 아마 도중에 사고로 분실된 모양이라고 답변하면 그만이다. 우리와 같이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한테 오는 우편물도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외국에서 보내오는 편지나 도서 같은 것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출판물 검열총국 같은 데서 가로채고 보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고해서 어떻게 되었는가고 그 경위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따져 물으면 혁명과업과 관계도 없는 문제에 왜 중앙당의 큰 간부가 신경을 쓰는가하고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외국의 벗들이 무엇을 보냈다고 통지가 와도 송달되기 전에는 독촉하는 법이 없고 도중에 해당기관에서 가로챘다고 예측될 때도 따지는 법이 없다.

외국의 벗들과의 서신거래는 일일이 당조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서들과 같은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직접적인 비준을 받아야 한다. 외국 손님들과 만날 때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같이 만나야 한다. 중앙당 비서인 경우에는 정식 도청장치를 해 놓고 예외 없이 녹음하며 중앙당 국제부의 면담록담당과에서 그 내용을 검토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다 김정일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외국의 벗들을 자기 집에 초청할 때에는 그 이유를 밝혀 비서가 직접 김정일에게 모사전송기로 보고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역시 모사전송기나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것은 조총련간부들이나 재중, 재미교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나는 오랫동안 대외사업을 하다보니 외국사람들 가운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고 재외교포들 속에도 각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주 친한 사람은 오히려 집에 초청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런 사람이 나와 매우 친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우려하기 때문이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가정에서 가족끼리 사랑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고 친한 친구들과의 우정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다. 오직 수령하나만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선전할 의무만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수령절대주의하에서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주장한다. 이때 그가 주장하는 조선민족이란 그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조선민족 제일주의 자체가 민족배타주의적 주장으로서 옳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조선 수령제일주의>이다. 그는 민족의 위대성은 수령의 위대성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하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 까지 노래하게 하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의 극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 같이 여기면서 아무개 민족이라고 자기 이름을 붙이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자기 민족을 모독하고 조국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같이 생각하는 자가 어떻게 민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철저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김정일 제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일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민족을 지배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남한 인민들을 동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북한 인민들과 같이 노예화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이 필요하며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자면 남한을 적대시하도록 북한 인민들을 교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남한 인민까지 지배하는 조건을 염두에 둘 때만 남북을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하고 말하지만 남북이 대립되어 있고 남한을 정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남한을 적이라고 말하다. 남한은 미제국주의 식민지이고 남한정권은 괴뢰정권이며 남한 사람은 모두 지주, 자본가들과 그들의 후손이기에 계급적 원수라고 설교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일성은 6.25전쟁때 남한의 계급적 원수를 소탕한다는 깃발을 내걸고 무자비한 동족상잔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김정일은 남한을 약화시키고 남한을 지배하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남한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극도로 질투하고 있으며 남한 사람들이 아무리 평화적 공존을 요구하여도 남한이 혼자서 평화롭게 잘 사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남한에게 불리한 것은 자연재해까지 포함하여 다 좋아하고 오직 남한을 망하게 하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다.

남한에 대한 김정일의 적대감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남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은 못쓰게 지시하고 해외에 출장나갔다가 모르고 남한제 상품을 사오면 몰수하여 불사를 뿐 아니라 남한 물건을 사온 사람을 계급성이 없다고 하여 엄벌에 처한다. 특히 군대에는 오직 남한에 대한 적개심, 복수심으로만 교양하여 명령만 내리면 남한을 언제나 불바다로 만들고 남한 인민들을 몰살하고서라도 남한을 점령하여 김정일을 승리의 광장에 모셔야 한다는 단 한가지 사상만 가지게 하고 있다. 김정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서 아웅산폭파사건을 일으켰으며 대한항공기폭파를 지시하였던 것이다.

남한 사람들은 6.25때 침략을 당하고 무참히 학살당하고 기만당하고서도 그것은 공산당이 한 짓이지 북한 동포들이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북한 동포들에 대한 동포애적 감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순박하고 선량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김정일도 우리와 같은 조선사람이고 자기 아버지와는 다른 새세대인데 설마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미사일을 개발하겠는가. 아마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우리 한국사람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까지 너그럽게 생각하고 있다.

김정일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기가 직접 지배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에게 한 태도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수백만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자기 아버지 시신궁전(금수산기념궁전)을 꾸리는데 만 막대한 자금과 자재를 낭비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 인민을 동정하고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수백만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계속 전쟁준비에만 몰두하고 인공지구위성을 쏴 올리고 <강성대국>을 건설한다고 떠드는 사람이 민족을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자기의 삼촌을 18년 동안이나 내쫓고 자기의 이복동생들을 <곁가지>라고 하여 온갖 압박을 다한 사람, 수십만 무고한 사람들을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게 하는 사람, 중국 동북지방으로 빌어먹기 위해 탈주하는 인민을 쏴 죽이고 동북지방까지 보위부요원들을 파견하여 탈북자들을 붙잡아 오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민족에 대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사람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한 동포들에 대한 민족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유일사상의 나라이고 유일적 영도의 나라이며, 수령절대주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의 생각이자 곧 인민군대의 생각이며 북한 인민들의 생각이다. 그것은 북한 인민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령과 생각을 같이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 예외가 있다고 하여 수령절대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려고 하여서는 안 된다. 김정일이 명령만 내리면 북한의 인민군대는 남한을 무찌르기 위하여 미친 듯이 달려나오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김정일이 수령으로 존재하는 한 인민군대와 북한 인민들로부터 동포애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김정일의 수령절대주의가 북한 인민들로부터 동포애를 빼앗었다는 것, 즉 가족에 대한 사랑, 벗에 대한 우정뿐 아니라 민족에 대한 사랑도 빼앗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령절대주의는 북한 주민들로부터 인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도 빼앗고 있다. 수령절대주의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인류의 태양>으로서 마땅히 인류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북한 인민에게는 그 어느 나라 인민이나 어느 나라 지도자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 일본은 사람 못살 제국주의 국가로 묘사되고 있으며 중국이나 베트남도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나라로 변질되었다고 비방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거는 것 밖에는 우리의 민족적 영웅의 초상화도 세계명인들의 초상화도 걸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은 인도주의사상이나 박애사상은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농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날조해낸 위선적인 사상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결국 김정일은 자기를 터무니없이 내세우기 위하여 다른 나라 위인들을 깎아 내리며 다른 나라 인민을 비방함으로써 북한 인민들 속에서 사실상 <인간증오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인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요구하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믿고 사랑할 권리까지 빼앗고 있다.

수령절대주의는 철저한 수령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에 기초하여서는 도덕이 성립될 수 없다. 사회공동의 이익, 민족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에 개인의 이익을 복종시킬 때에만 도덕이 성립될 수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내놓고 수령을 신격화함으로써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만을 최고의 도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회공동의 이익, 민족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덕은 모두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의 일환으로서만 가치를 가지며 독자적으로는 도덕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효성 이외의 도덕과 양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령절대주의로 하여 북한 인민들은 전 인류적 가치를 가지는 도덕, 전 민족적 가치를 가지는 도덕을 잃어 버렸다.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날 북한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위안하기 위하여 과거를 잊지 말라고 하며 지난날 노동자, 농민들이 지주, 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 밑에 얼마나 고통과 불행을 겪었는가를 과장하여 보여주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계급적 원수들을 잊지 말기 위한 <계급교양>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과거의 비참한 생활에 비하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키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잘 사는 것은 전혀 소개하지 않고 못 사는 것만을 선전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비참한 생활형편을 소개하면서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복구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 김정일은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아야 한다면서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러나 오늘 북한과 같은 비참한 생활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수령절대주의가 계속 지배하는 한 북한 인민들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비참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김정일이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하고 개인독재를 실시하여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가 북한 인민들을 무더기로 굶겨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그가 자기를 <21세기의 태양>이요,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스승>이요 하면서 철없이 놀아도 우리는 그를 민족의 반역자로까지는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혁명이요, 사회주의요, 조국통일이요 하면서 사람들을 속일뿐이 아니며 그저 사람들의 자유권을 유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을 말살하여 인권의 뿌리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책동하기 때문에 그와는 타협이 아니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