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문제(6)
- 관리자
- 2010-06-07 15:24:05
- 조회수 : 3,831
2. 북한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지금 북한은 <인권이전>의 사회이다. 수령절대주의 사회에서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수령만이 절대적인 인권을 가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수령의 부속물이다. 사람들의 운명과 인권이 모든 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수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는 사회에서 수령절대주의 독재를 반대할 수 있는 인권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이 아무리 인권을 유린하여도 그것은 최고의 도덕으로 평가된다. 어느 선진대국에서는 대통령의 성추문 문제가 국회에서까지 크게 논의되었지만 북한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기 때문에 수령의 성추문 문제라든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의 인권유린 문제는 제기될 수 없다.
(1) 경제생활에서의 인권유린
사람들은 보통 <인권>이라고 할 때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가 등 주로 사회정치생활에서의 평등한 권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란 <해당사회의 공동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삶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인간의 권리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조건과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조건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가장 초보적인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초보적인 삶의 조건도 보장해주지 않고 대량적으로 굶겨 죽이고 있다.
북한에서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협동농장에서 토지는 <협동적 소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의 소유로 되고 있으며 당의 소유는 곧 국가의 소유로 되고 있다. 협동농장원에게는 토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권리도 없다. 협동농장의 토지를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수령의 대리인인 리당비서이다. 결국 협동농장의 토지도 수령의 소유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모든 생산수단이 인민의 소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산수단을 인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생산물을 처분할 권리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한 권리는 인민들은 못 가지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생산수단을 모두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인민들에게 생활조건은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② 무엇보다도 큰 인권유린은 수백만 근로자들을 굶겨 죽이고 있는 것이다.
토지가 개인의 소유로 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자연재해라든가 또 개별적 농민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 농사가 잘 안되어 굶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별 문제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북한에서와 같이 공장과 농장을 모두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을 독점하고 모든 재부를 독점하고 있는 수령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북한의 아사자 수에 대하여 의견이 구구하다.
그것은 북한이 아사자 수를 비밀에 붙이고 기아상태를 조사하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에 들어가 실정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하여 이러구저러구 자기의 주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는 소위 <권위 있는> 외국 인사들의 주장이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똑똑히 알아보지도 않고 남의 나라 인민이 굶어 죽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아는 체 하면서 함부로 북한의 기아상태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느니 뭐니 하면서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한심한 것은 자기 동포들이 부르짖는 아우성 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외국의 <권위 있는 인사>들의 말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똑똑히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생사에 관한 문제에 대해 경솔히 발언하는 것보다 더 비도덕적인 행동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서 그저 산 것이 아니라 최고 참모부에서 다년간 사업하였으며 가장 정확한 아사자 통계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가지고 온 통계는 뜬소문이 아니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간부로부터 받은 재료이다.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담당비서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군수공장 노동자들에게 9개월 이상 식량배급을 주지 않게 되자 절반이상이 직장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수공장들에게 기술수준이 높아 <보배>라고 불리던 고급기술공만 2천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굶어서 몸이 부은 것을 비상대책을 세워 고쳐주었는데 다시 굶어서 몸이 붓게 되자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1996년 11월에 중앙당 비서들이 모여 전국의 양곡생산량을 따져보니 210만 톤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식량사정이 너무 걱정되어 아사자관계와 식량관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에게 기아상태를 물어 본 것이다. 이때가 11월 중순이었다.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하여 50만 명 이상이 아사하였으며 1996년에는 11월 중순 현재 벌써 100만 명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1996년의 양곡생산은 210만 톤밖에 안 된다고 하면서 이대로 나간다면 1997년에는 200만 명이 아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직지도부 책임일군이 중앙당 비서에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도 없고 할 리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1995년부터 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자료이다. 1997년과 98년 사정은 똑똑히 알 수 없으나 식량사정이 크게 개선된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매년 100만명정도 굶어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1998년초에 중국신화사통신이 북한의 농업위원회 간부가 제공한 자료라고 하며 보도한데 의하면 97년 말까지 280만 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19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아사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면 97년에는 130만 명이 아사하여 도합 280만 명이라는 아사자 숫자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995년부터 1996년 말까지 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지 사태를 과장하여 말한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5명중 1명이 굶어 죽는 사회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우리의 주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부정하고 나선다. 잘 모르겠으면 찾아와 물어보아야 할 것 아닌가.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행동인가.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의 인구가 얼마나 되고, 매년 자연증가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구수를 비밀에 붙이고 허위숫자를 공표하며 그나마 거기서 군인수를 빼놓는다. 북한의 인구는 보통 2천300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군인수는 극비에 붙이고 있다. 2천300만에 군인수를 합쳐야 북한의 인구수가 나오게 된다. 설사 그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구를 2천 250만이라고 가정하여도 1년에 100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부면 22.5:1이 굶어죽는 것으로 되지 어째서 5:1로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존경받는> 사람이 어째서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한 우리들의 우려에 대하여 그토록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의 기아상태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은 북한 통치자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1996년에 도처에서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말을 들었고 평양에서 있은 한 건은 직접 확인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너무 창피하여 처음에는 이 이야기만은 꺼내지 않았다. 그 후 많은 탈북자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말하였으며 그와 같은 비참한 자료들이 잡지 <월간조선>에 적지 않게 소개되었다.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이야기는 해방전 일제식민지 통치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6.25전쟁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고기를 팔고 먹을 지경이 되었으니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면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사람이 10여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겠는가.
그러면 누가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하고 사람의 고기까지 먹게 만들었는가, 누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얻어먹기 위하여 10여만 명이 떼를 지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만도 여기지 않는 북한 통치집단이며 모든 권력과 재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위대한 장군>인 김정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김정일과 함께 역사 앞에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③ 북한 정권은 수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일 뿐 아니라 살길을 찾아가는 자유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을 응당 먹여 살려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살길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하며 인민들 스스로 살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유라고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재부를 다 독점하고 인민들에게 먹을 양곡마저 주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리도 없고 체면도 없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이 자체의 힘으로 살길을 개척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굶주린 인민들에게 계속 힘들고 고된 역사(役事)를 강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벌어먹기 위하여 중국동북지방에 조선족 친척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총칼로 막고 있으며 사선을 넘어 요행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동북지방에 까지 도착하여 헤매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보위부요원들을 파견하여 마치 도망친 노예를 잡아가는 것처럼 붙잡아다가 야수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파렴치하게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고 비럭질을 하면서도 북한 인민들에게는 빌어먹을 자유마저 주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는 평양거리에 빌어먹는 사람들이 나 다니는 것을 단속하는 한편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무더기로 농촌에 추방하는 소동까지 벌이고 있다.
원래 김정일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모든 장애인들을 다 산간오지로 추방하였다. 이제 와서는 자기가 경제를 망치고 인민들을 빌어먹게 만들어 놓고는 그들을 보기 싫다고 농촌으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분이 좋고 김정일에게 충실하다고 하여 평양시에 살 수 있도록 우대를 받는 사람들의 생활은 편안한가? 그들 가운데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굶주리고 있으며 고생이 막심하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금수산 기념궁전>을 꾸리는데 막대한 자금을 탕진하였을 뿐아니라 <충성의 노력동원>의 명목 밑에 굶주린 주민들을 강제로 일을 시켰으며 김일성의 영생탑 건설과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을 빛내기 위한 우상화 건설에 계속 주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1996년에 평양만수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김일성동상에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리기 위하여(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8일을 기념하여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린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평양시민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차를 이용할 수 있는 간부들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줄지어 먼길을 걸어 왔다가 걸어서 돌아간다. 겨울에 꽃다발(생화)을 만드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평양시가 누루를 위하여 존재하며 평양시민들은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말에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공장에 배치되어 당비서 수업(중앙당 간부들을 6개월씩 지방공장 당비서로 배치하여 당비서로서 현실을 체험시키는 간부단련 방법의 하나)을 하다가 겨울준비를 하기 위하여 돌아온 부부장이 찾아와 사업정형과 지방의 생활형편을 보고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공장 노동자들은 조개잡이도 하고 물고기도 좀 잡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굶주린 유랑민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곤란하다고 하면서 조개잡이 나갔다가 희생되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그 지방 주민들은 바닷가에 나가서 조개를 잡아 그것을 중국 어부들이 가져오는 밀가루와 바꾸고 있는데 굶주린 인민들이 모두 조개잡이에 나가다 보니 조개의 씨가 말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썰물이 나간 해변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념 없이 조개를 잡다보면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한꺼번에 300여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굶주린 부모들이 자기들은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나가서 빌어먹으라고 그들을 집에서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거지가 많이 몰려다니며 특히 지방의 역전에는 빌어먹는 아이들이 우굴우굴한데 그 중 적지 않은 아이들이 굶어죽는다고 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우리 중앙당비서들에게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새로운 과업을 주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김정일은 스위스에는 자기 서기실에 있는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대사로 내보냈으며 그 나라에는 보통 사람들이 대표단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저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거기에 별장을 두고 자기 가족을 보내 살림도 하고 공부도 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1996년에 스위스 대사는 김정일의 중학교 동창생이고 서기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김정일에게 스위스에서는 풀만 먹이는 방법으로 소와 양을 잘 기른다는 자료를 보고하면서 식량사정이 곤란한 북한에서 스위스의 경험을 본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김정일은 스위스주재 대사의 보고자료를 우리 비서들에게 내려 보내주면서 대책을 세 울데 대한 과업을 주었던 것이다.
비서들은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또 하나의 천재적 창안이라고 떠들면서 당장 비서들이 한 개 도씩 맡아 사료로 쓸 풀판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자고 제기하였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고 있으며 인민들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있는 형편에서 고기를 먹기 위한 풀판조성이 말이 되는가. 이때 자강도당 책임비서는 중앙당에 와서 자기 도에서는 너무 먹을 것이 없어 주민들에게 니탄까지 먹인다고 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풀판을 만들 수 있는 땅이 있고 노동력이 있다면 강냉이라도 한 포기 더 심고 돼지먹이는 뚝감자(돼지에게 먹이는 감자로서 두어 번 얼리면 독이 빠져 사람도 먹을 수 있다함)라고 한 포기 더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기 먹는 것을 바라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고 고기를 더 많이 먹을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하는 것이다.
1996년 말에 인민군대의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김정일은 크게 노하여 빨리 대책을 세우라고 호령하였다.
이에 따라 당조직들과 독재기관들이 총동원되었다. 결국 군과 리의 농촌간부들을 발동시켜 농민들이 자기들의 식량으로 남겨 놓았던 몫 가운데서 3개월 분을 무조건 떼어서 군대에 바치는 <애국민 헌납운동>을 강행하였다. 이런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중앙당 비서들도 장마당에 나가 쌀을 200㎏씩 사서 군대에 보냈다.
김정일이 이와 같이 농민들이 겨우 먹고 농사를 지어야 할 양식을 강제로 징수하다보니 군대가 주민들의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여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되었다. 이런 판에서 살인강도가 떼지어 나오고 사람의 고리를 파는 자가 나오는 것이 어찌 우연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비교적 우대 받고 잘 산다는 평양시에서도 특수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보통 근로자들은 모두 이대로는 정 못살겠다. 빨리 전쟁이라도 일어나 끝장이 나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북한의 일반 민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지금 북한은 <인권이전>의 사회이다. 수령절대주의 사회에서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수령만이 절대적인 인권을 가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수령의 부속물이다. 사람들의 운명과 인권이 모든 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수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는 사회에서 수령절대주의 독재를 반대할 수 있는 인권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이 아무리 인권을 유린하여도 그것은 최고의 도덕으로 평가된다. 어느 선진대국에서는 대통령의 성추문 문제가 국회에서까지 크게 논의되었지만 북한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도덕으로 되고 있기 때문에 수령의 성추문 문제라든가 수령과 그의 대리인들의 인권유린 문제는 제기될 수 없다.
(1) 경제생활에서의 인권유린
사람들은 보통 <인권>이라고 할 때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가 등 주로 사회정치생활에서의 평등한 권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란 <해당사회의 공동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삶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인간의 권리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조건과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조건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가장 초보적인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①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초보적인 삶의 조건도 보장해주지 않고 대량적으로 굶겨 죽이고 있다.
북한에서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협동농장에서 토지는 <협동적 소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의 소유로 되고 있으며 당의 소유는 곧 국가의 소유로 되고 있다. 협동농장원에게는 토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권리도 없다. 협동농장의 토지를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수령의 대리인인 리당비서이다. 결국 협동농장의 토지도 수령의 소유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모든 생산수단이 인민의 소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산수단을 인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생산물을 처분할 권리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한 권리는 인민들은 못 가지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생산수단을 모두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인민들에게 생활조건은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② 무엇보다도 큰 인권유린은 수백만 근로자들을 굶겨 죽이고 있는 것이다.
토지가 개인의 소유로 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자연재해라든가 또 개별적 농민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 농사가 잘 안되어 굶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별 문제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북한에서와 같이 공장과 농장을 모두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을 독점하고 모든 재부를 독점하고 있는 수령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북한의 아사자 수에 대하여 의견이 구구하다.
그것은 북한이 아사자 수를 비밀에 붙이고 기아상태를 조사하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에 들어가 실정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하여 이러구저러구 자기의 주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는 소위 <권위 있는> 외국 인사들의 주장이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똑똑히 알아보지도 않고 남의 나라 인민이 굶어 죽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아는 체 하면서 함부로 북한의 기아상태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느니 뭐니 하면서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한심한 것은 자기 동포들이 부르짖는 아우성 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외국의 <권위 있는 인사>들의 말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똑똑히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생사에 관한 문제에 대해 경솔히 발언하는 것보다 더 비도덕적인 행동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서 그저 산 것이 아니라 최고 참모부에서 다년간 사업하였으며 가장 정확한 아사자 통계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가지고 온 통계는 뜬소문이 아니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간부로부터 받은 재료이다.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담당비서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군수공장 노동자들에게 9개월 이상 식량배급을 주지 않게 되자 절반이상이 직장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수공장들에게 기술수준이 높아 <보배>라고 불리던 고급기술공만 2천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굶어서 몸이 부은 것을 비상대책을 세워 고쳐주었는데 다시 굶어서 몸이 붓게 되자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1996년 11월에 중앙당 비서들이 모여 전국의 양곡생산량을 따져보니 210만 톤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식량사정이 너무 걱정되어 아사자관계와 식량관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에게 기아상태를 물어 본 것이다. 이때가 11월 중순이었다.
조직지도부 책임간부의 말에 의하면 19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하여 50만 명 이상이 아사하였으며 1996년에는 11월 중순 현재 벌써 100만 명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1996년의 양곡생산은 210만 톤밖에 안 된다고 하면서 이대로 나간다면 1997년에는 200만 명이 아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직지도부 책임일군이 중앙당 비서에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도 없고 할 리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1995년부터 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자료이다. 1997년과 98년 사정은 똑똑히 알 수 없으나 식량사정이 크게 개선된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매년 100만명정도 굶어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1998년초에 중국신화사통신이 북한의 농업위원회 간부가 제공한 자료라고 하며 보도한데 의하면 97년 말까지 280만 명이 아사하였다고 한다. 1996년 말까지 150만 명 이상이 아사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면 97년에는 130만 명이 아사하여 도합 280만 명이라는 아사자 숫자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995년부터 1996년 말까지 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지 사태를 과장하여 말한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5명중 1명이 굶어 죽는 사회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우리의 주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부정하고 나선다. 잘 모르겠으면 찾아와 물어보아야 할 것 아닌가.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행동인가.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의 인구가 얼마나 되고, 매년 자연증가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구수를 비밀에 붙이고 허위숫자를 공표하며 그나마 거기서 군인수를 빼놓는다. 북한의 인구는 보통 2천300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군인수는 극비에 붙이고 있다. 2천300만에 군인수를 합쳐야 북한의 인구수가 나오게 된다. 설사 그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인구를 2천 250만이라고 가정하여도 1년에 100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부면 22.5:1이 굶어죽는 것으로 되지 어째서 5:1로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존경받는> 사람이 어째서 북한의 기아상태에 대한 우리들의 우려에 대하여 그토록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의 기아상태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은 북한 통치자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1996년에 도처에서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말을 들었고 평양에서 있은 한 건은 직접 확인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너무 창피하여 처음에는 이 이야기만은 꺼내지 않았다. 그 후 많은 탈북자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말하였으며 그와 같은 비참한 자료들이 잡지 <월간조선>에 적지 않게 소개되었다.
사람의 고기를 판다는 이야기는 해방전 일제식민지 통치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6.25전쟁시기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고기를 팔고 먹을 지경이 되었으니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면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사람이 10여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겠는가.
그러면 누가 수백만 인민을 굶어죽게 하고 사람의 고기까지 먹게 만들었는가, 누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얻어먹기 위하여 10여만 명이 떼를 지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만도 여기지 않는 북한 통치집단이며 모든 권력과 재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위대한 장군>인 김정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김정일과 함께 역사 앞에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③ 북한 정권은 수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일 뿐 아니라 살길을 찾아가는 자유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을 응당 먹여 살려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살길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하며 인민들 스스로 살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유라고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재부를 다 독점하고 인민들에게 먹을 양곡마저 주지 않는 조건에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리도 없고 체면도 없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이 자체의 힘으로 살길을 개척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굶주린 인민들에게 계속 힘들고 고된 역사(役事)를 강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벌어먹기 위하여 중국동북지방에 조선족 친척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총칼로 막고 있으며 사선을 넘어 요행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동북지방에 까지 도착하여 헤매는 사람들을 자기들의 보위부요원들을 파견하여 마치 도망친 노예를 잡아가는 것처럼 붙잡아다가 야수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파렴치하게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고 비럭질을 하면서도 북한 인민들에게는 빌어먹을 자유마저 주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는 평양거리에 빌어먹는 사람들이 나 다니는 것을 단속하는 한편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무더기로 농촌에 추방하는 소동까지 벌이고 있다.
원래 김정일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모든 장애인들을 다 산간오지로 추방하였다. 이제 와서는 자기가 경제를 망치고 인민들을 빌어먹게 만들어 놓고는 그들을 보기 싫다고 농촌으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분이 좋고 김정일에게 충실하다고 하여 평양시에 살 수 있도록 우대를 받는 사람들의 생활은 편안한가? 그들 가운데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굶주리고 있으며 고생이 막심하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금수산 기념궁전>을 꾸리는데 막대한 자금을 탕진하였을 뿐아니라 <충성의 노력동원>의 명목 밑에 굶주린 주민들을 강제로 일을 시켰으며 김일성의 영생탑 건설과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을 빛내기 위한 우상화 건설에 계속 주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1996년에 평양만수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김일성동상에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리기 위하여(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8일을 기념하여 매달 8일마다 꽃다발을 올린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평양시민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차를 이용할 수 있는 간부들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줄지어 먼길을 걸어 왔다가 걸어서 돌아간다. 겨울에 꽃다발(생화)을 만드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평양시가 누루를 위하여 존재하며 평양시민들은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말에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공장에 배치되어 당비서 수업(중앙당 간부들을 6개월씩 지방공장 당비서로 배치하여 당비서로서 현실을 체험시키는 간부단련 방법의 하나)을 하다가 겨울준비를 하기 위하여 돌아온 부부장이 찾아와 사업정형과 지방의 생활형편을 보고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공장 노동자들은 조개잡이도 하고 물고기도 좀 잡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굶주린 유랑민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곤란하다고 하면서 조개잡이 나갔다가 희생되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그 지방 주민들은 바닷가에 나가서 조개를 잡아 그것을 중국 어부들이 가져오는 밀가루와 바꾸고 있는데 굶주린 인민들이 모두 조개잡이에 나가다 보니 조개의 씨가 말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썰물이 나간 해변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념 없이 조개를 잡다보면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한꺼번에 300여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굶주린 부모들이 자기들은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나가서 빌어먹으라고 그들을 집에서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거지가 많이 몰려다니며 특히 지방의 역전에는 빌어먹는 아이들이 우굴우굴한데 그 중 적지 않은 아이들이 굶어죽는다고 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우리 중앙당비서들에게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새로운 과업을 주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김정일은 스위스에는 자기 서기실에 있는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대사로 내보냈으며 그 나라에는 보통 사람들이 대표단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저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거기에 별장을 두고 자기 가족을 보내 살림도 하고 공부도 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1996년에 스위스 대사는 김정일의 중학교 동창생이고 서기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김정일에게 스위스에서는 풀만 먹이는 방법으로 소와 양을 잘 기른다는 자료를 보고하면서 식량사정이 곤란한 북한에서 스위스의 경험을 본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김정일은 스위스주재 대사의 보고자료를 우리 비서들에게 내려 보내주면서 대책을 세 울데 대한 과업을 주었던 것이다.
비서들은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또 하나의 천재적 창안이라고 떠들면서 당장 비서들이 한 개 도씩 맡아 사료로 쓸 풀판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자고 제기하였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고 있으며 인민들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있는 형편에서 고기를 먹기 위한 풀판조성이 말이 되는가. 이때 자강도당 책임비서는 중앙당에 와서 자기 도에서는 너무 먹을 것이 없어 주민들에게 니탄까지 먹인다고 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풀판을 만들 수 있는 땅이 있고 노동력이 있다면 강냉이라도 한 포기 더 심고 돼지먹이는 뚝감자(돼지에게 먹이는 감자로서 두어 번 얼리면 독이 빠져 사람도 먹을 수 있다함)라고 한 포기 더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기 먹는 것을 바라겠는가.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고 고기를 더 많이 먹을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하는 것이다.
1996년 말에 인민군대의 군량미가 떨어졌다고 김정일은 크게 노하여 빨리 대책을 세우라고 호령하였다.
이에 따라 당조직들과 독재기관들이 총동원되었다. 결국 군과 리의 농촌간부들을 발동시켜 농민들이 자기들의 식량으로 남겨 놓았던 몫 가운데서 3개월 분을 무조건 떼어서 군대에 바치는 <애국민 헌납운동>을 강행하였다. 이런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중앙당 비서들도 장마당에 나가 쌀을 200㎏씩 사서 군대에 보냈다.
김정일이 이와 같이 농민들이 겨우 먹고 농사를 지어야 할 양식을 강제로 징수하다보니 군대가 주민들의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여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되었다. 이런 판에서 살인강도가 떼지어 나오고 사람의 고리를 파는 자가 나오는 것이 어찌 우연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비교적 우대 받고 잘 산다는 평양시에서도 특수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보통 근로자들은 모두 이대로는 정 못살겠다. 빨리 전쟁이라도 일어나 끝장이 나면 좋겠다고 한다.
이것이 북한의 일반 민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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