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문제(2)
  • 관리자
  • 2010-06-07 15: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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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한 의 인 권 문 제

1. 인권과 양립할 수 없는 수령절대주의 체제

북한에서 인권유린은 수령절대주의에 의하여 정신도덕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으며 정치사회 체제에 의하여 법적으로 담보되어 있다.

(1)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본질적 특징

수령절대주의는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한층 더 개악한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수령독재론은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마르크스 자신은 수령의 개인숭배와 수령독재를 반대하였지만, 그의 무산계급 독재사상은 결국 수령독재의 사상적 기초로 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은 가장 선진계급이기 때문에 사회전체의 이익,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의 영도계급으로서 노동계급정권을 세우고 노동계급의 독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탈린 시기에 와서 노동계급 독재사상은 수령독재사상으로 전환되었다.

노동계급 독재론으로부터 수령독재론으로의 이행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노동계급은 가장 선진적 계급으로서 온 사회(전체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며,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부대로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며, 수령은 가장 선진적인 탁월한 공산주의자로서 공산당의 이익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독재는 곧 공산당의 독재이며 공산당의 독재는 곧 수령의 독재이다. 이리하여 소련식 사회주의 하에서는 수령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수령에 대한 개인우상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수령은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종신 독재자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민주주의적 정치문화가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수령의 개인독재사상이 대중에게 접수되지 않았다. 예컨대 영국 공산당은 제 2차대전 후 스탈린의 개인숭배가 매우 강하고 개인독재가 여러 나라에 유포되고 있을 때에도 영국에서는 의회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발전되어온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의회 민주주의를 이용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리고 스탈린도 영국 공산당의 제의를 승인하였던 것이다.

민주주의적 정치문화 수준이 낮고 봉건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일수록 수령에 대한 개인우상화가 더 강하였으며, 수령의 개인독재가 더 거침없이 실시되었다. 이점에서 봉건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던 북한에서는 처음부터 수령에 대한 개인우상화가 그 어느 사회주의 나라에서보다도 더 혹심하였으며 개인독재가 더욱 강하였다. 첫 시기에는 소련의 지배 하에서 소련식 독재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기 때문에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는 소련과 다른 점이 크지 않았다.

북한에서 개인우상화와 수령독재가 획기적으로 강화된 것은 1960년대 후반기부터였다.

6.25조선전쟁에 중국지원군이 참전하게 된 것을 계기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간의 모순을 이용하여 소련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당내에 존재하고 있던 여러 반대파 세력들을 숙청하고 1958년경에는 완전히 자기 파를 중심으로 하는 수령독재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을 김일성이 따라가지 않게 되자 중국은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공격하였다. 이렇게 되자 김일성은 소련도 믿을 수 없고 중국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체의 힘으로 남한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할 데 대한 노선을 내걸고 군비확장과 전쟁준비에 큰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북한 통치자들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반대한다고 하였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축소된 형태로 모방하였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에 대한 기인숭배의 도수를 더욱 높였으며, 모든 분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청산한다는 극좌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에서 모택동을 반대하는 강한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것만큼, 북한에서의 문화대혁명은 몇몇 인텔리들을 숙청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는 전례 없이 강화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하고 당중앙에 들어와 자기 삼촌 김영주와 권력다툼을 하기 시작한 때이다.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의 초점은 누가 더 김일성을 신격화하는데서 앞장서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 우상화는 종래의 소련식 수령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수령절대주의로 전환되게 되었다.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스탈린식 수령독재론과 구별되는 점은 어디에 있는가.

스탈린주의의 수령론은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이 전당과 전체인민을 영도해야 한다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노동계급이 가장 선진계급이기 때문에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여 전체 인민을 영도할 자격이 있으며,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부대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표하여 노동계급을 영도할 자격이 있고, 수령은 가장 탁월한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당의 이익을 대표하여 전당을 영도할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수령의 영도는 곧 공산당의 영도이고 노동계급의 영도로 되기 때문에 수령의 영도와 독재를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무산계급 독재사상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해석되었다.

북한이 처음으로 창안한 수령절대주의는 노동계급이나 인민대중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수령이 출발점으로 되고 있다. 즉 수령의 영도가 있음으로 하여 공산당이 있을 수 있고, 공산당의 영도가 있음으로 하여 노동계급이 있을 수 있으며, 노동계급의 영도가 있음으로 하여 자주적인 인민대중(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인민대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먼저 수령이 탄생하여 탁월한 혁명사상을 창시한 다음 이 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수령의 당이 창건되고, 수령과 당의 영도 밑에 혁명적인 노동계급이 형성되며, 수령과 당의 영도 밑에 노동계급을 핵심으로 하는 혁명적인 인민대중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이 있고서야 공산당이 있을 수 있고, 수령이 있고서야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이 있을 수 있으며, 국가와 군대 등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수령론에서는 수령의 독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수령이 당과 노동계급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한다는 사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의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이 인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령을 위하여 인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완전히 본말을 전도한 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스탈린주의의 수령론은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독재의 필요성을 강조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연장선에서 수령의 독재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설득하려 하였다. 따라서 수령은 언제나 혁명적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독재를 실시하였다. 즉 수령의 모든 명령지시는 수령개인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명령지시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개인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었으며, 노동계급도 수령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존재, 수령을 운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존재로 되었다.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절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봉건적 충효사상을 이용하였다. 봉건적 충효사상은 부모가 있고서야 자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생명의 은인이고 주인이라는 사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은 것만큼 부모를 잘 모시는 것, 즉 효성을 다하는 것을 지상의 도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가족과 가족이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면서 모든 가족들의 으뜸가는 가족의 우두머리가 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모든 가족의 공동의 어버이로 되며, 따라서 모든 가족들은 왕을 공동의 어버이로 모시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처럼 왕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이와 같은 충효에 관한 봉건사상을 수령을 <인민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의 부모>라는 개념과 결부시켰다.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준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생명인 사회정치적 생명은 부모가 주는 것이 아니라 수령이 준다. 그것은 수령의 영도가 있음으로 하여 당이 있고, 당의 영도가 있음으로 하여 인민의 정권이 있고, 인민의 정권이 있음으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생명은 동물도 다 가지고 있다. 육체적 생명만 가지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 수 없다.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생명은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이며, 사회정치적 생명은 육체적 생명보다 비할 바 없이 귀중하다. 따라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준 수령은 육체적 생명을 준 부모보다 비할 바 없이 위대하고 귀중한 어버이이다. 모든 사람들은 수령을 가장 귀중한 생명을 준 어버이로서 우러러 모시고 그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령은 누가 선출하는가?

수령은 누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추대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은 김일성이 14살 때인 1926년에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창립하였고, 18살 때인 1930년에는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조선혁명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는 등 기적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조선인민이 자연히 그를 수령으로 추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경우에는 출생할 때부터 광명성이 탄생하였다고 사람들이 떠들면서 큰 나무껍질을 벗기고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글을 썼으며, 그를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김정일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된 것도 추대되는 형식이었으며 김일성이 사망 후 당총비서로 된 것도,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된 것도 다 추대되는 형식을 취하였다.

수령은 인민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고 수령이 인민으로 하여금 추대하도록 만든다는 논리에 따르면 수령은 인민에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를 베풀 뿐이고, 인민은 수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만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수령은 당과 국가와 인민의 위에 서는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인정되고 인민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정되게 되었다.

북한통치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수령은 혁명과 건설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수령에 대한 충성은 당에 대한 충성, 노동계급에 대한 충성, 인민에 대한 충성의 최고 표현이며, 수령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은 최고의 도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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