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문제(4)
- 관리자
- 2010-06-07 15: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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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령절대주의의 사회제도적 지반
① 경제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 수령의 소유제도
⒝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경제생활
② 정치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유일적인 정치조직에 망라시킨다.
⒝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
⒞ 2중, 3중의 독재체제
⒟ 수령절대주의의 생활양식화
③ 사상문화 생활의 수령절대주의화
⒜ 교육제도의 유일사상화
⒝ 문화제도의 유일사상화
보통 해당사회의 사상은 그 사회제도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경우에는 반대로 사회제도가 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먼저 계급투쟁과 무산계급 독재사상이 나오고, 그것을 지침으로 하는 공산당이 창립되며, 공산당의 영도 밑에 노동계급의 독재정권이 서고, 독재정권의 권력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제도가 서게 된다. 북한에서는 처음에 스탈린주의를 구현한 소련식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었지만, 스탈린주의가 수령절대주의로 변질되면서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한 북한식 사회제도가 수립되었다.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한 북한식 사회제도가 수립됨으로써 수령절대주의는 공고한 사회제도적 지반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의 사회제도화는 김정일이 당중앙에 들어온 이후 196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되었으며, 1974년 그가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은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① 경제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사회주의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제도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함으로써 경제적 특권이 나오고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만들면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의 근원을 제거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사회적 소유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사회의 전체성원 즉 인민대중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독재를 혁명의 신성한 무기로 찬양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것이 당의 독재, 수령의 독재로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었다. 인민대중의 정치문화수준이 낮을 수록 수령의 개인독재가 더욱 강화되었다. 개인독재가 강화될 수록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인민대중이 아니라 독재자인 수령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된다.
해방 후 북한 주민들 속에는 봉건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으며 민주주의적 정치문화가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정권을 잡은 김일성과 빨치산 참가자들은 민주주의 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공산주의 기치를 들고 투쟁한 만큼 그들은 민주주의적 정치문화를 습득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는 김일성을 포함하여 중학교 교육을 완전히 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점에서 조선노동당은 공산당 수뇌부를 인테리들이 장악한 다른 나라 당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일성은 정권을 잡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후 자기파 중심의 독재를 확립한 때부터 점차 봉건적 계몽군주를 닮아가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되면서 김일성 정권은 급속히 봉건화 되었다.
⒜ 수령의 소유제도
김정일은 먼저 국가경제로부터 당경제를 분리시키는 사업부터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는 당을 관리운영하고 비밀혁명운동(남조선 혁명과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당경제를 완전히 분리시켜 독자적인 경제체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경제는 완전히 김정일 개인소유에 속하는 경제였다.
김정일은 가장 기술장비가 좋고 특히 외화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소들을 다 당경제에 포함시켰다. 금(金)은 곧 외화이기 때문에 금광 같은 것은 1차적으로 당경제에 편입되었다. 그 후 그의 욕망이 자라남에 따라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을 망라하여 종합적인 경제체계를 이루도록 당경제체계를 발전시켰다.
원래 당의 재정은 재정경리부가 관할하고 있었으나, 당경제가 대대적으로 확대되면서 재정경리부만으로써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게 되어 재정경리부를 크게 확장하고서도 제2 재정경리부, 제3 재정경리부라고 볼 수 있는 39호실, 38호실 같은 것을 당의 중요한 부서로 새로 내왔다. 재정경리부와 39호실, 38호실 산하에는 많은 기업소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당의 기업소로서 특별히 우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평양 중심으로부터 약 20㎞ 떨어진 곳에 있는 상원시멘트 공장은 서구라파에서 수입한 현대적인 공장인데, 내각에 속한 다른 시멘트 공장은 여러 가지 생산조건이 보장되지 않아 생산을 못하여도 당에 소속된 상원시멘트 공장만은 모든 조건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여 주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당권을 이용하여 당중앙으로부터 군(郡)당에 이르기까지 <충성의 외화벌이>과업을 주고 외화를 획득하여 바치는 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송이버섯이나 전복 따위의 토산물까지도 비싼 값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당이 독점하여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것은 김정일이 외화를 독점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일이 외화를 독점하다보니 내각총리는 몇십만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지만 김정일은 거의 매일 일상적인 행사로 자주 진행하고 있는 술파티에서 몇십만불을 탕진하고 있다.
다음으로 김정일은 군경제를 국가경제로부터 독립시켰다. 1995년에 군수공장 노동자는 약 50만 명이었다. 군수공장들은 비교적 기술장비수준이 높다. 군경제를 행정적으로는 제2경제위원회라는 것이 관리하는데, 군경제에 대해서는 내각에서 전혀 간섭을 못하고 오직 군경제가 요구하는 것을 보장만 해주게 되어 있다. 군경제는 전적으로 당의 군수공업부가 장악지도하고 있다. 제2경제위원회 산하에는 국방과학원을 비롯하여 핵무기, 미사일 연구기지들도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당 군수공업부가 장악 지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각에 속해 있는 민수공장들에도 다 군수품 생산직장이 있다. 이것을 이른바 일용직장(생활필수품 생산직장)이라고 부른다. 일용직장에 군수품 생산과제가 떨어지면 민수생산은 그만두고 우선적으로 군수생산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경제도 결국 당경제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개인에게 속한 경제라고 볼 수 있다.
당경제와 군경제를 제외한 나머지가 내각에 속한 국가경제 또는 인민경제라고 볼 수 있는데 내각에 속한 경제도 내각 총리나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마음대로 관리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김정일의 승인을 받아 처리하며 당경제와 군경제를 우선적으로 보장해주는 경제, 즉 당경제와 군경제에 종속된 경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경제규모의 면에서가 아니라 중요성의 면에서 보면 제1경제가 당경제이고, 제2경제가 군경제이며, 제3경제가 내각 경제(국민경제)라고 볼 수 있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란 생산수단의 처분권에 관한 문제인 만큼, 북한에서 형식상으로는 생산수단이 국가적 소유 또는 사회적 소유로 되어 있지만, 처분권의 견지에서 보면 다 수령 개인의 소유로 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어보기로 하자.
1996년에 전력생산이 190만∼200만㎾가 생산되었는데, 이것은 소요량의 20%정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북한에 크고 작은 공장이 모두 1만5천개정도 있었다. 이때 모든 공장을 제대로 원만히 돌리자면 1.000만㎾의 전력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생산된 200만㎾ 가운데서 단 1분도 정전시켜서는 안 되는 특수대상들에 필요한 전력이 80만㎾이고, 도중손실을 20만㎾로 보면 결국 남는 것은 100만㎾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전력이 부족하다보니 특수권력기관들에서는 내각총리나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과는 협의하지 않고 직접 김정일에게 자기 기관에 전력을 우선 공급해 달라는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았다.
김정일이 비준한 문건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법적문건이다. 특수권력기관들은 내각의 전력공업성(이전의 정무원 전력공업부)을 찾아가 김정일의 비준문건을 내대고 전력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라고 강요하고 협박하였다. 전력공업성에서는 도저히 이런 요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사정을 김정일에게 신소하였다. 김정일은 전력공업성의 신소를 당중앙의 비서들에게 내려보내 주면서 비서들이 협의하여 처리하라는 과업을 주었다.
비서들이 모여 요해하여 보았더니 김정일로부터 전력을 우선적으로 받도록 비준 받은 특수권력기관은 190여 개였다. 생산된 전력을 이러한 특수권력기관들에만 공급하려고 하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비서들은 김정일의 비준문건을 무효화하도록 다시 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비준을 받아 전력공업성이 합리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데 대한 조치를 취하였다.
1996년에는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파탄상태로 되어 1년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매달 생산계획을 세우는 형편이었다. 이해 상반기에 국가계획위원장에게 강철생산 정형을 알아보았더니, 전달에 1만8천톤을 생산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5천톤을 내다 팔아야 다음달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사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민군대의 장령(장성)들이 와서 생산된 강철을 다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1만8천톤을 모두 군대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다음달 생산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막연하다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강철공장이 명목상으로는 내각에 속해 있지만 생산물의 처분권은 군대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경제생활
국가의 모든 생산수단이 다 수령의 소유로 되고 있는 조건에서 경제생활은 1차적으로는 수령을 위한 경제생활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경제이자 곧 수령의 <가계경제>로 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무엇보다도 수령을 잘 모시는데 복무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수반도 누릴 수 없는 가장 호화롭고 가장 문화위생적이며 가장 안전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평양에는 수령의 장수문제를 연구하는 최신설비를 갖춘 대규모의 <장수연구소>가 있고, 연구결과에 따라 장수식품을 세계적 범위에서 조달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장수에 필요한 모든 생활조건이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검토되고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다.
평양시내는 물론 전국 도처에 <별궁>이라고 볼 수 있는 특각이 건설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예술공연시설과 의료시설뿐 아니라 사냥터까지 다 마련되어 있다. 세계역사상 별궁을 이렇게 많이 건설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경치좋은 곳에는 다 김일성·김정일의 별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별궁들은 호위사령부 군대가 엄중히 호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접대원들이 상시적으로 배치되어 김일성·김정일의 왕림을 기다리고 있다.
인민무력성에 속하지 않고 김일성·김정일에게 직속되어 있는 호위총국 무력만도 10만이 훨씬 넘고 있으며, 이 총국산하에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많은 기업소들과 시설들이 있다.
수령의 활동을 은밀히 보장하며 특히 전시하에 수령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평양시내는 지하철도(깊이가 80메터∼100메터)보다도 더 깊은 지하통로들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평양시내로부터 약 40㎞ 떨어진 평남도 순천군의 자모산성으로 이름난 자모산까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별궁이 건설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행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해발 600메터 정도의 고지가 수령의 건강에 좋기 때문에 거기에 별궁을 건설한다고 주장하지만, 지하통로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유사시에 수령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의도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국 도처에 건설되어 있는 김일성의 동상과 김일성·김정일의 현지교시 기념비,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연구실, 김일성 만수무강탑, 김일성·김정일의 국제친선전람과(김일성·김정일이 외국 손님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진열한 곳) 등 김일성·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건설물들이 전국 도처를 뒤덮고 있다.
김일성의 동상은 전쟁시기에도 파손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최근에는 동상을 조립식으로 만들고 있는데, 그것은 일단 유사시에 동상을 지하로 운반하기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모든 동상은 무장보초가 주야 엄중히 경비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국제친선전람관은 지상에 건설한 것만 보아도 유례 없이 방대하고 화려하지만, 지하에 건설한 것은 지상 건설물보다 더 규모도 크고 시설도 화려하다.
김일성·김정일은 마치 국가를 자기의 밥그릇 같이 여기면서 국가재산을 마음대로 탕진한다. 1995년과 1996년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데도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방대한 자재, 자금과 노력을 동원하였으며 수령우상화 건성을 계속 하였다.
전력생산이 잘되지 않아 평양시에서도 자주 정전이 되는 때의 일이다. 김일성이 주재하는 당중앙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회의 도중에 김일성은 최근에 영화를 보다가 전압이 낮아져서 영화를 보기 불편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된 셈인가하고 전력공업상에게 물었다. 성실하기 그지없는 전력공업상은 일어서서 지금 생산된 전력이 부족하여 공장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의 부하가 많이 걸리다 보니 평양시내에 공급되는 전력의 전압이 떨어집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김일성은 그러면 공장에 돌리는 전력을 조절하여 평양시에 전력을 더 공급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하였다. 전력공업상이 그렇게 되면 많은 공장이 생산을 못하고 멎게 됩니다.라고 대답하자 김일성은 전국의 공장이 다 멎어도 좋으니 평양시에 전력을 충분히 보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전력공업상이 김일성의 비위를 맞출 줄 모르는 너무나 정직한 기술간부라고 감탄하는 동시에 절세의 애국자로 자처하는 김일성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북한이 노동자, 농민의 나라라고 하지만 가장 가난하고 못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이다.
수령의 독재를 직접 보장하는데 참가하는 권력기관일수록 대우가 좋다. 문화분야에서도 수령에게 직접 기쁨을 주는 예술인들, 배우들의 대우는 좋지만 대학교수들과 병원의사들의 대우는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 김일성, 김정일 가정에서 쓰거나 김일성, 김정일이 참가하는 행사때 쓰는 제품은 <1호제품>이라고 부르며, 최상의 질을 보장할 뿐 아니라 일본과 구라파 나라들에서 많이 수입하여 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기들이 노동자, 농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선전한다.
북한에서는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지 않는 것을 수령의 큰 혜택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모든 재산을 다 수령이 소유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세금을 낼 수 있으며 수령이 세금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또 주민들에게 식량배급을 주는 것을 큰 혜택으로 선전하고 있다. 옛날 노예주들도 노예들을 먹여 살렸다. 모든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고 있는 수령은 자기가 부려먹고 있는 일군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응당하다.
주택을 지어주거나 상품을 팔아주는 것도 다 수령의 배려라고 선전한다. 북한에서 간부들이 사람들을 꾸짖을 때에는 수령님께서 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교에 보내 공부시켜 주고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워 주었는데, 너는 수령님의 이 태산같은 은덕을 잊어버리고 수령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지 않으니 참으로 의리와 도덕을 모르는 나쁜 놈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수령의 의도에 맞지 않게 행동하였다고 인정될 때에는 철직시키고 학교에서 출학시키고 식량배급을 정지하고 주택에서 내쫓는다. 이것은 수령이 생산수단을 다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먹고 살 수 있는 생활수단을 다 독점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② 정치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수령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수령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정치생활은 철두철미 수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따라 수령의 명령지시에 의거하여 진행된다.
⒜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유일적인 정치조직에 망라시킨다.
북한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모두 일정한 사회정치 조직에 망라되어 정치조직 생활을 한다.
사회생활 전반을 영도하는 정치조직은 노동당이다. 노동당원들은 당조직에 망라되어 조직생활을 한다. 당원이 아닌 노동자·사무원들은 직업동맹에, 당원이 아닌 농민들은 농업근로자 동맹에, 청년학생들은 청년동맹에, 소년들은 소년단에, 여성들은 여성동맹에, 무직자·부양가족들은 인민반에 속하여 각각 조직생활을 한다.
사회단체 조직에서 가장 힘있는 것은 청년동맹조직이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의 후비대로 간주되고 있다. 청년동맹, 직업동맹, 농업근로자동맹 등 모든 사회단체는 다 노동당의 지도 밑에 수령의 유일사상과 유일적 영도체계에 따라 조직생활을 한다. 조직생활이란 수령의 유일사상과 유일적 영도를 높이 받들고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한 생활이다.
⒝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
수령의 유일적 영도는 당 조직을 통하여 실현된다. 북한에서는 수령이 당조직을 통하여 모든 단위, 모든 기관을 영도하는 사업체계를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한다. 이것은 1961년 12월에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을 지도하면서 공장당위원회가 공장사업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를 처음으로 밝혔다고 하여 <대안 사업체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대안사업체계는 공장뿐 아니라 모든 분야, 모든 단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당 사업체계로 되었다.
원래 대안의 사업체계가 나오게 된 것은 당시 소련당에서 당일군의 관료주의가 비판되면서 집체적 지도문제가 강하게 제기된 사정과 관련된다. 김일성은 공장당비서나 공장지배인이 공장사업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가 집체적으로 지도하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공장은 지배인 유일관리제였으며 공장당비서가 지배인 사업을 통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소련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대안의 사업체계에서는 공장지배인이나 당비서가 최고 지도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라는 집체적 지도기관이 최고지도권을 가진다. 공장당위원회는 지배인, 당비서, 기사장과 직업동맹 책임자, 청년동맹 책임자, 모범 노동자 대표, 기술자 대표 등을 위원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공장당위원회에서 공장의 관리운영과 관련된 문제를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결정을 채택한 다음, 이 결정에 따라 당비서는 당사업을 하고 지배인은 행정사업을 하고 기사장은 생산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등 각각 자기 직능에 따라 일한다. 당위원회 결정을 어떻게 집행했는가 하는 것은 최고지도기관인 공장당위원회에서 총화하고 평가받게 된다. 이것이 대안의 사업체계의 내용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행정책임자들의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인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당조직을 통하여 보장하려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다.
해당 단위의 당위원회를 관리운영하는 것은 당비서이고, 각급 당비서는 당중앙위원회의 조직지도부의 유일적인 지도선을 통하여 지도통제되고 있다. 당중앙위원회에는 여러개의 부서가 있지만 수령의 유일적 지도선은 오직 조직지도부가 대표한다.
다른 부서는 <지도부서>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오직 조직부만이 <조직지도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조직지도부만이 각급 당위원회를 통일적으로 장악, 지도할 수 있다. 조직지도부의 지도선이자 곧 수령의 유일적 영도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각급 당위원회의 당비서들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선의 대표자로 된다.
당비서는 해당 단위의 간부 임명권을 가진다. 간부사업은 당사업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간부문제는 당비서가 좌지우지 한다. 또 해당 단위의 경찰 및 비밀경찰은 제기되는 문제를 행정책임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당비서에게만 보고하고 결론을 받는다. 직업동맹조직, 청년 조직 등 모든 사회단체들은 다 당비서 관할 하에 있다.
민간무력인 적위대 조직도 당비서가 관할한다. 행정사업만은 행정책임자가 책임자로 되어 있지만 행정사업에 대한 지도권은 당비서가 가진다. 이렇게 되다보니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란 완전히 말뿐이고 해당단위, 해당기관의 주인은 당비서이다. 행정책임자의 권한은 당위원회 부비서만도 못하며 심지어 당위원회의 하급 지도원만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데 김일성종합대학은 국가의 중요한 간부양성기지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총장은 내각의 상(相)과 동급이었다. 특히 나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내각의 상들보다도 한등급 높았다. 따라서 당적, 국가적 지위의 면에서 보면 대학 당비서와는 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권은 완전히 대학당비서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대학총장은 그의 지시에 복종되어 사업하였다.
이것은 성(省) 중앙급 기관에서도 예외가 없다. 상들 가운데는 당중앙의 정치국 위원들도 있지만, 그들도 다 성 당위원회의 통제 밑에 사업하며 성 당위원회는 당 중앙조직지도부의 중앙기관 지도과의 지도·통제 밑에 사업한다. 이 점에서는 내각 총리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또는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무산계급 독재체제에서는 노동계급이 정권의 주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최고 정치조직인 공산당이 정권의 주인으로 되고 정부는 공산당의 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이 정권의 주인이고, 공산당은 수령의 대리인이며, 정권기관은 수령과 그 대리인의 독재를 보장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령과 그의 대리인인 당비서들의 견지에서 볼 때 정권기관 일군들은 그들에게 복무하는 머슴에 지나지 않는다. 즉 당일군들은 수령의 노복이고, 정권기관 일군들은 당일군들의 노복으로 된다. 당은 영도기관이고 국가행정기관은 집행기관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일군들과 행정기관 일군들 사이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 있다.
당조직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유일적 영도조직이기 때문에 국가행정기관에서 당조직의 결정을 반대할 수 없다. 예컨대 공장에서는 공장 당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기 때문에 공장 당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국가행적기관 일군들은 내각 총리와 같이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그 결정에 반대되는 것을 공장에 지시할 수 없다. 공장 당위원회 결정에 반대되는 지시를 할 수 있는 것은 공장 당위원회를 지도할 권한을 가진 상급당 조직뿐이다.
국가 행정기관도 상급기관과 하급기관이 있는 것만큼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지시를 할 수 있다.
예컨대 내각 총리가 어떤 공장 지배인에게 지시를 하였다고 하면, 공장 지배인은 공장 당위원회에 보고하고 공장 당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내각 총리의 지시를 집행하게 된다. 내각 총리는 공장 당위원회에는 지시를 할 수 없다. 공장 당위원회는 내각 총리가 공장 지배인에게 준 지시가 수령의 의도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보고, 수령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에는 그 지시를 집행하지 않고 상급당에 보고하여 상급당의 결론에 따라 집행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대안의 사업체계는 국가행정일군들의 전횡과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당의 유일적 영도를 철저히 보장하기 위하여 내온 제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수령의 개인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안의 사업체계는 국가행정, 경제기관 일군들의 창발성을 마비시키고 당일군들의 관료주의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모든 단위들에서 당책임자가 수령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소왕>과 같이 행세하게 되었다. 심지어 작은 기업소의 당비서까지 종업원들을 모아 놓고는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나를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기업소의 일을 잘해 나가자고 말하면서, 기업소내에서 <소왕국>을 형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로부터 초래되는 당일군들의 전횡과 관료주의의 폐단이 얼마나 혹심하였겠는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2중, 3중의 독재체제
수령절대주의는 2중, 3중의 독재체제를 통하여서만 담보된다.
노동당은 독재체제에서 최고 조직이며 가장 포괄적인 독재조직이다. 당조직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 모든 단위에서 수령의 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을 총괄적으로 장악, 지도한다. 해당 단위의 당조직은 해당 단위의 주민들의 사상동향을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의 생활정형을 빠짐없이 장악하며, 주민들에 대한 독재에서 총괄적인 책임을 지게되어 있다. 당조직의 하부말단은 당세포인데, 당세포비서는 매일 자기 세포 산하의 당원들과 비당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사상동향과 정치적 동향을 세밀히 감시하고 빠짐없이 상급조직에 보고하여야 한다.
당조직은 수령의 사상을 당원들 뿐 아니라 비당원 군중들에게 침투시키고, 수령의 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요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상투쟁과 사상검토를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당조직은 자기 관할 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당조직의 통제 밑에 조직적으로만 행동하고 생활하도록 통제하며, 일체 조직의 지시를 떠난 자의적인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한다.
당조직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청년조직, 직업동맹조직 등 모든 사회단체 조직들이 당조직과 유사한 사업을 한다. 이런 점에서 각종 사회단체들은 당조직의 독재를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방조자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노동당원 수는 1995년에 400만 명이었으며, 각종 사회단체에 망라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즉 조직적 통제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독재조직은 무장경찰에 의한 독재체계이다.
북한에는 공개된 경찰로서는 사회안전부가 있고 비밀경찰로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있다. 이 두 부서는 다 당중앙에 직속되어 있으며 내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무장한 사회안전부와 국가안존보위보 인원은 1990년에 약 30만 명이었다.
사회안전원과 국가보위원은 행정기관의 하부말단에까지 다 배치되어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으며, 특히 독재대상에 대해서는 별치 않은 동향이 나타나도 자기들의 사업성과를 과시하기 위하여 즉시 체포하여 처리한다.
내가 대학총장으로 사업한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개별적인 안전원이나 보위원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군(郡)급의 사회안전부와 국가 안전보위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학의 사회안전부나 보위부는 각각 수십 명의 요원들을 두고 각 학부와 대학의 여러 사업 단위들을 담당하여 감시하였으며, 안전부는 대학생들 속에서 안전소조를 조직하고, 보위부는 정보원(밀정)들을 이용하여 모든 교직원 학생의 동향을 장악하였다. 일반적으로 대학생 5명중 한 명은 보위부의 비밀정보원이라고 하였다.
비밀경찰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의 활동은 이전에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모든 기관에 공공연히 들어가 정보사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당 중앙위원회안에도 본부 당위원회(당중앙에서 일하는 일군들의 당생활만을 통제하는 당위원회) 직속으로 보위부를 두고 당중앙에서 근무하는 일군들에 대한 비밀감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대에는 김정일 직속으로 보위사령부가 조직되어 각 중대에 이르기까지 보위담당 지도원이 배치되고 군인들의 동향에 대한 비밀정보사업을 진행한다. 군대의 보위사령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바, 필요에 따라서는 민간인들도 마음대로 체포하여 처리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는 군대의 보위사령부의 감시 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경제가 전면적으로 파탄상태에 빠지게 되고 식량배급이 단절된 조건에서 종래의 독재체계만 가지고서는 주민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북한 통치자들은 군대를 직접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투입하고 있다. 협동농장과 공장, 그리고 시장에도 군대가 투입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북한 통치자들은 군대를 존중히 여길 데 대한 주민교양사업에 큰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국방위원회가 나라의 전반 사업을 통제하는 군사독재체계를 내오도록 하였다. 오늘에 와서는 당의 독재와 군사독재가 병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적 폭력에 의거한 통제권이 당의 독재권의 위에 서게 되었다.
⒟ 수령절대주의의 생활양식화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절대주의를 전체 주민들 속에서 생활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우선 모든 당조직과 사회단체 조직들에서는 보통 매주 한번씩(어떤 경우에는 2일에 한번 또는 10일에 한번) 초급조직별로 생활총화를 한다. 당에서는 당원들이 속해 있는 최하조직인 세포별로 조직생활총화를 한다.
여기서는 일주일동안 모든 당원들이 수령의 교시정신에 비추어 조직사상생활을 어떻게 하여 왔으며, 그 과정에 범한 과오가 무엇이고 그 사상적 근원은 무엇인가를 분석하면서 예외 없이 다 자기비판을 한다. 그 다음에 세포의 다른 성원들에 대하여 비판한다. 이외에도 간부들(당중앙에서는 부부장 이상, 부장, 비서)이 월 2회 모여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을 진행한다.
당중앙의 간부들의 당생활총화 정형은 직접 김정일에게 보고된다. 1분기(3개월)에 한번씩 부서(예컨대 국제부)의 당위원회에서는 분기간에 당원들의 당생활 과정에서 나타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총화하고, 결함이 큰 당원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당중앙의 본부 당위원회에서는 전체 당일군들을 모아 놓고 분기간에 당중앙 일군들의 당생활 과정에서 나타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총화하고 각 부서 당위원회가 교훈을 찾도록 통보하여 준다.
당원들의 당 생활에서 나타난 결함이 엄중할 때에는 그런 당원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대논쟁> 또는 <사상투쟁회>를 진행한다. 당중앙에서 <대논쟁>이나 <사상투쟁회>를 진행할 때는 전체 당원일군들이 사업을 전폐하고 최소한 하루 종일, 보통은 2일정도, 길 때는 1주일 이상 과오를 범한 자를 비판무대에 내다 세워놓고 비판한다.
<대논쟁>은 과오의 사상적 근원을 비판하여 모든 당원들이 교훈을 찾는데 목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판과정에 새로운 재료가 제기되어 과오가 엄중하다고 인정될 때가 많기 때문에 예외 없이 해당한 처벌이 적용되게 된다.
<사상투쟁회의>는 처음부터 과오를 범한 자의 책임을 추궁하고 숨기고 있는 더 엄중한 자료를 솔직히 고백할 것을 요구하여 보다 강도 높은 심문과 비판을 한다. 그리고 예외 없이 엄중한 책벌이 적용된다.
과오가 매우 엄중할 때에는 본부 당위원회 직속으로 있는 보위부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과오를 범한 자를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겠다는 결론이 나면 즉시 회의 참가자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족쇄를 채워 가지고 끌고 간다.
청년동맹, 직업동맹 등 사회단체들에서의 조직생활 총화정형은 당조직에서의 총화와 비슷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된다.
당원이나 사회단체 동맹원들은 조직이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다 조직에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며 조직의 통제 밑에서만 생활하기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당원들과 각종 사회단체 맹원들에게 있어서 조직생활에 못지 않게 큰 부담으로 되는 것은 수령의 유일사상 학습제도이다.
학습반은 수준별로 좀 갈라져 있으나 학습질서에는 큰 차이가 없다. 원래 당원들은 하루 본직사업이 끝난 다음 2시간 이상 학습하기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당원들의 경우를 보면 당조직으로부터 학습계획을 받고 학습하게 되는데, 1주에 한번씩은 집체적으로 모여서 학습토론을 진행한다.
여기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와 그들의 저서를 학습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매주 1번은 국내, 국제정세에 관한 강연회에 집체적으로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또 영화를 한번이상 보게 되는데, 대부분이 수령이 먼저 보고 지정하여 준 영화로서 의무적으로 보게 된다.
분기에 한번씩 학습총화를 시험의 방법으로 진행한다.
이때에는 당조직에서 준 학습과제(예컨대 수령의 저서를 읽고 발취하라는 과제같은 것)를 어떻게 집행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학습장을 당조직에 제출하여 검열 받는다.
학습총화에서 낙제한 사람은 책벌을 받거나 때로는 1개월 간 농장에 나가서 무보수 노동을 하고 돌아온다.
1년에 한번씩 당원들은 한달 강습(실제로는 약 2주일 정도)에 참가한다. 이때에는 본직사업에서 완전히 떨어져 대체로 당학교에 집체적으로 숙식하면서 강습을 받으며, 엄격한 조직생활을 통하여 당성(수령에 대한 충실성)단련을 하게 된다. 이밖에도 어떤 기념일을 계기로 또는 수령이 어떤 새로운 저서를 발표하는 경우에는 다른 일을 그만 두고 집중적으로 강습을 받는다.
다음으로는 금요노동제도이다.
이것은 사무원드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사무원들이 사무실에서 사무만 보면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되어 육체노동자를 깔보게 되기 때문에 1주일에 한번씩 금요일에는 육체노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60세 이상은 금요노동에서 면제되게 되어 있으나 금요노동이 엄격한 규율 밑에 전당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60세 이상의 간부들도 다 금요노동에 참가한다. 이것은 인텔리들을 노동계급화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직업적으로 하는 사업은 본직(북한에서는 <본신>이라고 발음함) 혁명과업, 즉 수령으로부터 분공받은 기본혁명과업이라고 보며, 당조직으로부터 임시로 분공받은 과업은 임시혁명과업이라고 하며 당조직생활과 학습생활, 금요노동, 강습같은 것은 정규화생활이라고 한다.
이런 생활을 다하고 보면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은 전혀 없어지고 만다. 더구나 근무시간에 끝나도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상급에 보이기 위하여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많은 조건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문자 그대로 수령을 위한 생화로 가득 차게 된다.
③ 사상문화 생활의 수령절대주의화
북한에서는 수령의 사상 하나만 인정하고 다른 사상을 가지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또 수령의 사상을 구현한 문화만을 인정하고 수령의 사상과 배치되는 사상을 구현한 문화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 교육제도의 유일사상화
북한 통치자들은 교육발전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다.
북한은 1956년에 초등의무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58년에는 초중의무교육(초급중학 3년제)을 실시하였다. 1969년에는 9년제 기술의무교육(마지막 학년에는 1년 간 기술을 배워준다)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72년부터는 11년제 전반적 고중(고등중학교)의무교육을 실시하였다. 북한에는 1958년 이후 모든 도시와 농촌에 탁아소, 유치원, 진료소를 건설하고 학년전 아이들을 보육하고 교육하는 제도를 보편화하였다.
또한 많은 대학들이 건설되어 민족간부 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과학계통 대학은 4년제, 이공과 계통은 5년제, 의학대학은 6년제이다. 또 많은 고등전문학교와 2년제 대학들이 있다.
이밖에도 큰 공장에는 공장대학(야간)이 운영되고 있으며, 당과 군대, 경찰 등 특수기관들이 자기 부문의 전문일군을 양성하기 위하여 운영하고 있는 대학도 많다. 고등교육기관의 수가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육내용에 있다. 탁아소, 유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내용에서는 수령우상화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모든 학과목이 다 수령의 유일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수학이나 자연과학 교과서도 매개장, 매개 절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르침>이 인용되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사업을 <위대성선전>이라고 하는데, 모든 학과목의 교수사업이 예외 없이 수령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목적에 맞게 진행되도록 당조직이 엄격히 통제한다.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을 따라 배운다는 것이 교육의 기본 내용으로 되고 있다.
초등학교로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률적으로 전학과목의 33.3%(즉 전학과목의 1/3)가 수령우상화 과목들이다. 여기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활동역사와 김일성과 김정일의 저서 그리고 그들을 우상화한 문예작품 등 전적으로 수령우상화를 취급한 학과들이다. 이 점에서는 대학의 사회과학계통 학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리학부나 외국어문학부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정식 학과목으로 들어가 있는 33.3%의 우상화 과목만 학습하면 우상화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업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다가 청년조직과 소년단 조직이 학생들을 붙잡고 소위 <사회정치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우상화 교육을 한다.
나는 대학총장으로서 또는 중앙당의 과학교육담당 비서로서, 이러한 수령우상화교육이 너무도 한심하여 청년조직에도 의견을 제기하였으나 우상화교육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청년조직에서는 당중앙 조직지도부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과학교육부의 의견을 접수하지 않는다.
조직지도부는 교육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만 이해관계를 가지다보니 과학교육부의 의견을 참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과학교육부가 유일사상교육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고 김일성·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엄중히 비판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청년조직책임자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학생들에게 유일사상교육만 하고 자기 전문학과를 공부할 시간을 안주면 앞으로 나라의 과학발전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러자 그는 만일 학생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공부도 하지 않고 나쁜 일만 하기 때문에 차라리 청년조직, 소년단 조직에서 붙들어 두고 집단적으로 교양하는 것이 그들에게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아 좋다고 하였다.
여기에 학생들이 집단체조와 노력동원에 자주 동원되다보니 실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5년제 대학에서 공부한 날짜를 계산하면 2년반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 안에 예견된 교수내용은 법적과제라고 하여 기계적으로 압축하여서라도 다 강의해주다보니, 학생들이 강의 받은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오히려 2년반동안 정상적으로 공부한 학생들보다도 실력이 약한 형편이다. 이것은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 와 있는 중국학생이나 베트남 학생들과 대비하여 보아도 북한 학생들의 학과실력이 현저히 뒤떨어져 있는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을 강화하는데 큰 관심을 돌린다. 고등중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붉은 청년근위대에 들어가 3개월동안 완전히 군대와 같은 훈련을 받아야 하며, 대학생들은 반(半) 정규무력이라고 볼 수 있는 교도대에 들어가 6개월동안 군대생활을 하여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교도대의 지휘성원은 다 현역군인들이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군대에 복무한 경력이 있던가 노동직장에서 6∼7년 노동한 경력이 없이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7년 동안 군대에 나가 수령을 위하여 총폭탄이 되어 죽는 연습만 하다보니 고등중학교에서 배운 것은 다 잊어 먹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와서도 제대로 공부 할 수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수재학교라는 것을 내오기로 하였다. 수재학교에는 특히 수학이나 자연과학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받아 공부시키는데, 이 학생들에게는 군대에 가지 않고 직접 대학에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지금까지는 수도 평양에 수재학교가 몇 개 있었고, 각 도마다 1개씩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군대 복무연한이 13년으로 늘어나 30세까지 군대 복무를 하게 되다보니 제대군인으로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거진 없게 되었다. 아마 이런 점을 고려하여 최근에는 수재학교를 매 군에 하나씩 운영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 것 같이 추측된다.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하여도 수령우상화 교육은 절대로 약화되지 않고 더욱 강화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 문화제도의 유일사상화
북한 통치자들은 각종 문화기관들을 수령절대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출판보도 기관들과 문학예술 기관들을 모두 당에 직속시키고, 당의 유일적 영도 밑에 관리운영하는 체계를 세웠다.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책임주필과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중앙방송 위원회 위원장들을 당중앙위원회 부장과 같은 비중에서 핵심간부를 배치하고 김정일이 직접 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의 편집방향은 김정일이 직접 지도하며 중요한 논설은 김정일이 직접 비준하고 있다. 다른 신문들은 다 <노동신문>을 모방하고 있다. <노동신문>을 보면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를 선전하는 수령개인의 신문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노동신문>의 모든 내용은 직접 수령을 우상화하는 기사로 일관되오 있으며, 수령의 사상의 정당성과 위대한 생활력을 선전하는 기사로 차있다.
<노동신문>이나 방송, 텔레비죤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부분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그 첫째가 수령우상화이고 둘째가 군대찬양과 전쟁준비를 고취하는 것이며, 세 번째가 남한과 미국, 일본 등에 대한 비방이다.
북한의 대중보도 수단들은 내용이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으나, 수령절대주의를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한이 수령절대주의 국가라는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서적들을 보아도 김일성, 김정일과 그 일가를 우상화한 것이거나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 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 무용도 다 수령우상화로 일색화되어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평가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서도 반드시 수령절대주의 원칙이 강요되고 있다. 김일성은 한때, 6.25전쟁때 수령을 위하여 가슴으로 화구를 막고 전사한 18세의 이수복은 봉건왕에게 충성한 이순신장군과는 대비할 수 없는 영웅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북한에서 제작한 예술영화
① 경제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 수령의 소유제도
⒝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경제생활
② 정치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유일적인 정치조직에 망라시킨다.
⒝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
⒞ 2중, 3중의 독재체제
⒟ 수령절대주의의 생활양식화
③ 사상문화 생활의 수령절대주의화
⒜ 교육제도의 유일사상화
⒝ 문화제도의 유일사상화
보통 해당사회의 사상은 그 사회제도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경우에는 반대로 사회제도가 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먼저 계급투쟁과 무산계급 독재사상이 나오고, 그것을 지침으로 하는 공산당이 창립되며, 공산당의 영도 밑에 노동계급의 독재정권이 서고, 독재정권의 권력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제도가 서게 된다. 북한에서는 처음에 스탈린주의를 구현한 소련식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되었지만, 스탈린주의가 수령절대주의로 변질되면서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한 북한식 사회제도가 수립되었다.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한 북한식 사회제도가 수립됨으로써 수령절대주의는 공고한 사회제도적 지반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의 사회제도화는 김정일이 당중앙에 들어온 이후 196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되었으며, 1974년 그가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은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① 경제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사회주의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제도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함으로써 경제적 특권이 나오고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만들면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의 근원을 제거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사회적 소유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사회의 전체성원 즉 인민대중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독재를 혁명의 신성한 무기로 찬양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것이 당의 독재, 수령의 독재로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었다. 인민대중의 정치문화수준이 낮을 수록 수령의 개인독재가 더욱 강화되었다. 개인독재가 강화될 수록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인민대중이 아니라 독재자인 수령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된다.
해방 후 북한 주민들 속에는 봉건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으며 민주주의적 정치문화가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정권을 잡은 김일성과 빨치산 참가자들은 민주주의 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공산주의 기치를 들고 투쟁한 만큼 그들은 민주주의적 정치문화를 습득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는 김일성을 포함하여 중학교 교육을 완전히 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점에서 조선노동당은 공산당 수뇌부를 인테리들이 장악한 다른 나라 당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일성은 정권을 잡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후 자기파 중심의 독재를 확립한 때부터 점차 봉건적 계몽군주를 닮아가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되면서 김일성 정권은 급속히 봉건화 되었다.
⒜ 수령의 소유제도
김정일은 먼저 국가경제로부터 당경제를 분리시키는 사업부터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는 당을 관리운영하고 비밀혁명운동(남조선 혁명과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당경제를 완전히 분리시켜 독자적인 경제체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경제는 완전히 김정일 개인소유에 속하는 경제였다.
김정일은 가장 기술장비가 좋고 특히 외화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소들을 다 당경제에 포함시켰다. 금(金)은 곧 외화이기 때문에 금광 같은 것은 1차적으로 당경제에 편입되었다. 그 후 그의 욕망이 자라남에 따라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을 망라하여 종합적인 경제체계를 이루도록 당경제체계를 발전시켰다.
원래 당의 재정은 재정경리부가 관할하고 있었으나, 당경제가 대대적으로 확대되면서 재정경리부만으로써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게 되어 재정경리부를 크게 확장하고서도 제2 재정경리부, 제3 재정경리부라고 볼 수 있는 39호실, 38호실 같은 것을 당의 중요한 부서로 새로 내왔다. 재정경리부와 39호실, 38호실 산하에는 많은 기업소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당의 기업소로서 특별히 우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평양 중심으로부터 약 20㎞ 떨어진 곳에 있는 상원시멘트 공장은 서구라파에서 수입한 현대적인 공장인데, 내각에 속한 다른 시멘트 공장은 여러 가지 생산조건이 보장되지 않아 생산을 못하여도 당에 소속된 상원시멘트 공장만은 모든 조건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여 주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당권을 이용하여 당중앙으로부터 군(郡)당에 이르기까지 <충성의 외화벌이>과업을 주고 외화를 획득하여 바치는 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송이버섯이나 전복 따위의 토산물까지도 비싼 값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당이 독점하여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것은 김정일이 외화를 독점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일이 외화를 독점하다보니 내각총리는 몇십만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지만 김정일은 거의 매일 일상적인 행사로 자주 진행하고 있는 술파티에서 몇십만불을 탕진하고 있다.
다음으로 김정일은 군경제를 국가경제로부터 독립시켰다. 1995년에 군수공장 노동자는 약 50만 명이었다. 군수공장들은 비교적 기술장비수준이 높다. 군경제를 행정적으로는 제2경제위원회라는 것이 관리하는데, 군경제에 대해서는 내각에서 전혀 간섭을 못하고 오직 군경제가 요구하는 것을 보장만 해주게 되어 있다. 군경제는 전적으로 당의 군수공업부가 장악지도하고 있다. 제2경제위원회 산하에는 국방과학원을 비롯하여 핵무기, 미사일 연구기지들도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당 군수공업부가 장악 지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각에 속해 있는 민수공장들에도 다 군수품 생산직장이 있다. 이것을 이른바 일용직장(생활필수품 생산직장)이라고 부른다. 일용직장에 군수품 생산과제가 떨어지면 민수생산은 그만두고 우선적으로 군수생산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경제도 결국 당경제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개인에게 속한 경제라고 볼 수 있다.
당경제와 군경제를 제외한 나머지가 내각에 속한 국가경제 또는 인민경제라고 볼 수 있는데 내각에 속한 경제도 내각 총리나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마음대로 관리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김정일의 승인을 받아 처리하며 당경제와 군경제를 우선적으로 보장해주는 경제, 즉 당경제와 군경제에 종속된 경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경제규모의 면에서가 아니라 중요성의 면에서 보면 제1경제가 당경제이고, 제2경제가 군경제이며, 제3경제가 내각 경제(국민경제)라고 볼 수 있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란 생산수단의 처분권에 관한 문제인 만큼, 북한에서 형식상으로는 생산수단이 국가적 소유 또는 사회적 소유로 되어 있지만, 처분권의 견지에서 보면 다 수령 개인의 소유로 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어보기로 하자.
1996년에 전력생산이 190만∼200만㎾가 생산되었는데, 이것은 소요량의 20%정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북한에 크고 작은 공장이 모두 1만5천개정도 있었다. 이때 모든 공장을 제대로 원만히 돌리자면 1.000만㎾의 전력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생산된 200만㎾ 가운데서 단 1분도 정전시켜서는 안 되는 특수대상들에 필요한 전력이 80만㎾이고, 도중손실을 20만㎾로 보면 결국 남는 것은 100만㎾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전력이 부족하다보니 특수권력기관들에서는 내각총리나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과는 협의하지 않고 직접 김정일에게 자기 기관에 전력을 우선 공급해 달라는 제의서를 올려 비준을 받았다.
김정일이 비준한 문건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법적문건이다. 특수권력기관들은 내각의 전력공업성(이전의 정무원 전력공업부)을 찾아가 김정일의 비준문건을 내대고 전력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라고 강요하고 협박하였다. 전력공업성에서는 도저히 이런 요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사정을 김정일에게 신소하였다. 김정일은 전력공업성의 신소를 당중앙의 비서들에게 내려보내 주면서 비서들이 협의하여 처리하라는 과업을 주었다.
비서들이 모여 요해하여 보았더니 김정일로부터 전력을 우선적으로 받도록 비준 받은 특수권력기관은 190여 개였다. 생산된 전력을 이러한 특수권력기관들에만 공급하려고 하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비서들은 김정일의 비준문건을 무효화하도록 다시 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비준을 받아 전력공업성이 합리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데 대한 조치를 취하였다.
1996년에는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파탄상태로 되어 1년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매달 생산계획을 세우는 형편이었다. 이해 상반기에 국가계획위원장에게 강철생산 정형을 알아보았더니, 전달에 1만8천톤을 생산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5천톤을 내다 팔아야 다음달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사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민군대의 장령(장성)들이 와서 생산된 강철을 다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1만8천톤을 모두 군대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다음달 생산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막연하다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강철공장이 명목상으로는 내각에 속해 있지만 생산물의 처분권은 군대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경제생활
국가의 모든 생산수단이 다 수령의 소유로 되고 있는 조건에서 경제생활은 1차적으로는 수령을 위한 경제생활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경제이자 곧 수령의 <가계경제>로 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무엇보다도 수령을 잘 모시는데 복무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수반도 누릴 수 없는 가장 호화롭고 가장 문화위생적이며 가장 안전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평양에는 수령의 장수문제를 연구하는 최신설비를 갖춘 대규모의 <장수연구소>가 있고, 연구결과에 따라 장수식품을 세계적 범위에서 조달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장수에 필요한 모든 생활조건이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검토되고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다.
평양시내는 물론 전국 도처에 <별궁>이라고 볼 수 있는 특각이 건설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예술공연시설과 의료시설뿐 아니라 사냥터까지 다 마련되어 있다. 세계역사상 별궁을 이렇게 많이 건설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경치좋은 곳에는 다 김일성·김정일의 별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별궁들은 호위사령부 군대가 엄중히 호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접대원들이 상시적으로 배치되어 김일성·김정일의 왕림을 기다리고 있다.
인민무력성에 속하지 않고 김일성·김정일에게 직속되어 있는 호위총국 무력만도 10만이 훨씬 넘고 있으며, 이 총국산하에 수령을 위하여 복무하는 많은 기업소들과 시설들이 있다.
수령의 활동을 은밀히 보장하며 특히 전시하에 수령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평양시내는 지하철도(깊이가 80메터∼100메터)보다도 더 깊은 지하통로들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평양시내로부터 약 40㎞ 떨어진 평남도 순천군의 자모산성으로 이름난 자모산까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별궁이 건설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행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해발 600메터 정도의 고지가 수령의 건강에 좋기 때문에 거기에 별궁을 건설한다고 주장하지만, 지하통로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유사시에 수령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의도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국 도처에 건설되어 있는 김일성의 동상과 김일성·김정일의 현지교시 기념비,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연구실, 김일성 만수무강탑, 김일성·김정일의 국제친선전람과(김일성·김정일이 외국 손님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진열한 곳) 등 김일성·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건설물들이 전국 도처를 뒤덮고 있다.
김일성의 동상은 전쟁시기에도 파손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최근에는 동상을 조립식으로 만들고 있는데, 그것은 일단 유사시에 동상을 지하로 운반하기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모든 동상은 무장보초가 주야 엄중히 경비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국제친선전람관은 지상에 건설한 것만 보아도 유례 없이 방대하고 화려하지만, 지하에 건설한 것은 지상 건설물보다 더 규모도 크고 시설도 화려하다.
김일성·김정일은 마치 국가를 자기의 밥그릇 같이 여기면서 국가재산을 마음대로 탕진한다. 1995년과 1996년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데도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방대한 자재, 자금과 노력을 동원하였으며 수령우상화 건성을 계속 하였다.
전력생산이 잘되지 않아 평양시에서도 자주 정전이 되는 때의 일이다. 김일성이 주재하는 당중앙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회의 도중에 김일성은 최근에 영화를 보다가 전압이 낮아져서 영화를 보기 불편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된 셈인가하고 전력공업상에게 물었다. 성실하기 그지없는 전력공업상은 일어서서 지금 생산된 전력이 부족하여 공장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의 부하가 많이 걸리다 보니 평양시내에 공급되는 전력의 전압이 떨어집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김일성은 그러면 공장에 돌리는 전력을 조절하여 평양시에 전력을 더 공급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하였다. 전력공업상이 그렇게 되면 많은 공장이 생산을 못하고 멎게 됩니다.라고 대답하자 김일성은 전국의 공장이 다 멎어도 좋으니 평양시에 전력을 충분히 보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전력공업상이 김일성의 비위를 맞출 줄 모르는 너무나 정직한 기술간부라고 감탄하는 동시에 절세의 애국자로 자처하는 김일성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통치자들은 말로는 북한이 노동자, 농민의 나라라고 하지만 가장 가난하고 못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이다.
수령의 독재를 직접 보장하는데 참가하는 권력기관일수록 대우가 좋다. 문화분야에서도 수령에게 직접 기쁨을 주는 예술인들, 배우들의 대우는 좋지만 대학교수들과 병원의사들의 대우는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 김일성, 김정일 가정에서 쓰거나 김일성, 김정일이 참가하는 행사때 쓰는 제품은 <1호제품>이라고 부르며, 최상의 질을 보장할 뿐 아니라 일본과 구라파 나라들에서 많이 수입하여 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기들이 노동자, 농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선전한다.
북한에서는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지 않는 것을 수령의 큰 혜택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모든 재산을 다 수령이 소유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세금을 낼 수 있으며 수령이 세금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또 주민들에게 식량배급을 주는 것을 큰 혜택으로 선전하고 있다. 옛날 노예주들도 노예들을 먹여 살렸다. 모든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고 있는 수령은 자기가 부려먹고 있는 일군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응당하다.
주택을 지어주거나 상품을 팔아주는 것도 다 수령의 배려라고 선전한다. 북한에서 간부들이 사람들을 꾸짖을 때에는 수령님께서 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교에 보내 공부시켜 주고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워 주었는데, 너는 수령님의 이 태산같은 은덕을 잊어버리고 수령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지 않으니 참으로 의리와 도덕을 모르는 나쁜 놈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수령의 의도에 맞지 않게 행동하였다고 인정될 때에는 철직시키고 학교에서 출학시키고 식량배급을 정지하고 주택에서 내쫓는다. 이것은 수령이 생산수단을 다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먹고 살 수 있는 생활수단을 다 독점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② 정치생활에서의 수령절대주의화
수령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수령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정치생활은 철두철미 수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따라 수령의 명령지시에 의거하여 진행된다.
⒜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유일적인 정치조직에 망라시킨다.
북한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모두 일정한 사회정치 조직에 망라되어 정치조직 생활을 한다.
사회생활 전반을 영도하는 정치조직은 노동당이다. 노동당원들은 당조직에 망라되어 조직생활을 한다. 당원이 아닌 노동자·사무원들은 직업동맹에, 당원이 아닌 농민들은 농업근로자 동맹에, 청년학생들은 청년동맹에, 소년들은 소년단에, 여성들은 여성동맹에, 무직자·부양가족들은 인민반에 속하여 각각 조직생활을 한다.
사회단체 조직에서 가장 힘있는 것은 청년동맹조직이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의 후비대로 간주되고 있다. 청년동맹, 직업동맹, 농업근로자동맹 등 모든 사회단체는 다 노동당의 지도 밑에 수령의 유일사상과 유일적 영도체계에 따라 조직생활을 한다. 조직생활이란 수령의 유일사상과 유일적 영도를 높이 받들고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한 생활이다.
⒝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
수령의 유일적 영도는 당 조직을 통하여 실현된다. 북한에서는 수령이 당조직을 통하여 모든 단위, 모든 기관을 영도하는 사업체계를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한다. 이것은 1961년 12월에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을 지도하면서 공장당위원회가 공장사업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를 처음으로 밝혔다고 하여 <대안 사업체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대안사업체계는 공장뿐 아니라 모든 분야, 모든 단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당 사업체계로 되었다.
원래 대안의 사업체계가 나오게 된 것은 당시 소련당에서 당일군의 관료주의가 비판되면서 집체적 지도문제가 강하게 제기된 사정과 관련된다. 김일성은 공장당비서나 공장지배인이 공장사업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가 집체적으로 지도하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공장은 지배인 유일관리제였으며 공장당비서가 지배인 사업을 통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소련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대안의 사업체계에서는 공장지배인이나 당비서가 최고 지도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라는 집체적 지도기관이 최고지도권을 가진다. 공장당위원회는 지배인, 당비서, 기사장과 직업동맹 책임자, 청년동맹 책임자, 모범 노동자 대표, 기술자 대표 등을 위원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공장당위원회에서 공장의 관리운영과 관련된 문제를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결정을 채택한 다음, 이 결정에 따라 당비서는 당사업을 하고 지배인은 행정사업을 하고 기사장은 생산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등 각각 자기 직능에 따라 일한다. 당위원회 결정을 어떻게 집행했는가 하는 것은 최고지도기관인 공장당위원회에서 총화하고 평가받게 된다. 이것이 대안의 사업체계의 내용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행정책임자들의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체계인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당조직을 통하여 보장하려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다.
해당 단위의 당위원회를 관리운영하는 것은 당비서이고, 각급 당비서는 당중앙위원회의 조직지도부의 유일적인 지도선을 통하여 지도통제되고 있다. 당중앙위원회에는 여러개의 부서가 있지만 수령의 유일적 지도선은 오직 조직지도부가 대표한다.
다른 부서는 <지도부서>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오직 조직부만이 <조직지도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조직지도부만이 각급 당위원회를 통일적으로 장악, 지도할 수 있다. 조직지도부의 지도선이자 곧 수령의 유일적 영도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각급 당위원회의 당비서들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선의 대표자로 된다.
당비서는 해당 단위의 간부 임명권을 가진다. 간부사업은 당사업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간부문제는 당비서가 좌지우지 한다. 또 해당 단위의 경찰 및 비밀경찰은 제기되는 문제를 행정책임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당비서에게만 보고하고 결론을 받는다. 직업동맹조직, 청년 조직 등 모든 사회단체들은 다 당비서 관할 하에 있다.
민간무력인 적위대 조직도 당비서가 관할한다. 행정사업만은 행정책임자가 책임자로 되어 있지만 행정사업에 대한 지도권은 당비서가 가진다. 이렇게 되다보니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란 완전히 말뿐이고 해당단위, 해당기관의 주인은 당비서이다. 행정책임자의 권한은 당위원회 부비서만도 못하며 심지어 당위원회의 하급 지도원만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데 김일성종합대학은 국가의 중요한 간부양성기지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총장은 내각의 상(相)과 동급이었다. 특히 나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내각의 상들보다도 한등급 높았다. 따라서 당적, 국가적 지위의 면에서 보면 대학 당비서와는 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권은 완전히 대학당비서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대학총장은 그의 지시에 복종되어 사업하였다.
이것은 성(省) 중앙급 기관에서도 예외가 없다. 상들 가운데는 당중앙의 정치국 위원들도 있지만, 그들도 다 성 당위원회의 통제 밑에 사업하며 성 당위원회는 당 중앙조직지도부의 중앙기관 지도과의 지도·통제 밑에 사업한다. 이 점에서는 내각 총리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국가 또는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무산계급 독재체제에서는 노동계급이 정권의 주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최고 정치조직인 공산당이 정권의 주인으로 되고 정부는 공산당의 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수령절대주의에서는 수령이 정권의 주인이고, 공산당은 수령의 대리인이며, 정권기관은 수령과 그 대리인의 독재를 보장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령과 그의 대리인인 당비서들의 견지에서 볼 때 정권기관 일군들은 그들에게 복무하는 머슴에 지나지 않는다. 즉 당일군들은 수령의 노복이고, 정권기관 일군들은 당일군들의 노복으로 된다. 당은 영도기관이고 국가행정기관은 집행기관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일군들과 행정기관 일군들 사이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 있다.
당조직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유일적 영도조직이기 때문에 국가행정기관에서 당조직의 결정을 반대할 수 없다. 예컨대 공장에서는 공장 당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이기 때문에 공장 당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국가행적기관 일군들은 내각 총리와 같이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그 결정에 반대되는 것을 공장에 지시할 수 없다. 공장 당위원회 결정에 반대되는 지시를 할 수 있는 것은 공장 당위원회를 지도할 권한을 가진 상급당 조직뿐이다.
국가 행정기관도 상급기관과 하급기관이 있는 것만큼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지시를 할 수 있다.
예컨대 내각 총리가 어떤 공장 지배인에게 지시를 하였다고 하면, 공장 지배인은 공장 당위원회에 보고하고 공장 당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내각 총리의 지시를 집행하게 된다. 내각 총리는 공장 당위원회에는 지시를 할 수 없다. 공장 당위원회는 내각 총리가 공장 지배인에게 준 지시가 수령의 의도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보고, 수령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에는 그 지시를 집행하지 않고 상급당에 보고하여 상급당의 결론에 따라 집행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대안의 사업체계는 국가행정일군들의 전횡과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당의 유일적 영도를 철저히 보장하기 위하여 내온 제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수령의 개인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안의 사업체계는 국가행정, 경제기관 일군들의 창발성을 마비시키고 당일군들의 관료주의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모든 단위들에서 당책임자가 수령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소왕>과 같이 행세하게 되었다. 심지어 작은 기업소의 당비서까지 종업원들을 모아 놓고는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나를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기업소의 일을 잘해 나가자고 말하면서, 기업소내에서 <소왕국>을 형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로부터 초래되는 당일군들의 전횡과 관료주의의 폐단이 얼마나 혹심하였겠는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2중, 3중의 독재체제
수령절대주의는 2중, 3중의 독재체제를 통하여서만 담보된다.
노동당은 독재체제에서 최고 조직이며 가장 포괄적인 독재조직이다. 당조직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 모든 단위에서 수령의 독재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을 총괄적으로 장악, 지도한다. 해당 단위의 당조직은 해당 단위의 주민들의 사상동향을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의 생활정형을 빠짐없이 장악하며, 주민들에 대한 독재에서 총괄적인 책임을 지게되어 있다. 당조직의 하부말단은 당세포인데, 당세포비서는 매일 자기 세포 산하의 당원들과 비당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사상동향과 정치적 동향을 세밀히 감시하고 빠짐없이 상급조직에 보고하여야 한다.
당조직은 수령의 사상을 당원들 뿐 아니라 비당원 군중들에게 침투시키고, 수령의 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요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상투쟁과 사상검토를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당조직은 자기 관할 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당조직의 통제 밑에 조직적으로만 행동하고 생활하도록 통제하며, 일체 조직의 지시를 떠난 자의적인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한다.
당조직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청년조직, 직업동맹조직 등 모든 사회단체 조직들이 당조직과 유사한 사업을 한다. 이런 점에서 각종 사회단체들은 당조직의 독재를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방조자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노동당원 수는 1995년에 400만 명이었으며, 각종 사회단체에 망라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즉 조직적 통제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독재조직은 무장경찰에 의한 독재체계이다.
북한에는 공개된 경찰로서는 사회안전부가 있고 비밀경찰로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있다. 이 두 부서는 다 당중앙에 직속되어 있으며 내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무장한 사회안전부와 국가안존보위보 인원은 1990년에 약 30만 명이었다.
사회안전원과 국가보위원은 행정기관의 하부말단에까지 다 배치되어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으며, 특히 독재대상에 대해서는 별치 않은 동향이 나타나도 자기들의 사업성과를 과시하기 위하여 즉시 체포하여 처리한다.
내가 대학총장으로 사업한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개별적인 안전원이나 보위원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군(郡)급의 사회안전부와 국가 안전보위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학의 사회안전부나 보위부는 각각 수십 명의 요원들을 두고 각 학부와 대학의 여러 사업 단위들을 담당하여 감시하였으며, 안전부는 대학생들 속에서 안전소조를 조직하고, 보위부는 정보원(밀정)들을 이용하여 모든 교직원 학생의 동향을 장악하였다. 일반적으로 대학생 5명중 한 명은 보위부의 비밀정보원이라고 하였다.
비밀경찰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의 활동은 이전에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모든 기관에 공공연히 들어가 정보사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당 중앙위원회안에도 본부 당위원회(당중앙에서 일하는 일군들의 당생활만을 통제하는 당위원회) 직속으로 보위부를 두고 당중앙에서 근무하는 일군들에 대한 비밀감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대에는 김정일 직속으로 보위사령부가 조직되어 각 중대에 이르기까지 보위담당 지도원이 배치되고 군인들의 동향에 대한 비밀정보사업을 진행한다. 군대의 보위사령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바, 필요에 따라서는 민간인들도 마음대로 체포하여 처리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는 군대의 보위사령부의 감시 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경제가 전면적으로 파탄상태에 빠지게 되고 식량배급이 단절된 조건에서 종래의 독재체계만 가지고서는 주민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북한 통치자들은 군대를 직접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투입하고 있다. 협동농장과 공장, 그리고 시장에도 군대가 투입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북한 통치자들은 군대를 존중히 여길 데 대한 주민교양사업에 큰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국방위원회가 나라의 전반 사업을 통제하는 군사독재체계를 내오도록 하였다. 오늘에 와서는 당의 독재와 군사독재가 병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적 폭력에 의거한 통제권이 당의 독재권의 위에 서게 되었다.
⒟ 수령절대주의의 생활양식화
북한 통치자들은 수령절대주의를 전체 주민들 속에서 생활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우선 모든 당조직과 사회단체 조직들에서는 보통 매주 한번씩(어떤 경우에는 2일에 한번 또는 10일에 한번) 초급조직별로 생활총화를 한다. 당에서는 당원들이 속해 있는 최하조직인 세포별로 조직생활총화를 한다.
여기서는 일주일동안 모든 당원들이 수령의 교시정신에 비추어 조직사상생활을 어떻게 하여 왔으며, 그 과정에 범한 과오가 무엇이고 그 사상적 근원은 무엇인가를 분석하면서 예외 없이 다 자기비판을 한다. 그 다음에 세포의 다른 성원들에 대하여 비판한다. 이외에도 간부들(당중앙에서는 부부장 이상, 부장, 비서)이 월 2회 모여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을 진행한다.
당중앙의 간부들의 당생활총화 정형은 직접 김정일에게 보고된다. 1분기(3개월)에 한번씩 부서(예컨대 국제부)의 당위원회에서는 분기간에 당원들의 당생활 과정에서 나타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총화하고, 결함이 큰 당원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당중앙의 본부 당위원회에서는 전체 당일군들을 모아 놓고 분기간에 당중앙 일군들의 당생활 과정에서 나타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총화하고 각 부서 당위원회가 교훈을 찾도록 통보하여 준다.
당원들의 당 생활에서 나타난 결함이 엄중할 때에는 그런 당원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대논쟁> 또는 <사상투쟁회>를 진행한다. 당중앙에서 <대논쟁>이나 <사상투쟁회>를 진행할 때는 전체 당원일군들이 사업을 전폐하고 최소한 하루 종일, 보통은 2일정도, 길 때는 1주일 이상 과오를 범한 자를 비판무대에 내다 세워놓고 비판한다.
<대논쟁>은 과오의 사상적 근원을 비판하여 모든 당원들이 교훈을 찾는데 목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판과정에 새로운 재료가 제기되어 과오가 엄중하다고 인정될 때가 많기 때문에 예외 없이 해당한 처벌이 적용되게 된다.
<사상투쟁회의>는 처음부터 과오를 범한 자의 책임을 추궁하고 숨기고 있는 더 엄중한 자료를 솔직히 고백할 것을 요구하여 보다 강도 높은 심문과 비판을 한다. 그리고 예외 없이 엄중한 책벌이 적용된다.
과오가 매우 엄중할 때에는 본부 당위원회 직속으로 있는 보위부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과오를 범한 자를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겠다는 결론이 나면 즉시 회의 참가자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족쇄를 채워 가지고 끌고 간다.
청년동맹, 직업동맹 등 사회단체들에서의 조직생활 총화정형은 당조직에서의 총화와 비슷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된다.
당원이나 사회단체 동맹원들은 조직이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다 조직에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며 조직의 통제 밑에서만 생활하기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당원들과 각종 사회단체 맹원들에게 있어서 조직생활에 못지 않게 큰 부담으로 되는 것은 수령의 유일사상 학습제도이다.
학습반은 수준별로 좀 갈라져 있으나 학습질서에는 큰 차이가 없다. 원래 당원들은 하루 본직사업이 끝난 다음 2시간 이상 학습하기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당원들의 경우를 보면 당조직으로부터 학습계획을 받고 학습하게 되는데, 1주에 한번씩은 집체적으로 모여서 학습토론을 진행한다.
여기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와 그들의 저서를 학습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매주 1번은 국내, 국제정세에 관한 강연회에 집체적으로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또 영화를 한번이상 보게 되는데, 대부분이 수령이 먼저 보고 지정하여 준 영화로서 의무적으로 보게 된다.
분기에 한번씩 학습총화를 시험의 방법으로 진행한다.
이때에는 당조직에서 준 학습과제(예컨대 수령의 저서를 읽고 발취하라는 과제같은 것)를 어떻게 집행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학습장을 당조직에 제출하여 검열 받는다.
학습총화에서 낙제한 사람은 책벌을 받거나 때로는 1개월 간 농장에 나가서 무보수 노동을 하고 돌아온다.
1년에 한번씩 당원들은 한달 강습(실제로는 약 2주일 정도)에 참가한다. 이때에는 본직사업에서 완전히 떨어져 대체로 당학교에 집체적으로 숙식하면서 강습을 받으며, 엄격한 조직생활을 통하여 당성(수령에 대한 충실성)단련을 하게 된다. 이밖에도 어떤 기념일을 계기로 또는 수령이 어떤 새로운 저서를 발표하는 경우에는 다른 일을 그만 두고 집중적으로 강습을 받는다.
다음으로는 금요노동제도이다.
이것은 사무원드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사무원들이 사무실에서 사무만 보면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되어 육체노동자를 깔보게 되기 때문에 1주일에 한번씩 금요일에는 육체노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60세 이상은 금요노동에서 면제되게 되어 있으나 금요노동이 엄격한 규율 밑에 전당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60세 이상의 간부들도 다 금요노동에 참가한다. 이것은 인텔리들을 노동계급화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직업적으로 하는 사업은 본직(북한에서는 <본신>이라고 발음함) 혁명과업, 즉 수령으로부터 분공받은 기본혁명과업이라고 보며, 당조직으로부터 임시로 분공받은 과업은 임시혁명과업이라고 하며 당조직생활과 학습생활, 금요노동, 강습같은 것은 정규화생활이라고 한다.
이런 생활을 다하고 보면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은 전혀 없어지고 만다. 더구나 근무시간에 끝나도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상급에 보이기 위하여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많은 조건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문자 그대로 수령을 위한 생화로 가득 차게 된다.
③ 사상문화 생활의 수령절대주의화
북한에서는 수령의 사상 하나만 인정하고 다른 사상을 가지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또 수령의 사상을 구현한 문화만을 인정하고 수령의 사상과 배치되는 사상을 구현한 문화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 교육제도의 유일사상화
북한 통치자들은 교육발전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다.
북한은 1956년에 초등의무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58년에는 초중의무교육(초급중학 3년제)을 실시하였다. 1969년에는 9년제 기술의무교육(마지막 학년에는 1년 간 기술을 배워준다)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72년부터는 11년제 전반적 고중(고등중학교)의무교육을 실시하였다. 북한에는 1958년 이후 모든 도시와 농촌에 탁아소, 유치원, 진료소를 건설하고 학년전 아이들을 보육하고 교육하는 제도를 보편화하였다.
또한 많은 대학들이 건설되어 민족간부 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과학계통 대학은 4년제, 이공과 계통은 5년제, 의학대학은 6년제이다. 또 많은 고등전문학교와 2년제 대학들이 있다.
이밖에도 큰 공장에는 공장대학(야간)이 운영되고 있으며, 당과 군대, 경찰 등 특수기관들이 자기 부문의 전문일군을 양성하기 위하여 운영하고 있는 대학도 많다. 고등교육기관의 수가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육내용에 있다. 탁아소, 유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내용에서는 수령우상화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모든 학과목이 다 수령의 유일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수학이나 자연과학 교과서도 매개장, 매개 절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르침>이 인용되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사업을 <위대성선전>이라고 하는데, 모든 학과목의 교수사업이 예외 없이 수령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목적에 맞게 진행되도록 당조직이 엄격히 통제한다.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을 따라 배운다는 것이 교육의 기본 내용으로 되고 있다.
초등학교로부터 시작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률적으로 전학과목의 33.3%(즉 전학과목의 1/3)가 수령우상화 과목들이다. 여기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활동역사와 김일성과 김정일의 저서 그리고 그들을 우상화한 문예작품 등 전적으로 수령우상화를 취급한 학과들이다. 이 점에서는 대학의 사회과학계통 학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리학부나 외국어문학부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정식 학과목으로 들어가 있는 33.3%의 우상화 과목만 학습하면 우상화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학업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다가 청년조직과 소년단 조직이 학생들을 붙잡고 소위 <사회정치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우상화 교육을 한다.
나는 대학총장으로서 또는 중앙당의 과학교육담당 비서로서, 이러한 수령우상화교육이 너무도 한심하여 청년조직에도 의견을 제기하였으나 우상화교육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청년조직에서는 당중앙 조직지도부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과학교육부의 의견을 접수하지 않는다.
조직지도부는 교육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만 이해관계를 가지다보니 과학교육부의 의견을 참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과학교육부가 유일사상교육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고 김일성·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엄중히 비판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청년조직책임자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학생들에게 유일사상교육만 하고 자기 전문학과를 공부할 시간을 안주면 앞으로 나라의 과학발전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러자 그는 만일 학생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공부도 하지 않고 나쁜 일만 하기 때문에 차라리 청년조직, 소년단 조직에서 붙들어 두고 집단적으로 교양하는 것이 그들에게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아 좋다고 하였다.
여기에 학생들이 집단체조와 노력동원에 자주 동원되다보니 실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5년제 대학에서 공부한 날짜를 계산하면 2년반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 안에 예견된 교수내용은 법적과제라고 하여 기계적으로 압축하여서라도 다 강의해주다보니, 학생들이 강의 받은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오히려 2년반동안 정상적으로 공부한 학생들보다도 실력이 약한 형편이다. 이것은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 와 있는 중국학생이나 베트남 학생들과 대비하여 보아도 북한 학생들의 학과실력이 현저히 뒤떨어져 있는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을 강화하는데 큰 관심을 돌린다. 고등중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붉은 청년근위대에 들어가 3개월동안 완전히 군대와 같은 훈련을 받아야 하며, 대학생들은 반(半) 정규무력이라고 볼 수 있는 교도대에 들어가 6개월동안 군대생활을 하여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교도대의 지휘성원은 다 현역군인들이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군대에 복무한 경력이 있던가 노동직장에서 6∼7년 노동한 경력이 없이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7년 동안 군대에 나가 수령을 위하여 총폭탄이 되어 죽는 연습만 하다보니 고등중학교에서 배운 것은 다 잊어 먹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와서도 제대로 공부 할 수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수재학교라는 것을 내오기로 하였다. 수재학교에는 특히 수학이나 자연과학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받아 공부시키는데, 이 학생들에게는 군대에 가지 않고 직접 대학에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지금까지는 수도 평양에 수재학교가 몇 개 있었고, 각 도마다 1개씩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군대 복무연한이 13년으로 늘어나 30세까지 군대 복무를 하게 되다보니 제대군인으로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거진 없게 되었다. 아마 이런 점을 고려하여 최근에는 수재학교를 매 군에 하나씩 운영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 것 같이 추측된다.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하여도 수령우상화 교육은 절대로 약화되지 않고 더욱 강화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 문화제도의 유일사상화
북한 통치자들은 각종 문화기관들을 수령절대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출판보도 기관들과 문학예술 기관들을 모두 당에 직속시키고, 당의 유일적 영도 밑에 관리운영하는 체계를 세웠다.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책임주필과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중앙방송 위원회 위원장들을 당중앙위원회 부장과 같은 비중에서 핵심간부를 배치하고 김정일이 직접 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의 편집방향은 김정일이 직접 지도하며 중요한 논설은 김정일이 직접 비준하고 있다. 다른 신문들은 다 <노동신문>을 모방하고 있다. <노동신문>을 보면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를 선전하는 수령개인의 신문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노동신문>의 모든 내용은 직접 수령을 우상화하는 기사로 일관되오 있으며, 수령의 사상의 정당성과 위대한 생활력을 선전하는 기사로 차있다.
<노동신문>이나 방송, 텔레비죤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부분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그 첫째가 수령우상화이고 둘째가 군대찬양과 전쟁준비를 고취하는 것이며, 세 번째가 남한과 미국, 일본 등에 대한 비방이다.
북한의 대중보도 수단들은 내용이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으나, 수령절대주의를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한이 수령절대주의 국가라는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서적들을 보아도 김일성, 김정일과 그 일가를 우상화한 것이거나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말 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 무용도 다 수령우상화로 일색화되어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평가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서도 반드시 수령절대주의 원칙이 강요되고 있다. 김일성은 한때, 6.25전쟁때 수령을 위하여 가슴으로 화구를 막고 전사한 18세의 이수복은 봉건왕에게 충성한 이순신장군과는 대비할 수 없는 영웅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북한에서 제작한 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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