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수기] 사랑합니다.그리고 행복합니다
  • CDNK
  • 2010-04-06 12: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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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그리고 행복합니다 - 박연옥 먼저 이글에 앞서 오늘 날 대한민국 건국사업에 조그마한 보탬도 주지 못한 저희들을 동포애의 따듯한 정으로 받아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 준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덧 한국에 온지도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3살에 한국에 도착한지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은 나를 탈북소녀가 아닌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도 내가 탈북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이렇듯 이 땅은 우리들에게 이 나라 국민들과 똑같은 공평한 권리와 자유를 안겨주었다. 오늘도 길을 걷다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 나라의 가을 하늘은 이토록 높고 정겨울 수 있을까? 너무도 부드럽고 향기로운 가을바람에 얼굴을 묻고 다시 한 번 이 몸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있음을 확인해보았다. 거리에 스치는 사람들과 다를 나위 없이 너무도 잘 어울려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행복을 실감본다. 나도 이젠 잘 사는 민족의 국민이 되었다. 나도 이젠 그 어디를 가도 떳떳이 불러 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이 땅에 국민이 되어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나는 때로는 너무도 행복하여 행복에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다. 절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내 자신임을 알면서도 어느 덧 나는 대한민국 하늘아래에만 세워준다면 영원히 살 듯 꿈꾸고 내일 죽을 듯 살리라던 그 날의 맹세와 멀어져 가는 것 같다.    정치범으로 박해를 받았던 아버지 때문에 북한 사회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 온 나에게 이 땅은 너무도 큰 행복을 안겨 주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유별나고 특이한 가정에서 성장한 나에게 있어서 누구에나 있는 유년시절은 철없이 행복하고 꿈 많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와 아픔만을 가져다준 힘겨운 시절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북한의 제도와 노동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잡혀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가정에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나라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강제로 이혼시켰으며 우리 형제들은 삼촌네 집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정치범만은 절대로 용납이 안 되는 북한 땅에서 아버지가 나라 앞에 지은 죄는 어린 자식들이 떠안아야 할 힘겨운 몫이었다. 정치범에 대한 차별이 심한 북한 사회에서 남들과 똑같이 마음껏 울고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사회의 이런 냉대는 결국 우리 형제들에게 그 사회를 배반하게 하는 선택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되어 오빠는 먼저 한국으로 귀순하게 되었으며 나는 그로부터 3년 후 탈북을 시도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오던 도중 나는 3번에 걸쳐 북송 당하였다. 두 번째 까지는 간난신고 끝에 겨우 살아나와 재 시도를 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세 번째 중국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강제북송될 때는 정말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 될 줄 알았다. 세 번째로 북송 당하는 순간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눈물은 눈물이 아닌 핏물임을 깨달았다. 정말 이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순간이 왔었던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마음속 피눈물을 흘리며 나는 나를 북한 땅에서 낳아주신 우리 부모님께 원망의 통곡을 보냈다. 창문을 열어라 너의 좁은 문으로 이 세상을 한 번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부는 산들 바람아 다시 한 번 느껴보자. 나도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오. 나도 살고 싶소. 태양만 비친다면 땅과 하늘 바다를 이어 춤을 추며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가고 싶어요. 이렇듯 나에게 있어서 자유는 목숨 걸고 찾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이 자유를 위해 지금도 수많은 탈북자들이 낯 설은 남의 나라 땅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 몸부림 치고 있다. 그때 나는 군부대 간부로 군복무하고 있는 애인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나를 구원해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오늘 날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이다. 후에 안 소식이지만 그 사람은 나를 구원하고 보내준 죄로 군보위부에 체포되었단다. 지금도 그 사람 생각하면 오늘 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이렇게 나는 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서 꿈결에도 그리운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비행기에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뜨거운 눈물을 금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땅을, 이렇게 금방이면 올 수 있는 땅을 지금까지 그리도 멀리 에돌며 찾아왔단 말인가? 너무도 힘들게 찾은 소중한 것이어서 너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은 귀중한 것이어서 선뜻 발 내딛기조차 힘들어졌다. 나는 하나원에서 3개월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이미 오빠가 3년 전에 와서 배정받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착금이라면서 5년으로 나누어 800만원 받았는데 브로커 비용을 주고 나서 정말 단돈 만원도 손에 쥐어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다른 애들은 받은 정착금으로 예쁜 옷도 사 입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다니는데 나는 지하철 타고 다닐 교통비도 없었다. 조금은 다른 탈북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불만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잠시나마 동요했었던 내 자신을 질책하며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낯 설을 땅에서 뭔가 내 힘으로 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길을 가다가 어느 음식점 앞에 써 붙인 전단지를 보고 들어갔었다. 사장님은 몇 마디 이야기 나눠보시더니 주방에서 일 할 수 있으면 일하라고 하신다. 그래도 해보겠노라고 대답 드리고 나는 그나마 일자리도 얻게 되어 너무 기뻐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느 지하철 가게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하는 전단지를 보고 어쩌면 주방에서 일 하는 것 보다 화장품 판매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하여 찾아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정말 너그럽게 받아 주셨다. 물론 연변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다음날부터 지하철 화장품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화장품 이름을 하나하나 종이에 써가면서 외웠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라 지하철 밑은 어찌나 추운지... 나는 점심때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철에 쪼그리고 앉아 히터에 추운 몸을 덥혀가며 밥을 먹었다. 나는 점심 밥 사먹는 돈도 아까워서 사장님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고 돈으로 달라고 부탁드렸다. 때로는 지하철 요금은 아끼느라 센서 밑으로 빠져 다녔다. 그때 정말 내가 제일 부러웠던 사람들은 나한테서 화장품 아이펜슬 하나라도 사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언제면 돈이 생겨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지하철로 나란히 어깨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이 몹시 부러웠다. 대한민국에 오면 하늘이라도 찔러 보려던 나의 희망과 포부가 지하철 밑으로 하락 되는 것 같았다. 정말 때로는 내가 이렇게 살려고 대한민국에 왔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침에 들어가면 어두운 밤에야 머리에 별을 이고 지하철 밑에서 나와야 하는 내 자신이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정말 좌절 할 때가 많았다. 분명히 내가 목숨 걸고 찾은 소중한 자유인데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 온갖 시련과 고난 속에서 찾은 귀중한 자유인데 이 자유만 찾으면 한없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자유는 이런 나에게 너무도 냉정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나 나처럼 바쁘게 살고 있었다. 우리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언니들도 나처럼 아침에 왔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처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나만 탈북자라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었다. "그래! 누구나 나처럼 살고 있어. 나만 탈북자라는 특이한 이유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때부터 나는 내 주위에서 내가 모르고 스친 수많은 행복들을 하나 둘 찾아보았다. 소나무 껍질을 두드려 눈물에 섞어 먹던 내가 북한 감방에서 한줌밖에 안 되는 찬밥덩어리를 설움에 뜯어먹던 내가 오늘은 밥 먹기 싫다고 밥그릇을 외면하고 있지 않는가? 하도 살기가 힘들어서 향방이 없는 천리길을 뛰어야 했던 내가 오늘은 지하철 타고 다니지 않는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남의 나라에 쪽박을 들고 찾아갔다가 쫓겨 왔던 내가 오늘은 일하기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는가? 먹지 못해 퉁퉁 부은 눈으로 동정을 비는 작은 여윈 손에 욕설을 한가득 담아주던 냉정하기 그지없던 내가 이 나라 국민의 무관심을 비난하려하지 않는가? 나는 지금 흘러간 세월을 망각하고 살만큼 행복해졌다. 나는 지금 남의 불행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행복해 진 것 같다. 그래! 행복은 늘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때야 나는 비로써 아무런 생각 없이 스친 행복은 행복이 아니며 아무런 여운 없이 받아 안은 행복은 받아 안고도 행복인 줄 모른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탈북자라는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리고 땅을 내려다 보며 걸었다. 땅을 내려다보며 걷노라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껏 나는 자유라는 환상 끝에 나를 너무 올려 세웠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이런 다짐을 했다. 내 자신이 떳떳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그 날에 가서 이 나라 국민 앞에 탈북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리라 하고... 이런 모습으로 나서기는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고 있는 탈북자는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고생하며 찾아온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나도 이 나라 국민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탈북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탈북자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심지어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탈북자란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 후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대한생명에 입사하게 되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자본주의 사회는 너무도 만만치 않는 땅이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한 전 기간 벼랑 끝에 내 자신을 세우고 열심히 일해 나갔다. 일하면서 공부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FP자격증을 비롯하여 금융권에서 일러주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산의 ‘자’자도 모르던 내가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고 설계해주는 파이낸셜 플래너가 되었다. 지하철비도 없어서 센터 밑으로 빠져 다니던 내가 오늘은 내 힘으로 돈을 벌어 자가용까지 몰고 다닌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 멋져 보인다. 고생 끝에 낙!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성공은 결코 노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절대로 자만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상위급 법학대학 시험에 합격하였다. 나는 앞으로 판사가 되고 싶다. 꼭 판사가 되어 통일된 후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남과 북을 동시에 밟아 본 통일선봉대로써 진정으로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 되고 참된 진리를 부여할 수 있는 정당한 법을 세우는데 이바지하는 그런 훌륭한 판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제 날 우리가족에게 커다란 아픔을 준 그 땅에 “당신들이 어제 날 버렸던 그 정치범 자식이 오늘은 대한민국 품에 안겨 훌륭한 판사가 되었노라.” 소리 높이 웨치고 싶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불가능한 일에 늘 도전하며 살아왔으며 나의 인생에는 늘 쉬운 일이란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일들을 내 인생의 불가능이란 없다는 투지와 열정으로 헤쳐 왔으며 이겨왔다.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는 사회, 그 어떤 차별과 구속이 없는 나라,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나라, 이런 땅에서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목숨까지 걸고 이 땅을 찾아왔다. 그런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성공! 가게 사장이 되는 것, 외제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능력... 나는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내게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고 내게 주어진 기쁨에 감사 할 줄 아는 그 마음, 이 마음들이 우리를 성공으로 가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감히 성공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오늘 날 우리들을 받아주고 내세워준 이 땅에 우리가 진 빚을 치룰 그날에 가서 우리도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가자! 우리는 이 땅을 그렇게 찾아오지 않았던가? 등대도 없는 아득한 망망대양 어디에서도 오직 자유라는 한 점의 불빛을 찾아 거세찬 파도를 헤쳐 노를 저어가며 찾아오지 않았던가?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도 다짐해본다. 명심하자! 오늘도 우리는 제2의 탈북의 길을 걷고 있음을. 잊지 말자! 우리가 배부르다고 한 조각의 빵을 외면할 때 그 한 조각을 찾아 역전이며 장마당을 핥으며 다닐 불쌍한 우리 북한의 어린이들을! 그들의 몫까지 합쳐서 열심히 살아가자! 우리가 목숨 걸고 이 땅에 온들 무엇 하겠는가? 이 땅에서 삶을 값 없이 치른다면 차라리 오지 않기보다 못하다.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데 따라 정해진다. 우리들이 목숨 걸고 택한 선택에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보자. 나는 끝으로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북한에서 인간 최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던 우리 가족에게 광명을 안겨주신 대한민국 국민 앞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북한에서는 아빠 때문에 대학교 문전에도 가볼 수 없었던 우리 형제가 오늘은 오빠는 고려대학교 전자공학 과정을 성과적으로 이수하고 나는 상위급 법학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정말 온 세상에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사랑합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이 무엇인 가를 깨닫게 해주셔서. 2006년 10월 12일 박연옥 제공: 북한이탈주민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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