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수기]
[교화소 이야기] 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아(일명 비둘기 고문) - 이 준 하 -
- 북민위
- 2023-08-01 04: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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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병과 있었던 사건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담당 관리원이 내 편을 들지 않고 그냥 초병들을 나무라는 선에서 끝났다면 조용히 일이 끝났을 것이다.
일부 보안원들은 내 담당 관리원이 사적인 동정심에 빠져 죄인과 타협하려 했다며 뒷소리를 해댔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잡부조장이 잔뜩 겁먹은 인상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 “준하! 보안과 비서선생이 찾소.”
“예?”
보안과라는 말에 나는 살짝 가슴이 떨렸다. 우리 반 반장은 자기 양말과 내복을 벗어 나에게 입혀주느라 수선을 떨었다.
“준하야! 가서 매를 맞을지도 모르니까 아무거나 껴입어라. 그리고 혹시 독방에 갈지도 모르니까 이 양말도 덧신는 것이 좋겠다.”
“너무 걱정마쇼. 어차피 한 번은 당해야 할 일인데 죽기야 하겠소?”
모든 반원들이 동정하는 표정이니 그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씩씩하게 감방을 나섰지만 막상 보안과 비서실 앞에 서고 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다리가 춤을 췄다.
나는 긴장감을 수습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다리도 때려 보았지만 다리에서 일어난 경련이 이번에는 속으로 올라와 입술까지 덜덜 떨렸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아뿔싸! 태연한 척 자연스럽게 비서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잊고 그만 벌컥 문을 열고 무작정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이 새끼가 보고도 없이 들어와?”
보안과 비서의 째지는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비서의 손에 있던 물컵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날아오는 물컵을 그냥 맞았어야 하는데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새 내 허리는 숙여져 있었다. 보안과 비서가 아끼던 사제 유리컵은 철문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선생님, 가 282번 리준하 선생님이 불러서…….”
“들어왓!”
나는 엉거주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으려는데 보안과 비서가 고함을 질렀다.
“너, 저기 가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 골라가지고 와!”
보안과 비서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한 아름도 넘는 나무 몽둥이가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에 넓이가 7cm, 두께가 4cm, 길이가 1m 정도 되는 몽둥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비서 앞에 꿇어앉았다. 몽둥이질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릎에 끼우라.”
무슨 소리인지 몰라 머뭇했더니 순간 비서의 군홧발이 내 가슴을 걷어찼다. 벌렁 자빠졌다가 후다닥 일어나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비서가 또다시 내 가슴을 걷어찼다. 이렇게 열 번도 넘게 오뚝이 놀음을 하고 나니 비서가 입을 열었다.
“무릎에 끼우고 앉으라구. 조선말 몰라? 관절에 끼고 앉으라구!”
그 순간 나는 이 비서가 다른 보안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른 보안원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퍼부어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 비서는 쌍욕은 하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서운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얼른 몽둥이의 7cm 되는 면을 무릎 뒤에 세워서 살며시 앉았다.
비서는 책장을 한 장 찢어가지고 엉덩이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놓으면서 “종이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 5분쯤 지나서 나갔던 비서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섰다.
“종이 몇 번 떨어졌나?”
“안 떨어졌습니다.”
눈에서 불꽃이 피는가 싶더니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비서는 내 뒤편에 있는 고정된 책상 다리에 수갑을 걸어 내 손에 채우고는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종잇장 끝을 발뒤꿈치에 끼워놨으므로 조금만 움직여도 종이가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을 낑낑거리며 앉아 뭉개고 있었다. 이제는 다리에 느낌도 없어졌다.
종이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종이가 떨어질 때마다 군홧발로 걷어 채였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고 나자 이번에는 나를 꼿꼿이 서 있게 하였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주저앉는 내게 또다시 군홧발이 날아왔다. 맞으면서도 죽을힘을 다해서 일어서니 무릎에서 ‘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겨우 다리를 펴서 섰더니 갑자기 발바닥부터 뜨거운 열기가 다리로 올라오면서 다리의 맥을 모두 풀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비틀대며 책상에 손을 짚었더니 무릎에 끼고 있던 몽둥이를 들고 있던 비서가 벼락처럼 내 손등에 몽둥이질을 해댔다.
그때까지도 나는 외마디 비명만 지르면서 낮은 소리로 “고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도 비서는 막무가내였다. 시퍼렇던 손등은 거멓게 되더니 결국 살이 터졌다.
“이제 시작이야. 점심시간이니까 우선 밥부터 먹고 다시 보자!”
비서는 잡부조장을 불러 나를 독방에 넣으라고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잡부조장과 면식소부가 나를 부추겨 2호 독방까지 옮겨줬다.
“울며불며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밖에서 듣자하니 그저 ‘악, 악’ 하는 소리만 나더구만!”
“그러게. 이때까지 보안과 취조 받은 사람들 중에 울고불고 난리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나?”
독방 문이 닫히면서 그들의 말이 끊겼다. 사실 나는 기뻤다.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남들처럼 비굴하게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다.
독방에 들어가니 내 밥은 ‘5급 밥’이었다. 직경은 그냥 5cm였지만 높이가 3cm밖에 안 되는 아주 적은 밥이었다. 너무 힘들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 고문을 이겨내자면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오후 2시쯤 되자 다시 보안과 비서실로 불려갔다.
“흥, 아직 멀었군! 그럼 오전에 했던 것을 그대로 해보지 뭐.”
보안과 비서의 냉랭한 말이 들려왔다. 다시 무릎 뒤에 나무를 끼고 바닥에 앉았다. 곧 다리가 마비되었다.
“준하! 나 기억나?”
“예.”
“그럴 테지. 후회되는 점 없나? 있지!”
“예.”
“무엇이 후회되나?”
나는 질문의 대답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너, 너의 담당 선생에게서 담배 받아 피운 적 있다며?”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일 시킬 때만 “준하야! 준하야!” 하고 평상시에는 ‘개새끼’를 입에 달고 사는 담당 선생이 나에게 담배를 주다니 그런 일은 꿈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비서의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면회 온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약품 등을 빼앗아서 담당 선생에게 준 일 없어?”
“없습니다!”
“사사로이 담당 선생네 집에 땔감을 해준 적은 없어?”
“없습니다!”
“작년 가을에 감자나 강냉이를 훔쳐서 담당 선생네 집에 갖다 준 일 없어?”
“그런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럼 너는 교화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잘 못합니다.”
“너 담배 피우지?”
“길바닥에 있는 꽁초를 주워서 피운 적은 세 번 있습니다.”
비서는 답변을 할 때마다 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나는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울분과 분노를 가까스로 삼키며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속으로 ‘투지, 투지!’를 연방 외치며 오후 고문도 견뎌냈다.
규정상 어느 반에서 독방에 가는 사람이 생기면 그 반에서 독방의 난방에 필요한 땔감을 보장해야 한다. 저녁이 되자 우리 반장이 독방에 나무를 넣어야 한다는 것을 상부에 보고했다.
상부의 승낙이 있었는지 반장이 직접 나무를 메고 들어와 천주머니에 감추어 온 강낭떡을 꺼냈다. 내 몰골이 처참했는지 반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반장이 돌아가고 얼마 후에 멀리서부터 반별로 번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화소에서 죄인들이 취침 전에 번호를 외치는 소리는 개 짖는 소리와 똑같이 들렸다.
번호 소리가 끝나자 독감방에도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보안과 비서에게 맞은 부위가 쿡쿡 쑤셔와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시달린 다리를 쭉 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교화소 독감방은 가로와 세로 모두 1m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리를 펴고 누울 수도 없었다.
보안과 비서는 다음날 오전 11시가 되도록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 잡부조장이 독감방에 들어와서 목공반장 김혁철과 구내반의 취사조장 량명학을 비롯한 나와 친분 있는 사람 6명을 취조 중이라고 알려줬다.
6명 중에서 김혁철과 량명학은 나와 특별히 친분이 두터웠고, 서로만 알고 있는 비밀이 많았다. 잡부조장이 전해 준 소식을 듣고 나는 문제가 크게 번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보안과 과장, 보안과 비서, 예심원 명철이와 철국이 이렇게 네 명이 동원되어 검열에 들어갔다. 그들의 잡도리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내 담당 관리원도 무사할 것 같지는 않았다.
중요한 점은 우리 죄인들 서로가 동요하지 않고 단합하는 것인데 나는 그들이 이런 고문을 이겨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안과 비서라는 자는 나에 대한 첫 고문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자 즉시 방법을 바꾸어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색출하였던 것이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독감방에 들르는 잡부조장으로부터 그들이 나와 같은 고문을 받지만 나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우리들은 매일매일 별의별 형식의 고문을 다 경험했다. 보안과 선생들은 등 뒤로 두 손에 수갑을 채워 놓고, 몽둥이로 팔을 비틀기도 하고, 두 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아 놓기도 하였다. 발뒤꿈치를 땅에 닿지 못하게 하고 발끝으로 서 있게 하는 고문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밤 11시가 되면 피투성이가 되어 독감방으로 돌아와야 했던 우리들은 운 좋게 마주칠 때마다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그들은 7일 동안 보안과의 고문과 조사를 받아야 했다. 감방의 동료들은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한 셈이지만 내 죄목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안과의 고문과 조사는 더욱 악랄했다.
보안과는 자기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감방 동료들에게 죄 같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웠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어 피웠거나 밥덩이와 다른 생활필수품을 교환했다는 내용의 비판서를 쓰게 하고 그들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하지만 나는 쉽게 풀려나지 못했다. 초병의 총을 빼앗았다는 명목으로 나를 굴복시키려고 했으나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 제일 악랄하게 굴던 사람은 보안과 비서였는데 원래부터 내 담당 관리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라 나를 핑계로 내 담당 관리원을 공격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20일 만에 보안과 조사에서 풀려났다. 보안과는 결국 나에게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웠다.”는 진술서밖에 받지 못했다. 독방에서 나오는 길에 담당 관리원과 마주쳤는데 나에게 “독방에 들어가니 살만 하던?”이라며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건넸다.
그는 부식공에게 “야, 준하한테 밥은 먹이지 말고 내가 지시한 대로 죽부터 차례로 먹여라. 알겠지?”라고 전했다. 나는 보안과의 조사와 고문에서 내 양심과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2001년 국가의 ‘대사면’ 명단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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