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수기]
죄수도 인간이다. (1). 김혁
- 북민위
- 2023-09-05 13:00:09
- 조회수 : 715
[탈북민수기] 죄수도 인간이다.(2-1 ) - 김혁 -
- 인간 세상 속에서 - 김혁
그러던 9월 어느날 나는 재판 받으러 가게 되었다.
헌데 10호 감방에 있을 때 함께 친숙했던 왕창룡이라는 죄수가 내가 재판가는 날 도망치겠다고 했다고 말해버렸다.
그통에 나는 귀쌈을 30개나 맞았다.
여윈 얼굴이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지만, 그 호된 매에 퍼렇게 변해버렸다.
사형수처럼 뒤로 포승을 묶어 재판 받으러 갔다.
홀로 감방에 갇혀 포승도 풀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쪽잠을 자느라니 새벽이 밝아 왔다.
내가 어찌하여 이처럼 재판 받는 날을 고대히 기다렸으며 내가 오늘을 어찌하여 이런 재판장으로 끌려 나와야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내 머리 속에 일으킨다 나를 고발한 여자, 나는 그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었다.
다 굶어주게 된 그녀의 3 식구를 내가 먹여 살렸다.
물론 수단은 온전하지 못한 농장 강낭이밭 도적이었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들과 같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나는 물론 그 3식구까지도 먹여 살렸다.
그런데 그녀가 어찌하여 나를 고발하였는가?
그것도 자기 생명의 은인을 왜 감옥에 잡아 넣어 오늘날 이처럼 재판까지 받게 만들었는가? 여인은 괴물이다라는 소설책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이 당시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계속)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저주스러운 그녀
나는 1998년 9월경 그녀를 만났다.
집에 들어서니 집에 먹을 양식이란 전혀 없었다.
송구공 만한 곰팡이 낀 호박 2 개 반 외 먹을 것이란 쌀알 한 알도 없었다.
그녀 역시도 2일 동안 굶었고 그의 자식 오누이도 매 한가지였다. 불쌍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하며 남자 손이 없으니 혼자서 나무와 먹을 것을 얻기에 너무나 힘들다며 집에서 동거하자고 했다.
요구 조건은 나무를 해달라는 것과 식량을 얻을 수 있으면 가능한 함께 협조하여 살자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4살이었지만 나는 누나라고 불렀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농장 강낭이밭에서 도적질을 했다.
30kg배낭을 단번에 두개씩 이삭을 넣어 가지고 집에 내려왔다.
매일 근 6배낭의 이삭 강낭이를 훔쳐다 집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
먹지 못해 여윈 7살 짜리 소녀와 5살 짜리 남자 애는 차츰 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보잘 것 없는 강낭이지만 조선에서는 큰 식량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농장 밭 도적질이란 마지막 생명유지의 수단이었다.
그렇게도 많던 사람들과 그들의 인심은 다 없어지고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모두들 도적질이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때 현실의 참혹한 ? 사람들의 구호였다.
머저리처럼 왜 굶어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굶어죽는 사람들을 이전에는 불쌍히 여겼지만 지금은 머저리라고 하는 판이지 누구나 식량 도적질을 해도 도적이라고 생각지 않기에 나 역시도 서슴없이 도적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계속)
- 인간 세상 속에서 - 김혁
그러던 9월 어느날 나는 재판 받으러 가게 되었다.
헌데 10호 감방에 있을 때 함께 친숙했던 왕창룡이라는 죄수가 내가 재판가는 날 도망치겠다고 했다고 말해버렸다.
그통에 나는 귀쌈을 30개나 맞았다.
여윈 얼굴이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지만, 그 호된 매에 퍼렇게 변해버렸다.
사형수처럼 뒤로 포승을 묶어 재판 받으러 갔다.
홀로 감방에 갇혀 포승도 풀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쪽잠을 자느라니 새벽이 밝아 왔다.
내가 어찌하여 이처럼 재판 받는 날을 고대히 기다렸으며 내가 오늘을 어찌하여 이런 재판장으로 끌려 나와야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내 머리 속에 일으킨다 나를 고발한 여자, 나는 그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었다.
다 굶어주게 된 그녀의 3 식구를 내가 먹여 살렸다.
물론 수단은 온전하지 못한 농장 강낭이밭 도적이었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들과 같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나는 물론 그 3식구까지도 먹여 살렸다.
그런데 그녀가 어찌하여 나를 고발하였는가?
그것도 자기 생명의 은인을 왜 감옥에 잡아 넣어 오늘날 이처럼 재판까지 받게 만들었는가? 여인은 괴물이다라는 소설책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이 당시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계속)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저주스러운 그녀
나는 1998년 9월경 그녀를 만났다.
집에 들어서니 집에 먹을 양식이란 전혀 없었다.
송구공 만한 곰팡이 낀 호박 2 개 반 외 먹을 것이란 쌀알 한 알도 없었다.
그녀 역시도 2일 동안 굶었고 그의 자식 오누이도 매 한가지였다. 불쌍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하며 남자 손이 없으니 혼자서 나무와 먹을 것을 얻기에 너무나 힘들다며 집에서 동거하자고 했다.
요구 조건은 나무를 해달라는 것과 식량을 얻을 수 있으면 가능한 함께 협조하여 살자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4살이었지만 나는 누나라고 불렀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농장 강낭이밭에서 도적질을 했다.
30kg배낭을 단번에 두개씩 이삭을 넣어 가지고 집에 내려왔다.
매일 근 6배낭의 이삭 강낭이를 훔쳐다 집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
먹지 못해 여윈 7살 짜리 소녀와 5살 짜리 남자 애는 차츰 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보잘 것 없는 강낭이지만 조선에서는 큰 식량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농장 밭 도적질이란 마지막 생명유지의 수단이었다.
그렇게도 많던 사람들과 그들의 인심은 다 없어지고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모두들 도적질이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때 현실의 참혹한 ? 사람들의 구호였다.
머저리처럼 왜 굶어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굶어죽는 사람들을 이전에는 불쌍히 여겼지만 지금은 머저리라고 하는 판이지 누구나 식량 도적질을 해도 도적이라고 생각지 않기에 나 역시도 서슴없이 도적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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