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수기] [탈북자수기] 북에서 태어난것을 저주해요 (2)
  • 북민위
  • 2023-08-23 06:21:56
  • 조회수 : 491
-할머니 따라 새별로 가다  
우리는 걸어서 고원역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다리다 청진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차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짐을 깔고 앉았다. 그러다보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더군다나 짐을 잊어버릴 까봐 할머니와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온밤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우리는 청진에 도착했다. 청진역전에서 우리는 마른 옥수수빵을 조금씩 먹고 청진―학송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가 갈 시간이 되었는데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떠나지 않는가 물어 보니 앞에 끄는 기관차가 모자라 없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는가 물어 보니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찻간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차는 끄떡하지 않았다. 이렇게 날은 가고 4일째 되는 날 겨우 청진역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차는 학송 역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머니네 집은 새별인데 학송에서 새별로 가자면 대단히 멀었다. 차도 없고 할 수 없어 우리는 함께 걸어서 할머니네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네 집에 도착하니 집에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또 어떤 애기가 있었다 . 우리는 처음 그 애기가 누군지 몰랐다. 알고 보니 이 애기는 고모의 아이었다. 이름은 윤미였다. 윤미는 처음 우리를 보고 무서워 슬슬 피했다. 집은 매우 작았고 집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허술하게 판자로 만든 할아버지가 일하는 신발 수리장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사촌 동생들도 와 모두들 반갑게 인사 했다. 모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몇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신발 수리를 하셨고 작은아버지는 직장 일을 하였으며 작은어머 니도 할아버지처럼 신발 수리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신발 수리를 집 앞에서 하셨고 작은어머니는 아침마다 장마당에 나가 신발 수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네 집에 있으면서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윤미와 함께 놀곤 하였다.
윤미는 처음에 우리를 무서워하더니 얼마간 우리와 지낸 다음부터는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모는 얼마 전에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봐 주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아이들인 사촌 동생들은 원래 학교 다닐 나이인데 학교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죽을 잡숫고는 집앞에 나가 신발 수리를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어디로 가는지 계속 아침을 잡숫고는 집을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사촌동생들하고 놀곤 하였다.
-할머니, 중국에 다녀오다
우리가 할머니네 집에 와서 얼마간 있던 어느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먹을것이 없어 중국에 있는 친척들한테서 지원받으러 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집에는 나와 소연이, 그리고 윤미 셋이 있으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10일동안 있다가 올 테니 그때까지 밥은 작은아버지 보고 지어 달라 하고 집은 너희들 세 명이 잘 보고 있어라. 올 때 맛있는 것과 멋있는 옷을 많이 가져올게, 좋지?』라고 말하고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할머니네 집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저 집에서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놀곤 하였다. 아침이면 작은아버지가 와서 아침, 점심, 저녁밥을 지어놓고 직장에 나가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작은아버지가 해주는 죽을 먹곤하였다. 그리고 설거지는 소연이가 하였다. 소연이는 온 하루를 윤미와 함께 보냈다. 저녁이 되면 나, 소연이, 윤미 세 명이 자는데 할머니가 없다 보니 무서웠다. 자리를 펴고 누우면 마치 누가 들어올 것 같이 무서워서 잠이 들지 않았다. 특별히 저녁이 되면 천장에서 쥐새끼가 바스락 바스락하고 소리내는데 이럴 때면 소름이 끼치면서 막 무서웠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내고 드디어 10일이 되는 날이 왔다. 그런데 아침부터 기다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이때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기차역전도 가보고 길에서도 기다리며 온종일을 보냈다. 무서움증은 더했고 혹시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다. 나는 맥을 잃고 집에 돌아왔다. 동생들도 할머니가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 나는 이때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집에 들어와 조금 있다가 『이젠 할머니가 안 오겠지…』라고 생각하 고 앞마당을 나섰다. 그런데 내가 걸어갈 때, 뒤에서 소연이가 『오빠! 할 머니 할아버지가 왔다. 빨리 와!』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이때 소연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 소연이는 나를 놀리려고 거짓말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소연이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집에 가보니 정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와 있었다. 너무 기뻐 달려가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해서 『할아버지, 어째 이제야 왔습니까?』하고 말하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흑백 텔레비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오, 기차가 없어서 이제야 왔다』라고 대답하였다 . 할머니는 맛있는 것과 멋있는 중국제 옷을 내놓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너희들, 정말 용케 지냈구나. 이것은 선물이다』라고 말하 며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또 옆에는 큰 지함(紙函)이 있었다. 그걸 뜯어 보니 그 안에는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흑백 텔레비가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 콩콩 뛰며 텔레비를 만져보았다. 이땐 흑색 텔레비가 대단히 귀중했다. 마을에 열 집이 있으면 겨우 한 집만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 어쩔줄 몰랐다. 할머니는 그 다음날 지원받은 물건들을 더러 작은아버지집 에 가져다 주었다. 그때 작은아버지네는 생활이 대단히 어려웠다. 작은아버지는 직장만 다니고 아무 일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작은어머니가 신발 수리로 돈을 조금씩 버는데 네 명 식구가 먹고 살기 대단히 힘들었다 . 그래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조금 생기면 계속 갖다 주곤 하였다. 할머니는 나와 같이 작은아버지네 집에 갔었는데 작은아버지는 그 적은 물건을 받 고도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할머니가 지원받아 온 후에 우리는 옥수수죽이라도 조금씩 먹었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지원받은 후부터는 신발수리를 잘 하지 않으시고 집에 있는 이불이랑 사발이랑 하나하나 팔아 버리는 것이었다. 어느날 내가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려다가 할아버 지와 할머니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가 『중국으로 가려면 이 가구를 모두 팔아 돈을 모아야 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야단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고 왜 가구들을 파는지 알게 되었다.
하긴 뭐 이때 우리 마을에서도 중국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 할 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아, 정말 야단이에요. 빨리 중국으로 가야겠는데… 여기서 가만 있다가는 굶어죽고 만단 말이오. 이제 저 조금 지원받은 것마저 다 두들겨 먹으면 그땐 끝장이란 말이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물건 들을 팔아야겠소…』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차 있었다.
이튿날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며칠 지난 어느날 할머니는 가구 장사꾼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 말저 말 하며 가격 흥정을 하는 것이었다. 흥정을 다했는지 장사꾼들은 사람들을 시켜 이불장, 그리고 거울, 식장, 밥상 등을 모조리 가져갔다. 그리고는 할머니한테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할머니는 장사꾼들이 나간 다 음 이불장 자리를 쓸면서 『에이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이불장, 이불 다 헐값으로 팔아버렸구나. …후…』라고 말하며 한탄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팔아버려 이젠 텅 빈집이었다.
-가재도구 팔고 중국으로 떠나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할아버지는 누가 텔레비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면서 내가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던 흑백 텔레비를 천에 싸가지고 어디로 나갔다 .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물건을 팔아가지고 얼마간의 돈을 모았다. 할머니는 돈을 다 모으고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드디어 집을 나서는 날이 왔다. 우리는 얼마간의 도중식사를 짐 안에 넣고, 가는 도중 필요한 물건들도 짐 안에다 넣었다. 최대한으로 짐을 없앴다. 짐들을 다 없애고 보니 짐은 할아버지가 지고 나는 도중식사를 가방에 넣고 어깨에 메었다. 할머니는 윤미를 업었다.
다음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두리번거리고 보니 사진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과 우리 가족의 사진이 몇장 있었다. 나는 이것을 주워 짐 안에 넣을까 하다가 너무 자리가 없이 빼곡히 차 있어 갈때 주머니 안에 넣어 가지고 가려고 생각했다.
드디어 아침 해가 조금 떠오르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이걸 듣고 『야! 철이야, 누구도 모르게 빨리 마을을 빠져 나가야 한다. 만약 들키면 우린 죽는다. 그러니 너는 할아버지와 소연이를 데리고 빨리 나가야 한다』 하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사촌동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작은 소리로 울며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시간이 급하기 때문에 빨리 나가야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울며 『만약 살아 남으면 언제든 꼭 만날 수 있을거다』하고 말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나는 대단히 슬픈감을 느꼈다. 나와 소연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부랴부랴 짐을 지고 작은아버지네하고 포옹을 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왔다.
할머니는 집에서 뭐하는지 조금 있다 나오겠다고 하였다. 만약 모두 같이 나오면 알아볼까봐 따로따로 나온 것이다. 우리 셋은 머리도 들지 않고 할머니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빨리 갔다. 우리는 약속 장소에 머물러 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낯이 익은 땅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든 땅이었다. 한참 우리가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윤미를 업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우리를 보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금도 쉬지 않고 기차 역전으로 나갔다. 나갈때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앞뒤로 나누어 갔다.
기차 역전에 도착해서 우리는 좀 기다리다가 삼봉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앉지도 못하고 서서 갔다. 원래 삼봉 까지 가는 데 4~5시간 걸리는데 차가 얼마나 늦게 가고 연착되는지 열 몇 시간을 갔다.
-두만강을 건너다
우리가 삼봉에 도착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 사람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고 개구리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어느 한 집으로 갔다.
집 주인은 할머니를 아는지 아니면 미리 약속했는지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 우리는 그 집에서 죽을 대충 먹고 집 주인이 깔아주는 잠자리에 누웠다. 잠자리에 눕자마자 소연이와 윤미는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떠나오던 것부터 곰 곰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져 오려고 놓아두었던 사진을 너무 바쁘게 떠나오다 보니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특별히 두고 온 사진 중에는 엄마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엄마의 제사때는 사진이 없어서 어떻게 제사를 지내겠는가 하는 것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랐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그 사진을 보려고 했는데 가져오지 못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내가 미워서 한동안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음날 할머니는 우리를 남겨두고 혼자 어디를 나갔다. 할머니는 그 뒤에도 나갔다가 깊은 밤에 들어오곤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그 집에서 며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할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어느 마을의 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집은 할머니와 연계하는 집이었다.
우리는 이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 중국으로 가는지 몰랐다. 그저 여하튼 중국으로 간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할머니와 이 집 주인이 말하는 걸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집 주 인이 우리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걸 도와 주는 집이었다. 우리는「두만강」을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집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오후 우리는 점심을 대충 먹고 집 주인을 따라 어디로 갔다. 가는 도중에 총을 메고 줄서서 가는 군대들 도 많이 보았다. 집 주인은 우리를 데리고 계속 가다가 어느 철길 옆에서 머물렀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이제 강을 넘어갈 때 소리를 치거나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꼭 손을 잡고 건너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도착하여서는 머물러 있지 말고 빨리 뛰어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다간 중국 변방대한테 잡히고 맙니다. 그러니 주의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빨리 건너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너무 긴장해 서 그러는지 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숲을 헤치고 보니 정말 앞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때 정말로 놀랐다.
할아버지는 소연이를 업고 할머니는 윤미를 업고,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강에 들어섰다. 강에 들어서자마자 강물이 얼마나 찬지 뼛속 까지 추위가 스며들었다.
이때는 겨울이 시작된 11월 말이었기 때문이다. 강 중간쯤 들어서니 물 높이는 내 배까지 찼고 몸이 당장 얼어떨어질 것처럼 찼다.
나는 너무 긴장하여 추운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용감히 건너편 강둑을 향해 걸어갔다. 소연이와 윤미도 발이 절반 쯤 물에 잠기었으나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때 상황이 그렇게도 긴장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뒤도 돌아보 지 않고 걸어갔다. 거의 강둑에 도착하려고 할 때 별안간 물이 깊어지면서 내 배까지 차던 물이 갑자기 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이때 너무 놀라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을 억누르고 『억!』하고 약간의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강둑에 도착해 내가 먼저 올라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끌어올렸다.
할아버지는 너무 지쳐 완전히 맥을 쓰지 못하며 비틀비틀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손을 잡고 끌어올려서야 겨우 올라왔다.
철이야, 아버지가 이제 여기로 온다』
우리는 다 올라와서 한숨도 쉬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 강둑을 넘어 앞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나무가 무성하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잠깐 앉았다. 우리는 여기서 옷을 다 갈아입었다. 나와 소연이, 그리고 윤미는 너무 추워 오돌오돌 떨며 앉아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날이 새까맣게 질때 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날이 어두워 사람이 잘 보이지 않자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전진해 나갔다. 완전히 엎드려 기어가는 우리의 모습은 쥐가 무엇을 도적질하러 가는 모습과 같았다. 가다가 사람 인기척이 나거나 불빛이 보이면 엎드리곤 하는데 이 모습은 완전히 敵後(적후)에 나가는 정찰병들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캄캄한 밤에 할머니의 인솔에 따라 겨우 어느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다. 길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꼬불꼬불 오솔길이었다. 할머니가 지원을 받곤 하던 먼 친척집에 도착하였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친척들은 대단히 반가워하였다.
우리는 도착하자 먼저 차려주는 밥부터 먹었다. 이밥을 가득 담고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은 보기만 해도 살 것 같았다. 배가 굉장히 고픈데다가 꿈에서 보았던 음식들을 먹으니 저절로 슬슬 넘어갔고 맛이 있기도 하지만 딱 꿈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매끼 이렇게 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부터는 이밥을 먹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대단히 기뻤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연이와 윤미도 너무 좋아 게걸스레 밥을 먹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주는 중국 옷들로 모두 갈아입었다. 중국옷들은 얼마나 멋있고 좋은지 나는 그때 그 옷을 입고 계속 거울만 바라보았다.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온 것과 같았다. 우리는 이날 밤을 그 집에서 지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우리는 또 맛있는 이밥을 먹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때였다. 할머니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철이야, 아버지가 이제 여기 로 온다』라고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뜻밖이어서 내 귀를 의심하였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아 『할머니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어디에 있다구 여기서 만납니까?』하고 비웃었다.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믿어지지 않겠지. 그럼 기다려 봐라』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기다려 보았다.
- 임철·소연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