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3번째 생이별’ 막았다.-동아일보
  • 정진화
  • 2012-04-07 10: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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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재혼… 북송 이별… 재탈북… 부부 한국행… 또…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 배려로 남편 강제출국 아찔한 위기 넘겨

 
함경북도 출신 최숙경(가명·47·여) 씨는 1997년 굶주림에 지쳐 탈북했다. 이후 중국 지린 성의 한 도시 인근에서 농사를 지었다. 남편을 여읜 그녀는 돈을 모아 북한에 살고 있는 아들(21)과 어머니에게 생활비로 건넸다.

최 씨는 2006년 동네 주민의 소개로 조선족 이철수(가명·48)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 씨가 첫눈에 마음에 든 데다 양 집안이 알고 있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2007년 첫 번째 불행이 닥쳐왔다. 누군가가 최 씨가 탈북자라고 중국 공안에 신고한 것이다.

최 씨가 강제 북송된 것을 뒤늦게 안 남편 이 씨는 북한으로 들어갔다. 이 씨는 북한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관리들에게 뇌물을 건넸다. 그 덕에 부인 최 씨는 교화소에서 복역을 하는 대신 노동단련대에서 6개월간 노동했다.


이 부부는 2008년 함께 탈북했지만 2009년 4월 누군가의 신고로 또다시 북송 위기에 처했다. 최 씨 부부는 불안한 중국생활을 접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최 씨의 시아버지(2011년 작고)는 ‘며느리와 손자가 안전한 생활을 해야 한다’며 한국행을 간절히 바랐다. 최 씨 모자는 2009년 4월경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했다. 남편 이 씨는 해외동포비자(H2)로 입국했다. 이 부부는 입국 뒤 혼인신고를 하고 광주에 정착했다. 최 씨는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이고 아들은 늦깎이 고교 3학년 수험생이다. 남편 이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지난달 최 씨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남편 이 씨의 해외동포비자 기한이 끝나는 데다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결혼비자(F6) 발급이 힘든 상황이 됐다. 남편 이 씨의 강제출국 위기를 알게 된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달 7일부터 3차례 조사를 벌여 최 씨 부부가 금실이 좋은 진짜 부부라는 것을 확인했다.

최 씨 등은 3일 김원숙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찾아 감사를 표했다. 김 소장은 “험난했던 인생 여정을 알고 세 번째 생이별을 막기 위해 작은 배려 차원에서 실태 조사를 한 것”이라고 했다.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6일 남편 이 씨의 결혼비자 발급을 승인했다.

최 씨는 “강제북송과 탈북, 중국 생활에서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다”며 “남편과의 세 번째 생이별이 없도록 배려해준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또 “북한 공무원과 남한 공무원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 놀랐다”고도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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