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이 된 탈북자들
  • 캐나다
  • 2012-02-21 19: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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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산독재 국가지만 북한과 중국은 많은 차이가 있다. 북한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잔인한 인권유린을 감행하면서도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이 정치범이 되면 그의 온 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친척들까지 숙청되는 북한정권의 연좌제는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함부로, 도저히 감행할 수 없는 잔인한 범죄이다.

그런 북한정권에 비교하면 중국의 독재는 훨씬 정교하고 지능적이다. 중국은 어떤 세력을 숙청해 버릴 때 사전에 꼭 그 탄압행위의 타당성을 만들어 놓는다. 이를테면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탄압행위의 명분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파륜공 숙청과정을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파륜공이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 속에 대중화 되고, 그 실체가 무시할 수 없는 역량으로 커지자 관제언론들을 통해 몇 명에 불과한 파륜공 수련자들의 자살 행위를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집중 부각시켰다. 그렇게 숙청의 명분을 만들어 놓은 다음 “한 몽둥이”로 1억 명 이상의 파륜공 수련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필자가 중국 공산당의 상투적인 자국민 탄압수법을 떠올려보는 것은 최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그와 유사한 사건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교포들과 한 언론이 탈북자 몇 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각시키며 탈북자들 전체를 매도하는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여론 몰이의 핵심은 캐나다에 입국한 탈북자들 “대부분”이 한국을 거쳐 온 탈북자들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탈북자들이 캐나다로 입국 했다. 그들이 캐나다로 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캐나다가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이고 난민과 이민을 수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리도 인간처럼 살아보자”고 캐나다로 오는 것이다.

그들 중에 일부가 한국을 거쳐서 온 탈북자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 교포들의 말씨름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탈북자들은 캐나다에 입국하면 해당기관의 구체적인 심사를 받는다. 그 심사과정에 한국을 거쳐서 온 탈북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난민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래서 돌아간 탈북자도 있고 불법체류자들도 생겨난다.

최근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언론, 유엔 인권기구까지 한국에 체류한 탈북자들이 다시 3국으로 자유롭게 정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거쳐서 온 탈북자들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캐나다의 해당기관도 탈북자들은 국제적으로 인정한 난민이라는 이유로 신중히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문제의 또 다른 핵심은 몇 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탈북자 전체문제로 확대시켜버린 것이다. 물론 일부교포들이 자기 주위에 있는 몇 명의 탈북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문제해결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전체 탈북자문제로 확대시키면서 탈북자들 전체를 범죄자로 낙인하고 있다.

더욱 불미스러운 것은 이번 여론 몰이의 주역이 북한인권운동가라는 것이다. 그의 이율배반적 작태에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경복 북한인권협의회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인권운동가들은 탈북자들을 체포 북송하는 중국정부에 한 마디의 항의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내 탈북자들은 국제법이나 인도주의적인 시각으로 보면 불쌍한 난민이지만 중국의 현행법을 적용하면 비법월경자거나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일부교포들은 탈북자들 문제로 한인사회에도 불통이 튈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탈북자들 때문에 한인사회에 튈 불통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이유는 캐나다가 인권국가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준 것이 범법으로 취급된다면 캐나다는 인권국가가 아니다. 생소한 캐나다에 찾아온 탈북자들을 동포라는 한 가지 이유로 진심으로 도와준 것이 한인사회이다. 결국 불통이 튈 것이라는 말은 탈북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그들을 도와주는 한인사회에 공갈을 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은 또한 탈북자들이 북한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독설했는데 그것은 시각차에서 생겨난 오판이다. 탈북자들은 진정성이 없는 어떤 운동이나 대상에 거부감을 느낄 뿐이다. 자신의 의사가 통하지 않으면 매도해 버리는 것은 독재에 익숙한 공산당원들의 상투적인 발상이다. 독재자들이 그랬다. “비온 날 동네 장독은 내가 모두 덮었으니 나를 받들지 않는 자는 곧 나의 적”이라고.

탈북자들은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이다. 토론토에서 탈북자들의 사회적 나이는 영유아에 불과하다. 말도 모르는 약자중의 약자들이다. 그들이 왜 일부교포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탈북자들은 오던 사람 가던 사람, 개나 돼지까지 심심하면 두드려 보는 동네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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