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3부의 전성시대!
- 안찬일
- 2012-02-02 18:11:14
- 조회수 : 1,610
북한에서 3부가 뜨고 있다. 간부-어부-과부가 그것으로 북한 사회 부정부패의 대명사를 칭하는 말이다. 간부와 어부(漁夫)야 오래전부터 힘도 쓰고 유세도 대단한 직업이지만 과부까지 합세한 것은 아무래도 김정일이 지향한 강성대국이 결국 '부정부패의 강성대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이미 부정부패의 강성대국을 달성하고도 남은 것이다.
오늘 북한에서 과부는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 이후 그 숫자가 최고로 늘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7년 이후 조선 땅에는 남성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희생되다보니 과부만 남았었다. 그래서 선조는 유가의 가치를 내세우며 '열녀비'란 것을 만들어 여성들의 정조를 강조했고 민초들은 '보쌈'이란 것을 창안해 과부들의 재혼을 조장하였다.
북한 사회에서 과부가 늘어난 이유는 가슴 아프다. 식량배급제도가 무너지면서 남편들이 떠돌이 신세가 되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자연 과부급증이 이어졌다. 어떤 과부들은 호적상은 부부이고 돈을 벌 때만 '과부'로 둔갑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2009년 11월 화폐개혁 이후 북한 사회는 급속하게 부정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정권이 식량배급을 줄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서 일종의 장마당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경제를 정착시켜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미 북한에서 화폐는 경제적 교환 가치로서의 기능과 사회정의를 외면한 지 오래된 휴지장에 불과했다. 모든 재화가 고갈되고 확대재생산이 정지된 북한 경제구조에서 돈이나 찍어내 나누어 준 들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이 말이다.
화폐개혁 직후인 2009년 12월 1kg당 20〜40원하던 쌀값은 지난해 말 3,000원까지 뛰어오르더니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는 무려 5,000원까지 치솟았다. 또 원화의 환율도 2009년 11월 1달러당 35원에서 김정일 사망 후 5,000원까지 급등하였다. 물론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명목상 근로자들의 임금을 100배 정도 끌어올렸지만 북한에서 당국이 주는 돈은 무의미하다. 북한의 화폐에서 5000원은 최고 단위이며 이는 북한에서 아직도 우대받는 군인 중 중좌급 즉 대대장의 월 급여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군인들과 공무원들이야 그나마 일정량의 배급과 공급을 받지만 순전히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북한의 보통사람들에게 쌀 1kg당 5,000원 폭등은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북한에서 보통 4인 가족의 경우 월 생활비는 15만 원 정도 되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자연 여성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고 여기서 과부 아닌 과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애당초 3부란 말이 나올 때 여기서 과부란 임자 없는 몸이란 의미를 강하게 풍기는 용어다. 굳이 인류가 만든 최초의 직업 '창녀'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우리 옛 속담에 "마음 헤픈 과부 속곳가랑이 마를 날 없다"는 말이 달래 생긴 것 아니다. 미모의 과부들의 월수입은 수 만원에서 수십 만원까지 짭짤하다. 현재 북한의 시장 즉 장마당은 300여 개에 달하는 데 미모의 과부들의 생활전선은 이 장마당의 제2전선이다.
미모의 과부들은 새벽같이 장마당에 나가 필사적인 자리다툼을 벌리며 사활을 건 생존투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간부들과 돈 꽤나 만지는 졸부들의 퇴근시간 즈음 곱게 화장하고 향수 냄새 풍기며 기다리다 그들의 욕정을 채워주면 한꺼번에 수 천원의 돈이 생긴다. 술 냄새 지독한 기름덩어리를 끌어안고 단 몇 시간만 참아주면 한 달 이상의 수입이 생기는데 어떤 여성이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화대로 자전거와 리어카 같은 물건을 받기도 한다. 북한에서 자전거는 재산목록 1위다. 오죽하면 남자들이 "마누라는 빌려주어도 자전거는 절대로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겠는가. 과부들의 부패는 자연 청소년들의 부패와 풍기문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숙박시설이 열악한 북한 사회에서 과부들의 몸을 이용한 돈벌이는 청소년들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다. 많은 과부들이 자신의 집을 돈벌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주로 낮에 '영업'을 하는 사례도 많은데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그 광경을 목격하는 경우 참으로 가관이 벌어지고 있다.
한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 청소년들의 성경험 연령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적으로 과부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가져다준 결과일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성문란은 반드시 마약과 공존한다. 김일성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산을 독려한 직후부터 마약은 북한에서 가난을 달래주고 쾌락을 부추기는 2중 효과를 내며 북한 사회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다. 원래 마약이란 것이 돈이 많은 사람들이 흡입하는 독소인데 북한에서는 사회 저변까지 환각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마약은 1회 복용에 수 천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고가의 것이지만 간부와 어부, 과부들에게는 별로 부담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돈의 노예가 됨과 동시에 북한 장마당경제에서 돈을 돌게 만드는 기계적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수렁에서 헤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부정과 부패, 풍기문란은 삶의 최고방식으로 고정불변할 것이다.
부패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패의 순기능도 강조하고 있다. 적절한 부패는 경제작동의 윤활유라는 것이다.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부정과 부패는 윤활유 정도가 아니라 기본 에너지요,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최고 지도자란 사람이 여자가 네다섯 명이고 그 아들까지 세 명 이상의 여자를 두고 호색광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니 아래 인민들이 무엇을 따라 배울지는 자명하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한 과부를 둔 가정이야 목구멍에 거미줄 쓸 걱정 없지만 미모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북한의 백성들은 오늘도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세상을 원망하며 한탄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양형섭이 북한이 앞으로 개혁-개방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북한 사회의 개방은 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타락을 가져다줄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개혁과 개방은 절실하다. 북한이 제때에 개혁과 개방을 단행해 사회주의의 낡은 두루마기를 벗어던졌더라면 오늘과 같은 부정과 부패, 타락과 절망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습이란 봉건정치로 이어가는 북한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500년 전의 불쌍한 과부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그들의 비극을 덜어줄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시점이다.
안찬일 논설위원<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오늘 북한에서 과부는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 이후 그 숫자가 최고로 늘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7년 이후 조선 땅에는 남성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희생되다보니 과부만 남았었다. 그래서 선조는 유가의 가치를 내세우며 '열녀비'란 것을 만들어 여성들의 정조를 강조했고 민초들은 '보쌈'이란 것을 창안해 과부들의 재혼을 조장하였다.
북한 사회에서 과부가 늘어난 이유는 가슴 아프다. 식량배급제도가 무너지면서 남편들이 떠돌이 신세가 되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자연 과부급증이 이어졌다. 어떤 과부들은 호적상은 부부이고 돈을 벌 때만 '과부'로 둔갑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2009년 11월 화폐개혁 이후 북한 사회는 급속하게 부정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정권이 식량배급을 줄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서 일종의 장마당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경제를 정착시켜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미 북한에서 화폐는 경제적 교환 가치로서의 기능과 사회정의를 외면한 지 오래된 휴지장에 불과했다. 모든 재화가 고갈되고 확대재생산이 정지된 북한 경제구조에서 돈이나 찍어내 나누어 준 들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이 말이다.
화폐개혁 직후인 2009년 12월 1kg당 20〜40원하던 쌀값은 지난해 말 3,000원까지 뛰어오르더니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는 무려 5,000원까지 치솟았다. 또 원화의 환율도 2009년 11월 1달러당 35원에서 김정일 사망 후 5,000원까지 급등하였다. 물론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명목상 근로자들의 임금을 100배 정도 끌어올렸지만 북한에서 당국이 주는 돈은 무의미하다. 북한의 화폐에서 5000원은 최고 단위이며 이는 북한에서 아직도 우대받는 군인 중 중좌급 즉 대대장의 월 급여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군인들과 공무원들이야 그나마 일정량의 배급과 공급을 받지만 순전히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북한의 보통사람들에게 쌀 1kg당 5,000원 폭등은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북한에서 보통 4인 가족의 경우 월 생활비는 15만 원 정도 되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자연 여성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고 여기서 과부 아닌 과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애당초 3부란 말이 나올 때 여기서 과부란 임자 없는 몸이란 의미를 강하게 풍기는 용어다. 굳이 인류가 만든 최초의 직업 '창녀'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우리 옛 속담에 "마음 헤픈 과부 속곳가랑이 마를 날 없다"는 말이 달래 생긴 것 아니다. 미모의 과부들의 월수입은 수 만원에서 수십 만원까지 짭짤하다. 현재 북한의 시장 즉 장마당은 300여 개에 달하는 데 미모의 과부들의 생활전선은 이 장마당의 제2전선이다.
미모의 과부들은 새벽같이 장마당에 나가 필사적인 자리다툼을 벌리며 사활을 건 생존투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간부들과 돈 꽤나 만지는 졸부들의 퇴근시간 즈음 곱게 화장하고 향수 냄새 풍기며 기다리다 그들의 욕정을 채워주면 한꺼번에 수 천원의 돈이 생긴다. 술 냄새 지독한 기름덩어리를 끌어안고 단 몇 시간만 참아주면 한 달 이상의 수입이 생기는데 어떤 여성이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화대로 자전거와 리어카 같은 물건을 받기도 한다. 북한에서 자전거는 재산목록 1위다. 오죽하면 남자들이 "마누라는 빌려주어도 자전거는 절대로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겠는가. 과부들의 부패는 자연 청소년들의 부패와 풍기문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숙박시설이 열악한 북한 사회에서 과부들의 몸을 이용한 돈벌이는 청소년들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다. 많은 과부들이 자신의 집을 돈벌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주로 낮에 '영업'을 하는 사례도 많은데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그 광경을 목격하는 경우 참으로 가관이 벌어지고 있다.
한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 청소년들의 성경험 연령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적으로 과부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가져다준 결과일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성문란은 반드시 마약과 공존한다. 김일성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생산을 독려한 직후부터 마약은 북한에서 가난을 달래주고 쾌락을 부추기는 2중 효과를 내며 북한 사회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다. 원래 마약이란 것이 돈이 많은 사람들이 흡입하는 독소인데 북한에서는 사회 저변까지 환각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마약은 1회 복용에 수 천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고가의 것이지만 간부와 어부, 과부들에게는 별로 부담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돈의 노예가 됨과 동시에 북한 장마당경제에서 돈을 돌게 만드는 기계적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수렁에서 헤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부정과 부패, 풍기문란은 삶의 최고방식으로 고정불변할 것이다.
부패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패의 순기능도 강조하고 있다. 적절한 부패는 경제작동의 윤활유라는 것이다.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부정과 부패는 윤활유 정도가 아니라 기본 에너지요,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최고 지도자란 사람이 여자가 네다섯 명이고 그 아들까지 세 명 이상의 여자를 두고 호색광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니 아래 인민들이 무엇을 따라 배울지는 자명하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한 과부를 둔 가정이야 목구멍에 거미줄 쓸 걱정 없지만 미모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북한의 백성들은 오늘도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세상을 원망하며 한탄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양형섭이 북한이 앞으로 개혁-개방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북한 사회의 개방은 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타락을 가져다줄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개혁과 개방은 절실하다. 북한이 제때에 개혁과 개방을 단행해 사회주의의 낡은 두루마기를 벗어던졌더라면 오늘과 같은 부정과 부패, 타락과 절망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습이란 봉건정치로 이어가는 북한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500년 전의 불쌍한 과부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그들의 비극을 덜어줄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시점이다.
안찬일 논설위원<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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