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초 근본선-
  • 성애
  • 2012-01-27 10:45:29
  • 조회수 : 1,378

인지초근본선 -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의 근본은 선하다. 역자.

 

스키하라 영사의 자아 희생이 유대인 30,0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하다

 


( 1 ) 영사관에 몰려 온 사람들

--------------------------------------

1939년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 무르익을 때, 나고야 태생의 스카하라씨는 일본 정부로부터 리투아니아( 폴란드, 소련 간의 작은 나라) 영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하루는 대사관 앞에 5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오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떠나지 않고 소리 지르며,무어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스키하라 영사는 그들 중 몇 사람을 대표자로 대사관 안에 불러들여 사연을 물었다. 사연인즉 자기들은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들인데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하여 거기서 야간에 탈출하여 리투아니아로 피난왔는데 독일군 탱크가 지금 리투아니아로도 들어오고 있다.


독일인은 유대인은 다 잡아 죽이니 자기들도 여기 있다가는 필경 죽을 판이라 우리를 살려달라고 절박하고 간절한 어투로 탄원하는 것이었다.


스키하라는날보고 어찌 해달라는 것이냐?” 물으니 그들은

우리가 여기서 빨리 탈출하도록 일본행 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 스키하라씨는 하루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본국에 전보를 쳤다

여기 유대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어도 되겠느냐?” 고 하니 답신은 NO!였다.


일본이 동일과 이태리와 삼국 동맹을 맺고 있는 중인데 독일이 원치 않는 일을 일본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대사관 앞에서 노숙하며 애타게 기대를 걸고 있는 유대인들을 실망시킬 수가 없어서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고 두번째 전문을 보내어도 역시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 또 세번째로 급히 보낸 전문은 비자 발급 여부에 대한 질문이 아닌 강한 어투로 이들을 여기서 내보내지 않으면 그들은 다 죽으니 허락해 달라.” 고 발신하였으나 역시 !였다.



( 2 ) 사람의 생명이 더 중하지 아니한가?

----------------------------------------------

그래서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 스키하라씨는 드디어 생각하기를


사람의 생명이 더 귀하지 아니한가? 어찌 이들이 죽는 것을 뻔히 보면서 그들을 사지로 내몰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결심하기를


국가의 명을 어겨 나는 처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내 직권으로 그들에게 비자를 내주리라고 의로운 결단을 내리고, 그들을 불러들여 비자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비자는 이름 쓰고 싸인만 하는 것 뿐이 아니고 서류를 다 작성하는 것이므로 1인당 싸인에 10분이나 20분만 가지고는 되지 아니하므로 서류 작성은 너무 바뻤다.그래서 드디어 그들 50여명에게 비자를 다 내주고 나니 그 소문을 들은 유대인들이 점점 몰려와 수백명,아니 며칠 동안에 1,000명이 넘게 되고, 드디어 나중에는 2,000명에서 3,000명 가량도 넘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싸인 하는데, 하루에 200명씩 밖에 싸인을 못하므로 자기 부인 가족과 직원들까지 총동원 되어 서류를 작성하고

자기는 싸인만 하여도 시간이 부족하였다.너무 바뻐 야간에 잠도 누워 못자고,의자에 앉은 채 잠깐씩 졸며 싸인하였고, 싸인하는 손은 마비되어 감각도 없이, 잘 움직여지지도 아니하였으나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 만난을 무릅쓰고 싸인하였다


 

하루 200명씩20여일 만에 다 싸인했으나 더 많이 몰려와 지쳐 죽도록 싸인하였다그 때 본국에서 전문이 날아와 주 리투아니아 일본 영사관을 폐쇄하니 영사관 문을 닫고, 독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왔다,


 그래서 모든 행정 조치가 단절되니 더 이상 영사관 업무를 볼 수가 없어서 영사관 문을 닫고 이동할 수 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이사하는 그 D-Day 에 그와 가족이 가는데도 유대인들이 따라왔다.

기차가 정거장에 서 있는 동안에도 기차 안에서 계속해서 싸인해서 창 밖으로 내어주었다.


 드디어 기차가 움직이자, 유대인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면서 양팔을 들어 큰 소리로


스키하라 만세 를 외쳤다. 그 때 스키하라는 다 싸인 못해 준 사람들을 위하여 마지막 결단을 내려 주 리투아니아 일본 영사의 직인()을 창 밖으로 던져주며 "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 고 외치자 유대인들이 그 도장을 줏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그 도장으로 가로 싸인 만든 것까지 합하면 스키하라가 구한 유대인은 세대주인 남자들만 약 6,000명이라 하며, 그 딸린 가족들까지 합하면 30,000명 이상이라 한다


 그들은 일본까지 와서 2,3일 정도 있다가 다시 홍콩을 통해서 독일군이 없는 유럽으로 갔다



( 3 ) 스키하라의 고독한 신세

-----------------------

스키라하씨는 영사직에서 쫓겨나고 그 후 독일은 패망하고 2차대전이 끝나자 서독에 진주한 미군에 의하여 스키하라 가족은 수용소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 미군이 진주 안했으면 유대인 방면 죄로 곧 사형 당했을 것인데 사형 직전 풀려 났다 한다.)


 

일본에 돌아 왔으나 직장도 잃고 불쌍한 처지가 되며 세상은 그를 다 잊었다. ( 그러나 천사들은 물론 그의 모든 행실을 하늘 책에 다 기록하였을 것이다.)



( 4 ) 스키하라를 찾아라

-------------------

그 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6일 전쟁을 승리하며 안정을 되찾은 후

이스라엘 정부는 주 일본 이스라엘 대사에게 스키하라를 찾아내라 는 특명을 내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첩보 능력은 드디어 시골에 쓸쓸히 묻혀 있던 스키하라를 찾아내었는데,

그를 만난 주일 이스라엘 대사 자신이 바로 스키하라의 싸인으로 리투아니아를 탈출한 유 대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대사는 스키하라를 만나자 말하기를 당신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당신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자 여기 당신이 발행한 비자를 보십시오하면서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다 낡은 주 리투아니아 일본 대사 스키하라 발행의 일본행 비자를 꺼내 보여주며 당신이 발행한 이 비자로 수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비자를 귀중한 보물로 간직하며 당신께 감사하며

홀로코스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고 이스라엘 나라 건설에 힘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 안 있어 열리는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에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여 초대합니다.” 하면서 미리 작성한 초대장을 주었다


 

그리하여 스키하라는 그 건국 기념일에 초대 받아대대적인 전 이스라엘 국가적 환영을 받으며, 건국 기념일에 이스라엘 수상으로부터이스라엘 건국 제1공로 훈장 받았다

( 그 훈장에는 많은 상금과 그의 한 평생 생활비가 따라 다닌다.)


그 자녀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공부 시켜주고 장남은 나중에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을 졸업하고 보석 회사 사장이 되었다


스키하라씨는 일본 정부로 부터도 명예 회복이 되었고 더구나 그를 차대전의 영웅으로 추서하였고 그의 기념관도 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 나중에 이스라엘 정부에서 또 다시 다른 훈장을 재차 수여하려 하였으나 그가 몸이 약하여져서 일본 대사가 그에게 와서 훈장을 전달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후 죽었다

자아 희생은 주님의 정신이다
사랑은 자아 희생이없이는 나타나지 않으며
'사랑은 십자가 희생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하늘 나라의 보석이요
우주의 대원칙이다

 
 
 
퍼온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