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근
- 2012-04-05 09: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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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위조는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의 문제이다.
조명철 전 원장의 학력 위조 논란에 대하여
탈북자 출신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4번을 받은 조명철 전 통일교육원장의 학력위조 논란이 탈북자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논란의 핵심은 북한의 준박사를 남한의 박사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남북한의 학위학제가 다른점은 있지만 굳이 정답을 말하자면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학제는 남한과 달리 대학을 졸업하면 현장기사(남한의 학사), 준박사(남한의 석사에 해당. 최근에는 북한에서 준박사를 학사로 부르고 있음), 박사(남한의 박사)로 되어 있다. 북한에서 준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은 연구원,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은 박사원생으로 부른다.
조 전원장의 주장대로라면 남한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학위학제를 잘 몰라서 준박사(석사)를 박사로 만들어 주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명철 전 원장이 귀순한 시기는 1994년으로 이미 전에 남한의 언론에서는 북한의 학위학제에 관한 기사들이 여러번 소개된 상황이었다.
[북한의 학위칭호는 남한과 약간달라 대학을 졸업하면 기사이고, 석사과정의 대학원을 졸업하면 준박사인 것으로 밝혀졌다...](1989년 5월 20일 경향신문)
[북한의 90년 학위학직 수여식이 17일 오전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북한의 학위는 박사, 준박사(석사)로, 학직은 부교수와 교수로 이 학위학직은 ‘조선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수여되고 있다. 금년에는 25명에게 박사학위를 1백63명에게 준박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교수 26명과 부교수 1백63명이 각각 임명됐다고 중앙방송은 밝혔다...] (1990년 7월 24일 동아일보)
1999년 8월 27일 동아일보는 중국인 신바오중(新寶忠)씨가 1986년~1988년 북한 김형직 사범대학 대학원에서 준박사과정을 마치고 1996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서울대는 신씨의 북한 준박사 학위를 석사로 인정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북한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이 특수정보도 아니고 공개된 정보인 북한의 학위학제를 몰라 박사와 석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만약에 당시에 그런 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십년 넘게 정부출연기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근무하고, 1급 고위 공무원인 통일교육원장직까지 경험한 조 전원장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에게 그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의 학력위조사건과 타블로 사건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물어볼 대목이다.
이번 총선에서 2만 3천여 명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탈북자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탈북자 국회의원은 2만 3천명 탈북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다가올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능력과 자질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짓과 허위도 서슴지 않는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정치꾼은 안 된다. 부모가 북한의 고위층이고 본인이 북한의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의 준박사(석사)가 남한의 박사로 되고 그를 발판으로 고위 공무원과 나아가 국회의원까지 된다면 많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고귀한 정신이 훼손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들에게 양심적인 노력의 대가보다 부모의 후광이 입신양명의 기반이 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엘리트 의식이 팽배한 집권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외면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 탈북자 사회에는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은 보잘 것 없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성공한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남한 사회에서 학력의 중요성을 본인도 알았기에 십수년 동안 박사 행세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학력 위조는 대한민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의 문제이다.
지난 4월 2일 논문 표절로 박사학위를 박탈당한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슈미트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가통합을 대표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분열의 상징이 됐다.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탈북자 사회의 통합과 나아가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 후보가 새겨들어야 할 ‘뒤늦은 양심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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