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어린 生命 '긴급 구조'에 동참을 호소한다
- 지일
- 2012-03-23 13: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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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먼저 한반도 남북 대치 심화, 동북아 안보 정세 유동화(流動化), 세계 핵(核) 확산 방지 질서 교란 사태를 불러온 북한 핵 개발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다국(多國) 대화가 재출발할 실마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9일 워싱턴과 평양이 동시 발표한 '베이징 합의'를 전후로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북 추가 교섭을 비롯, 한·미, 한·중, 북·중 대화가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작년 후반 떠오른 중국의 탈북 동포 강제 북송(北送) 저지 운동이 올 들어 탈북자에 대한 국내·국제 여론을 변화시키면서 탈북자 문제가 한·중 관계의 전면(前面)에 등장했고 이어 미국·유럽 정치권과 대중운동의 주요 관심사로 번져나갔다. 그간 5만명설(說)에서 30만명설까지 종잡기조차 힘들었던 중국 내 탈북자의 비참한 상황과 이들을 이런 극한 상황으로 내몰아 중국 땅에 내팽개치는 인간 이하의 북한 동포 생존 여건에 대한 관심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통계는 중국이 1998~2006년 사이 매년 탈북자를 많게는 8900명, 적게는 4800명 북한에 강제 송환한 사실을 보여준다. 강제 북송자보다 몇 배 많은 북한 동포가 탈출에 성공해 지금 중국과 그 주변을 떠돌고 있고, 그에 못지않은 숫자가 탈출 도중 체포됐을 것이며, 또 그 몇 십배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이 이 순간에도 북한 탈출을 꿈꾸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0년 남북 정상이 만나 두 체제 간 공존(共存)과 평화적 교류 확대를 선언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탈북 난민(難民) 대열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생활 여건 개선이 남북 정부 간 대화의 양(量)과 폭(幅)의 확대나 축소와 관계없이 관심의 변두리에 방치돼왔다는 모순(矛盾)된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북한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이 후순위(後順位) 중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는 것은 남쪽의 대북 지원이 기지개를 켤라치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핵과 미사일 실험, 천안함·연평도 공격 등 북한 권력이 주도한 긴장 사태가 이 흐름을 차단하는 일이 번번이 되풀이돼온 남북 대화의 역사(歷史)에 드러나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북한 주민의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고 고립과 폐쇄의 울타리를 허물어 한국과 세계의 대량 지원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20년 동안의 사태 전개가 보여주듯 핵을 포기할 의사를 내비쳐 외부 지원을 얻어내곤 곧바로 핵 개발의 원점(原點)으로 되돌아가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그 뒤편에서 핵 능력을 키워왔다. 이번 3월 재출발한 핵 협상 열차가 언제 어느 역에서 출발역으로 다시 회귀(回歸)해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핵 위기의 근본 해결이 반보(半步) 전진과 일보(一步) 후퇴 사이를 오가기를 거듭하는 동안 북한 주민의 '시민적 권리 회복'은 말할 것도 없고, 먹고 입고 마시고 병을 치료받을 '생물(生物)로서 최소 생존 여건'은 더 극한 상황으로 악화돼 갔다. 2011년 2월 강원도에서 귀순한 21세 북한 병사는 신장 154㎝에 체중 47㎏이었다. 북한 주민 가운데 '그래도 배를 덜 곯는다'는 병사의 신체 조건이 남쪽 초등학교 고학년생보다 못했다. 탈북자 교육기관 '하나원'의 통계에선 탈북한 19~29세 청년의 키와 체중이 같은 나이 대한민국 청년에 비해 키가 8.8㎝, 몸무게가 14.3㎏이나 작았다. 2011년 미국 민간 자선기구가 방문한 평북 철산군 한 병원 신생아 3명은 체중이 1.7~1.9㎏이었다. 남쪽 신생아 평균 체중은 3.2~3.4㎏이다. 2009년 국제 어린이 구호 재단 유니세프의 현지 영양 조사로 북한 5세 이하 어린이의 32%가 신장(身長) 발육 부진, 19%는 저(低)체중의 성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단 60년을 넘어 70년을 향해 치닫는 민족 고난의 세월이 '정치·경제·문화적 이질화(異質化)'에 이어 '생물학적 이질화'라는 기막힌 사태에 부딪힌 것이다. 영양 결핍으로 갖가지 질병에 노출된 북한 주민이 발병(發病) 후 실려가는 병원 상황 역시 참혹하다. 2007년 남쪽 의료진이 찾은 인민병원 환자들은 맥주병을 거꾸로 매단 용기에서 주사로 수액(輸液)을 공급받고 있었고, 반창고가 없어 머리를 묶는 밴드로 주삿바늘을 고정하고 있었다. 북한 의료기관에 수용된 많은 환자가 마약 성분 진통제를 치료약인 줄 알고 받아먹으며 순간의 통증을 견디고 있다. 북한 갓난아기와 젖먹이와 어린이들은 가정의 영양실조와 의료기관의 각종 세균 감염(感染)에 대한 무방비 상태 속에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북한 젖먹이 사망률은 남쪽의 8배, 5세 이하 유아(幼兒) 사망률은 남쪽의 10배에 달한다. 영·유아 사망 원인의 50%는 설사, 30%는 폐렴이라고 한다. 간단한 주사 한 방, 약 몇 알이면 붙들 수 있는 생명이 이렇게 스러지고 있다. 상당수 성인(成人) 역시 영양실조와 의료 체계 붕괴로 폐병·B형간염·성병·기생충 질환이 풍토병(風土病)처럼 뿌리를 내린 가운데 약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쓰러지고 있다. 노인성 질환에 허덕이는 노인네들은 의료 대상에서도 밀려나 버렸다. 몇 년 전 백내장·녹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실명자(失明者)의 개안(開眼) 수술을 해 주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네팔 의료진은 장사진을 친 환자 수백명을 수술하느라 며칠 밤을 새워야 했다. 북한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붙들듯 세계에서 의료 상태가 가장 열악한 편에 속하는 네팔의 의료진에게 매달렸다.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외국 민간단체 현장 조사와 국제기구 전문가를 통해 파악한 북한의 갓난아기·젖먹이·어린이·노인 등 사회적 신체적 약자(弱者)들의 상황은 재난(災難) 상태와 흡사하다. 이들을 죽음 앞에서 구출할 '긴급 구조(救助)'를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이 닥치고 있다. 죽음의 비탈을 미끄러져 가고 있는 북한의 어린 생명을 건져내는 일은 통일의 과업 이상으로 절박하고 시급하다. 늦어질수록 더 많은 우리의 피붙이 생령(生靈)이 죽음의 바다로 떠밀려가게 된다. 남북 관계가 핵무기와 미사일과 천암함과 연평도 공격 등으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상황에서 정부 간 대화 통로가 언제 다시 트일지는 기약하기조차 어렵다. 북 정권이 핵 개발과 주민 구호의 우선순위를 바꿀 리도 없다. 정부 간 대화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라도 민간이 나서 정부 몫을 대신할 필요가 급박해졌다. 우리 종교의 각 종단(宗團) 종파(宗派)는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는 손으로 북한 주민들을 도와왔다. 그 팔을 더 멀리 더 넓게 펼쳐 북한의 갓난아기·젖먹이·어린이를 끌어안아 주기를 요청한다. 제약회사들도 또 한 번 예전에 그랬듯 가슴을 활짝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국민은 누가 물길을 먼저 터주기만 하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네 자식·손자들과 어깨동무하며 민족의 내일을 함께 개척해갈 북의 가냘픈 새싹들이 이렇게 시들어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더 빨리 더 크게 움직이리라고 확신한다. 언론도 국민의 손길과 손길을 이어주며 이 흐름이 더 큰 흐름을 형성해 가도록 손발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우리 국민과 정부가 지혜를 모은다면 북쪽 생명을 살리려는 남쪽 동포의 정성이 군량미(軍糧米)로, 대포로, 총탄으로 바뀌어 돌아와 민족 전체를 더 큰 불행으로 내모는 사태를 피해갈 방법도 반드시 찾아지리라고 믿는다. 92년 전 오늘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남북 2000만 동포의 간절한 염원(念願) 덕분으로 새 목숨을 받았던 조선일보는 그때 그 간절했던 민족적 기대를 떠올리며 북한의 어린 생명을 구출하는 일에 국민적 동참을 호소하고자 한다./NKchosun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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