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부모님께 쌀밥 한 번 대접했으면…" 새터민의 '사모곡'
- 지일
- 2012-05-08 15:39:26
- 조회수 : 1,755
"부모님 생전에 흰 쌀밥에 좋아하시는 생선 반찬 곁들인 밥상 한 번 올리는 게 소원입니다."
하루 거리에 가족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바로 북의 고향을 두고 살기 위해 남으로 내려온 새터민들이다.
이들에겐 어버이날이 '제발 없었으면 좋을 날'이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울산에 정착한 새터민 김영미(가명·왼쪽) 씨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어버이날을 맞은 심경을 밝히고 있다. News1 변의현 기자 |
한국에 온지 1년이 조금 넘은 영미 씨는 울산 모 기업체 직원이다.
기자와 마주앉은 그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연신 당부했다.
본의 아니게 상처가 될까 망설이다 조심스레 어버이날을 맞은 심경을 물었다.
"여기 아이들이 부모님께 선물할 카네이션을 손에 들고 다니더군요.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북에 두고 온 부모님 생각이 나서...(잠시 말끝을 흐린 뒤) 북한에는 특별히 어버이날이 없어요. 김일성 김정일 생일만 있죠. 어버이날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무치는 그리움에 참 가슴이 아프네요."
북한 양강도 출신인 영미 씨는 2010년 8월 목숨 걸고 압록강을 건넜다.
한 살 위인 남편 이상민(가명·37) 씨와 당시 6살, 4살의 딸아이 두 명을 데리고 탈북을 감행한 것.
남편이 북한 사람들의 탈북을 돕다 발각돼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버려야만 했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심정으로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잡히면 죽으려고 독약까지 준비했어요. 다행히 국경수비대에 잡히지 않아서 얼마나 안도했는 지 모릅니다. 저희야 죽어도 괜찮지만 세상에 막 태어난 어린 아이들에게 까지 독약을 먹일 순 없잖아요."
김 씨 일가족은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10년 12월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6개월 동안 국정원에서 조사받고, 하나원에서 탈북자 사회적응 훈련을 받은 뒤 울산에 정착했다. 그의 남편도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많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아이들 공부시키며 살 수 있으니 나름대로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비참했단다.
"일을 해도 월급은 고사하고 배급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5~6달 밀려서 월급을 받아도 이것저것 떼고 나니깐 옥수수 살 돈도 되지 않았습니다. 남한의 맛있는 음식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납니다. 요즘 같아선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도 죄스러워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영미 씨는 "북에 두고 온 부모님께 흰 쌀밥에 좋아하시는 생선반찬 한 번 해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거듭 말했다.
"부모님께서 밥을 먹는지, 굶는지, 북한엔 워낙 먹을게 없으니…어버이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미어집니다."
울산에 거주하는 230여 명의 새터민들은 가정의 달인 5월,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더욱 사무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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