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올림픽과 북한
  • 정진화
  • 2012-09-09 14: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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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런던 올림픽이 오늘 막을 내린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북한대표단의 출전이 아니었던가 싶다.

사상 처음으로 단1명의 출전선수를 앞세우고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에게 많은 사람들이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많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애인”이라는 말조차 없는 북한이고 보면 정말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신기자들이 북한에서는 장애인들이 도시 밖에서 산다는 말이 사실인가고 묻자 팀의 닥터 김성철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고 한다.

하지만 김성철이 말이 사실이 아님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평양에서 장애인들이 살수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거의 법처럼 엄격히 지켜지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의 유일한 수영선수 림주성이 외교관인 아버지를 두었다고 하는데 역시 특수한 경우라서 “법”의 규제를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이 거론되지 않고 있는 북한에서 장애인들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 “불구자” 혹은 “병신”이라 부르고 차별을 받는다.

학교를 다니던 1980년 9월 우리는 함경남도 영광군 장흥리(옛 오로군)에 농촌지원을 나간 적이 있다.

동네 앞으로 흐르는 냇가가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라면 아줌마들이 나와 빨래도 하고 아이들이 멱도 감는 그런 곳이었다.

어찌 보면 입버릇처럼 “친환경“을 고집하는 한국에 비하면 북한은 자연그대로가 친환경이요, 오염이라는 말을 모르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라고 감히 말한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당부가 있었다.

동네 앞 냇가에서 빨래는 물론 세수도 하지 말라는 것, 아무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동네에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장애인시설이 있었다

일을 하다가 잠시 언덕에서 그 시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따금 도시에서는 한 번도 볼 수 각이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특수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유만으로 결혼도 할 수 없었고 바깥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높은 담벽과 굳게 닫긴 철문은 언제까지나 열릴 줄을 몰랐고 그들은 거기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고 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물이 바로 동네 앞 냇가로 흘러든다고 해서 “기피”대상이 된 것이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결혼을 할 수 없고 “이상”하게 생겼다고 후대를 남길 수 없고 그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북한에 있을 때 그 모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한 번도 죄책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이 평생토록 당하는 고통이나 지고 가야 할 마음속 아픔 같은 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도 없었다.

한국에 와서 “복지”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인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자유“를 귀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모든 것을 저들의 소유로 만들어놓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낄 때 일반 사람들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왔다.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을 못했고 싫어도 싫다고 표현을 못했다.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말조차 없었다.

국제사회를 위식한 북한의 쇼라고 할지라도 일단 장애인올림픽출전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3대 세습의 왕자 김정은이 “독재자”의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미지수지만 21세기에도 저들의 통치방식대로 북한을 이끌어가려 한다면 더 깊은 미궁 속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북한주민들도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임을 잊지 말고 9월 “북한인권의 달”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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