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선
- 2013-01-15 22: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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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와 (재)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3)
1994년 러시아에서 먼저 자유용사들의 남한 이주가 열렸다. 수십명의 러시아 체류 북한주민들이 남한으로 이주하자 북한은 특단의 조치로 블라지보스토크 대한민국 영사관 최영사를 아파트 현관에서 도끼로 학살했다. 깜짝 놀란 러시아 정부와 겁장이 한국정부는 러시아 자유용사들의 이주를 차단했다.
러시아 체류 북한주민들은 대부분 인민군을 제대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특수신분으로 차출되어 러시아에 근로자로 나온 사람들로써 소련이 붕괴하고 남한과 국교를 수립하는 국제적 역동성을 그대로 체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환멸과 자유대한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도 러시아 자유용사들과의 접촉을 다방면적으로 시도 했으나 외국출입을 원천적으로 닫겨 있었다. 2000년이 되어서 러시아 지역을 순찰했는데 양질의 자유용사들이 차고 넘쳤으나 러시아 정부와 북한정부의 치밀한 감시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중국체류 북한주민들의 이주는 막을 수 없었다. 1996년이 되자 중국체류 북한주민들 입국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자유대한으로 망명해 왔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으나 재앙은 덤으로 온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파산상태에 빠지고 정권은 김대중에게로 넘어 갔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고난의 행군>에 진입하고 남한은 1997년 외환위기에 빠져 허덕이고, 1990년대의 중국과 러시아는 이념갈등과 경제개혁으로 남을 돌봐 줄 처지가 못 되었다.
하나님도 중국 동북지역에 넘쳐나는 북한주민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몇몇 선교단체들이 활동을 했으나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천신만고 끝에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주민들을 끌어않으려고만 했지 사지에 몰린 중국의 북한주민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임영선이가 <북한주민 1명당 자동차 1대씩 중국에 주고라도 그들을 전부 남한으로 이주시켜야 합니다>라고 주장하고 떠들자 <미친놈 지랄하네>하며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고 가장 악날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은 남한으로 들어 온 북한주민‘탈북자’들이었다.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애국적 지인들과 언론들이 임영선의 주장을 찬성하며 사회여론을 조성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이북5도민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만찬에서 공공연히 <중국의 북한주민들을 전부 남한으로 데려 올수는 없고 정보가치가 있는 사람들만 데려와야 한다>고 역설 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수만 명의 조선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조선정부는 그들을 돈을 주고 전부 데려왔다. 그녀들을 가르켜 ‘환향녀’라고 했고 훗날 ‘화냥년’이라고 매도당하자 조선정부는 법으로 통제했다.
분단 독일은 365만명의 동독주민을 서독으로 이주시켰을 뿐아니라 3만6천여명의 동독정치범들을 3만~5만 달러의 돈을 주고 전부 구매함으로써 동독정부의 인권유린을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막았다.
암둔한 김영삼과 그 추종자들은 국가보호와 보존의 힘은 국민의 존엄과 생명보호로부터 시작된다는 철학과 이념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을 때 김영삼 정부가 투철한 민족, 애국심을 국민들에게 발동시켰다면 IMF경제위기도 오지 않고 400만 명의 북한주민들의 아사도 막고 남북간의 이해와 협력이 증진되는 것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들도 감명을 받고 적극 협력했을지 모른다.
우리민족 남과 북은 1990년 그렇게 하늘의 천벌을 받았다.
통일방송 대표 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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