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을 알면 국정원 해체 요구 못해
  • 도명학
  • 2013-09-02 12:04:01
  • 조회수 : 1,576

북한을 알면 국정원 해체 요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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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학)

 


탈북자인 필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활한지 6, 그동안 국내 정치문제에 관해선 침묵하려 했다. 어떤 강요도 없었지만 그랬다. 남한에 얼마나 살았다고, 독재정치밖에 경험하지 못한 주제에 민주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끼어드는가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았다. 탈북자들 사이에 국내 정치 얘기가 나와도 될수록 말을 아꼈다. “탈북자는 북한문제가 아니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칫 정치적 이용물이 될 소지가 있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었다.

 


할 말이 없거나 보는 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눈을 치켜뜨고 시국을 직시하며,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기회를 봐서든 내뱉고야 마는 성격 때문에 국가보위부에 끌려갔다 겨우 구사일생 살아난 필자다.

 


그런데 요즘 10년쯤 뒤에나 국내정치 얘기를 입에 올릴지 하던 생각이 흔들리게 됐다. 대선개입 댓글 의혹과 국정조사, NLL논란과 대화록 실종, 대선결과무효와 국정원해체 요구 촛불시위, 그에 맞선 맞불 집회와 종북 척결 목소리, 등으로 이슈 자체가 북한문제와 직결되고 있다. 탈북자에게도 귀가 있고 눈이 있고 지각이 있다.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권리가 있다. 그래서 말해야겠다.

 


지금 떠들썩한 문제들이 국내 문제만은 아니다. 국정원은 북한의 사이버 선전과 그에 편승한 국내 종북세력에 대한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그것이 대북심리전 차원이면 탈북자가 논란에 끼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것이 순수 국내문제가 아님이 분명한 이상, 자나 깨나 북한에서 독재정치가 사라지길 고대하는 탈북자에게 있어 대북심리전 위축은 슬픈 일이다.

 


글쎄, 댓글 몇 개에 특정후보를 거론한 대목이 있다니 일단 의심은 받았겠다. 하지만 댓글 단 직원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실수일수도 있는데, 마치 그 뒤에 큼직한 호랑이라도 숨어 있는 듯 야단을 쳤다. 선거법 위반이 명백하다면 댓글을 단 당사자가 책임 지면 될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선결과에 불만인 사람들이 얼씨구 마침 잘 걸렸네 하고 문제를 키웠다. 국정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로 여야가 주구장창 다투기에 정말로 큼직한 건 하나 터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새로 밝혀진 것이 무엇인지 기억도 안 난다. 국정조사에 불려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예상을 깨고 당돌한 모습을 보인 것이 새롭다(?) 할 정도, 결국 입씨름으로 일관된 국정조사가 되고 말았다. 뒤에 숨은 큼직한 호랑이 같은 것은 없었다.

 


댓글 몇 개를 놓고 국정원이 대선에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어색했다. 무작정 우겨대며 상황이 그렇게 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문제가 있는 댓글이 온라인상에 온통 도배됐어야 한다. 댓글 몇 개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다음 대선엔 필자도 출마해 볼까. 대통령 되기 참 쉬운 나라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눈엣 가시 같은 국정원을 해체하고 그 참에 국가보안법도 없앴으면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촛불을 들고 있다. 국정원을 해체하고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것은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대한민국이 무장해제 당하는 격이다. 국정원과 국가보안법 때문에 제일 불편한 것은 간첩이나 종북세력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 중에 국정원과 국가보안법 때문에 보통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람이 솔직히 몇 명일지 궁금하다. 지금이 중앙정보부 시대인가. 촛불을 든 이유가 현 대통령이 싫고 여당이 싫어서일 것이다. 정부에 삿대질 잘해야 똑똑해 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정부가 미워도 북한이 일일천추로 바라는 국정원 해체를 대한민국 국민이 요구하다니,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행동이다. 요즘 북한이 신나게 떠든다. 온갖 매체를 동원해 촛불시위를 부추기며 국정원 해체 요구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백주에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까지 죽인 자들이 남한 국민의 민주주의 권리와 인권을 생각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언제 적화통일 야망을 포기한 적이 있는가? 최근엔 전시상태를 선포할 시기를 규정한 전시사업 세칙도 개정했다. 개정된 조항에는 남조선 애국 역량의 지원 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때전시선포가 가능하다고 적시됐다. 남한 내 종북세력이 지원을 요청하면 무력으로 개입하겠다는 공공연한 선포다. 요즘 드러난 군사반란 수준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면 정신이 아찔하다. 한국사회가 북한 호전집단과 결탁한(?) 종북세력의 간계로 정쟁에 휘말리다 혼란에 빠지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만에 하나 종북세력이 시민정부”, “거국내각등을 참칭하고 북한에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 한미동맹도 무용지물일 수 있다. 북한이 종북세력과 공동으로 민족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 미국 입장이 난처해진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다. 남북한 적화세력이 통일 후 핵을 폐기하여 미국의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하면 과연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우리 사회가 휴전상태에 살고 있는 사실을 망각하고 제멋대로 가는 순간 어떤 비극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 상황을 미리 막으려면 국정원을 해체하거나 기능을 축소시킬 것이 아니라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래서 국내파트를 없앤다는 말도 불안하다. 내란음모사건 관계자들이 대한민국 국적과 공직을 가진 사람들이지 북한에서 오지 않았다.

 


밖에 칼을 숨긴 강도가 있는데 조금 답답하다고 담을 허물 수는 없다. 국정원을 편들자고 꺼낸 얘기가 아니다. 내부의 적과 북한이 노리는 바를 알기 때문이다.

 


(국제펜클럽 망명북한펜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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