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 조성구
- 2013-07-03 06:28:59
- 조회수 : 1,597
아름다운 삶
따뜻한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따뜻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차가움으로 변합니다.
무심코 한마디 불쑥 던지는
말속에 날이 선 칼이될 수도 있고,
독이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게 그 칼과 독이
부메랑 되어 다시 돌아 올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차거우면 몸도 차거워지고
마음이 따뜻 해지면 온몸에 열기가 돌지요.
머리로 다가가기 보다는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좋은 생각을 담은 말은
평화와 사랑의 메아리가 되지만
나쁜 마음이 실린 언어는
독이 되여 상처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이
차가 울지 언정 맞잡으면 따스해 지는건
사랑이 전해져 그렇지 안을련지요.
긍정적이고 온유한 마음으로
작은 나의 따뜻한 배려가
가족과 이웃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되지요.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 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습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하지요.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합니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지요.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답니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내요.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 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6월의 첯번째 수요일
오늘도 아픈 가시를 안고 힘차게 화이팅!
사랑합니다
-성구-
따뜻한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따뜻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차가움으로 변합니다.
무심코 한마디 불쑥 던지는
말속에 날이 선 칼이될 수도 있고,
독이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게 그 칼과 독이
부메랑 되어 다시 돌아 올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차거우면 몸도 차거워지고
마음이 따뜻 해지면 온몸에 열기가 돌지요.
머리로 다가가기 보다는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좋은 생각을 담은 말은
평화와 사랑의 메아리가 되지만
나쁜 마음이 실린 언어는
독이 되여 상처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이
차가 울지 언정 맞잡으면 따스해 지는건
사랑이 전해져 그렇지 안을련지요.
긍정적이고 온유한 마음으로
작은 나의 따뜻한 배려가
가족과 이웃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되지요.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 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습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하지요.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합니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지요.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답니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내요.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 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6월의 첯번째 수요일
오늘도 아픈 가시를 안고 힘차게 화이팅!
사랑합니다
-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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