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산천
- 2013-10-31 13:20:54
- 조회수 : 1,876
온 하루 찌푸등 하던 날씨가 저녁때에야 서산 마루에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국수 한 키로 벌이는 했다.
‘햇님이 엄마 저기 오는게 저네 시엄마가 아니오’
옆 매탁(공업품) 순이 엄마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바람에 잠시나마 까닥까닥 졸고 있던 나는 ‘야! 누구 온다고’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백발이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인사 불성이 된 우리 시어머니가 내 앞으로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가슴이 섬찍했다.
나는 마주 달려갔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옵니까?’
시어머니는 나를 보자 연 몇일째 내린 비 때문에 질적질적한 땅 바닥에 풍덩 주저앉는다.
‘어머니 일어나시오. 여기는 내 매탁이 아닌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시어머니는 북두 갈구리같은 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 일어서려고 부들부들 떨며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 일어서지는 못하고 빤히 나를 올려다 본다.
쭈글쭈글하고 새까만 주름투성이 얼굴에 두 눈이 푹 꺼져 들어간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달려 오시면서 흘린 눈물이 밭고랑이에는 뿌연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말도 못하고 제 가슴만 탕, 탕 치더니 그제서야 막혔던 숨을 돌렸는지 ‘혜숙아(우리 시어미는 항상 내 이름을 부른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햇님이 큰 아버지가 오늘 새벽에 죽었다는구나’
‘예’
순간 나는 뻥해지고 말았다.
막내 아들이 폐 농양으로 이 세상을 떠난지 8일밖에 안되었는데 맏아들이 또 죽다니 햇님이 큰 아버지는 폐병으로 7년을 고생하고 있다.
10년 군사 복무를 하고 XX탄광에 무리 배치를 받고 일하면서 폐병을 앓았는데 탄광에서 치료는 고사하고 폐인이 다 된 아들을 어머니한테 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시어머니는 그 아들을 살리겠다고 무슨 일인들 안해 보았겠는가?
그래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군에서 50리 떨어진 골안에 과부하고 살림을 시켰다.
그 여자 역시 야무지고 남편 공대를 잘해 가면서 소토지로 근근히 살았는데 화폐 교환 때 강냉이가 눅을 때 사려고 모아 두었던 돈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내 매탁 앞은 순식간에 우리 어머니를 둘러쌌다.
아무리 인심이 박하다 한들 한달에 두 아들을 잃은 그 참상을 어떻게 외면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순희 엄마가 ‘햇님이 엄마 언제 이러고 있을새 있소. 빨리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야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어머니를 부추여 매탁 앞으로 왔다.
지금 우리 시집에서는 내가 구세주다.
‘어머니 햇님이 아버지 한테는 알렸습니까?’
‘언제 알릴새 있니 기별(소식)을 받고 네 한테로 먼저 달려왔지’
나는 부랴부랴 매탁을 정리하는데 ‘햇님이 엄마 장례를 하자면 준비도 해야겠는데 햇님이 아버지 직장에는 내가 가서 알릴게 빨리 준비를 해서 가오.’
앞 매탁(화장품) 정수 엄마가 나를 다그쳤다.
‘그래 정수 엄마 정말 고맙소. 그러지 않아도 근심하고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정말 고맙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정수 엄마는 측은한 눈으로 내 손을 잡으며 ‘나도 몇 년 전에 딸을 잃어버려서 그 심정은 아오. 고맙긴 무슨 어이구 자식을 죽여 본 사람들이야 그 심정을 알지’
하면서 자기 식구 저녁 때거리로 사놓았던 국수 한 키로를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눈을 꿉쩍꿉쩍 하고는 씽하고 달려갔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코마루가 찡했다.
매탁 문을 잠그고 열쇠를 시장 관리원에게 주고 돌아오니 서로 도와주며 친한 장마당 아주머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 한병을 가지고 온 향이 엄마, 국수 한 키로를 가지고 온 윤경이 엄마, 제상에 올려 놓을 사과 한 개, 명태 한 마리, 사탕 아홉알, 과자 아홉 개를 비닐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온 성광이 엄마 등 내가 너무도 고마워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오, 야 나는 햇님이 엄마가 간 줄 알고 부리나케 뛰어왔다니까’
매탁에서 제일 나이 많은(68세) 강호 아매가 진지 밥을 해놓으라고 하면서 입쌀 500g을 가지고 왔다.
‘햇님이 아매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숨둥 한달에 두 아들을 잃어버렸으니 옛날에 남편이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햇님이 아매 그 심정 우리 다 아꾸마. 그러나 어찌겠슴둥 같이 갈 수 없는 길이 이 사자 길이 아니겠슴둥’
하면서 위로를 해준다.
나는 방조 받은 것에 부족한 것을 더 준비해 가지고 집에 왔다.
50리 길을 가야 하기에 서둘러 떠나야 했다.
연락을 받은 햇님이 아버지도 왔다.
내일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햇님이를 위생 반장네 집에 맡겼다.
우리 집은 인민반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때에 햇님이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내 근심은 하지 말고 큰 아버지한테 빨리 가시오. 큰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곱아했는데 어머니 이제는 큰아버지를 영 못봅니까?’
하면서 엉엉 우는 바람에 그 주변에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리가 떠나려고 하는데 남편 동무가 찾아왔다.
‘야, 광식아 엄마를 모시고 50리 길을 어떻게 걸어가겠니 내 우리 동무한테서 또루레(레루 위에 네바퀴가 있는 썰매식으로 된 것인데 막대기로 짚으면서 가는 수동차)를 빌렸다. 한번 타는데 2,000원인데 너네 말을 듣더니 그냥 빌려주더라. 그러니 근심하지 말고 빨리 가라.’
우리가 또루레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희미한 석유 불빛이 보이자 어머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광민아! 광민아!’
소리 소리 치면서 달음박질을 하는데 걸음이 잘 되지 않아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집에 도착하니 막대기를 휘둘러도 아무것도 걸릴게 없는 휑뎅그레한 방구석에 시체가 누워 있었다.
‘광민아! 이 애미를 두고 왜 가느냐. 네 동생도 43살에 내 곁을 떠났는데 그래 너는 45살밖에 살지 못하고 갔느냐? 같이 죽자 같이 죽자’
하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어머니 제가 남편 공대를 더 잘 했더라면 햇님이 큰아버지가 이렇게 사망하지 않았겠는데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햇님이 큰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핏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어머니 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 것 같았다.
그 이튿날 장례를 하였다.
원래는 3일장인데 고난의 행군 때부터 3일장이 다 없어지고 죽으면 그 다음날에 내다 묻는다.
지금 3일장을 하는 집은 없다.
어머니는 어제부터 물 한방울 마시지 않았다.
나는 집에 와서 미음이라도 대접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또루레에서 내리자 어머니는 나를 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아니 어머니 그 몸으로 어디를 가려고 그럽니까? 빨리 집에 가기시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씽씽 걸어서 간다.
나와 햇님이 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멀리서 따라갔다.
어머니는 곧장 군병원 결핵과에 가서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과장 선생, 우리 아들이 죽었소.’
두 아들이 결핵으로 앓고 있었으며, 8일전에 막내 아들이 사망 진단서를 떼갔으니 모를리 없다.
‘아, 아메구만 전번에 사망 진단서를 떼갔는데 무슨 일입니까? 어째왔습니까?’
‘어째라고 18날일 날에 막내 아들이 폐농양으로 죽었소. 페니실린 한 대도 못맞고 죽었소. 그런데 어제 우리 큰 아들이 폐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었소. 병원에 오면 약이 없으니 장마당에 가서 사서 먹으라고 하면서 이소니찌드 한 알도 안 줬소. 내 우리 두 아들이 주사 한 대, 약 한알이라 먹고 맞고 죽었다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겠소.’
‘야 이 아매봐라 어디와서 행패질을 합니까? 병원에 약이 없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 병원에 약이 없어 그러면서 무상 치료를 하는 나라라고 그래 이게 무상 치료인가 그래 이게 무상 치료인가 약이 없는 병원이 병원인가’
‘이 아매 입이 째졌다고 무슨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합니까? 말을 조심하시오.’
‘그래 나도 78세까지 살면서 50년을 우리 당을 받들어 온 로당원이다. 병원에 약이 없는데 장마당에는 왜 결핵약들이 한 알에 150원씩, 페니실린 한통에 600원, 700원씩 파는가? 그래 이 약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이미 어머니는 이성을 초월하고 있었다.
‘과장도 자식을 가진 아버지겠지, 한 달에 두 아들을 죽여봤소. 죽여봤는가 말이오. 오늘 나를 설복하려고도 하지 마오. 보위부에 잡아가겠으면 잡아가오.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강냉이 밥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하고 죽은 두 아들이 지금 내 이 가슴에 묻혀있단 말이오. 이 가슴에’
순식간에 결핵과 2층은 수많은 사람들로 꽉찼다.
‘어이구 원통하구나 하늘도 무심하구나 왜정때도 이렇게는 안했는데 이놈의 세상에 폭탄이라도 꽉 터져라.터져.’
어머니가 이렇게 넉두리를 하는데 인심들은 젖은 눈빛이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무상 치료제는 옛말이요. 옛말, 말로는 무상 치료라고 하면서 접수에서부터 돈을 다 받는데 이것이 무상 치료요, 허울 좋은 간판이지 그러기에 과장도 의사도 간호원도 제 체면을 세우겠다고 해도 누가 바로 보오. 명색이 과장이지 하기야 과장은 과시하면서 떼먹고, 의사는 의사라고 떼먹고, 간호사는 가만가만 떼먹고’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이 정답같은 말에 과장은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처럼 일어서지도 못하고 두 눈만 희둥그레 가지고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