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은 영웅인가.
  • 하이네
  • 2013-10-23 20: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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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10일은 황장엽이 세상을 떠난 날이면서도 북한정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조선로동당 창건 일이기도 하다. 그가 작고한 날을 맞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황장엽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짧게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본인은 이 글을 쓰기 전에 황장엽, 그에 대해 존칭어를 사용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 드린다. 이유는 아래에 서술되어 있다. 황장엽이 돌아간지 3년이 되어 온다. 북한 김씨왕조의 노복으로 살면서 그들에게 충성한 댓가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황장엽, 그는 누구일까.

그의 불후한 인생 말년을 목격하면서 고향을 북한에 둔 같은 탈북민으로서 찹찹한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솔찍히 황장엽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것은 그가 김일성의 반 국민적이며 야만적인 독재정권을 세우고 체제유지를 하는데 있어 1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황장엽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1960년도 초반부터 북한 방위산업분야의 중요한 부문을 책임진 일꾼이었다. 1960년대 초반기부터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강제 실시 됐던 식량배급제를 아버님은 ‘짐승들을 사육하는 방식’이라며 항의 했었다.

식량배급제는 김일성이 북한 주민들을 ‘코꿴 송아지’로 만들어 놓게 하려는 정책의 멘토가 되었던 황장엽이 만들어 낸 아이디어였다. 그 일로 인해 아버님은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다. 나의 가족은 아버님을 따라 고향인 평양에서 함경북도 회령시 성동리라는 산간오지로 강제 추방되었다. 아버님은 25년간을 탄광 지하막장에서 두더지 같은 노예생활을 강요당하시다 한 만은 세상을 떠났다. 나 역시 35년간을 북한에서 역적의 자식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황장엽 자신도 말했듯이 김일성 실시한 야만적인 독재정책들은 모두 그가 내놓은 이론들에 의해 세워졌고 집행되었다고 했다. 냉혹히 평가한다면 황장엽은 인류를 헤아릴 수 없는 전쟁참화에 몰아넣었던 살인광 나치 희틀러 사상의 선전자였던 선전상 괴벨스와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이 철저히 숭배했고 미친듯이 복종했던 김씨왕조를 배신했을까? 나는 황장엽이 살아 있을 때 가까이에서 그의 이야기를 여러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김정일은 아비 김일성처럼 자신을 잘 대해주지 않았다.”라고 한 말은 황장엽이 김정일에 대해 감정적인 심경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그는 한국에 망명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정권이 이대로 간다면 5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는 생각을 북한에 있을 때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 사후 북한이 사회 혼란과 경제 파탄, 식량부족으로 말그대로 아비규환 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잘 아는 사실이다. 북한 전역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시체가 널린 때었으니 황장엽이 그렇게 생각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황장엽은 나름대로 북한실상을 정리해 보았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독재정권에 원한을 품었던 주민들과 구테타 세력에 의해 김씨왕조는 물론 그 졸개들과 가족들은 남김없이 처형될 것이라는 것을 황장엽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김일성, 김정일의 앞잡이가 되어 북한 주민들을 노예 취급하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였던 자신의 운명은 ‘불 보듯 뻔 한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북한정권을 장악 할 정치세력은 분명히 남한과 미국 등과 통일국가에 대한 협상, 모색 할 것이었다.

황장엽은 김일성의 독재정권을 '채바퀴 굴러가 듯’ 만들어 놓았던 명석한 두뇌를 굴려 자신의 생존과 앞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황장엽이 망명한 시기의 나이는 74세이다. 생의 말년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 가족들을 처참히 죽이면서까지 무엇 때문에 무모한 바줄타기를 시도 했을까? 황장엽은 한국으로 망명만이 살 길이며 5년 안으로 북한정권이 무너지면 자신은 개선장군으로 북한에 입성 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황장엽은 제2의 이승만을 꿈꾸었다. 그는 설사 가족이 잡혀가 있더라도 북한이 붕괴되면 가족, 친척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했던 그가 남한에서 바깥세상 조차 구경 변변히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비록 황장엽이 독재자에 대한 과열 충성으로 인해 저를 비롯한 북한의 수천만 동포들이 노예취급을 당하며 살았어도 북한에 고향을 둔 같은 사람으로서 망자의 삶을 생각하며 불후한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회고를 다시 해본다. 탈북민들과 북한주민들은 황장엽을 어떻게 생각고 있을까? 황장엽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저의 이 글을 보고 죽일 놈이라고 욕 할지 모르겠다.

황장엽과 친분이 가까웠던 몇 사람들에게는 그가 영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로 인해 대를 이어가며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당한 많은 탈북민들과 북한 2천만동포들은 아마도 그에 대한 과찬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황장엽이 살붙이 하나 없는 타향에 묻히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연을 개인적으로 안쓰럽게 생각한다. 더욱이 황장엽의 망명으로 인해 처형된 무고한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깊이 애도한다.

그는 나 처럼 북한 정권에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파리잡듯 처형했던 김일성, 김정일도 황장엽에게 만은 인간이 베풀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권력과, 부귀와 명예를 다 주었다. 그러나 황장엽은 그들을 배신했다. 무엇때문이었을까. 나는 황장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황장엽은 영웅인가. 배신자인가, 기회주의자인가.’ 하는 물음에 각자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리라 본다. 세기의 독재자를 섬기며 ‘희노애락’을 즐겼던 황장엽... 그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풍운아임이 분명하다.

황장엽의 운명은 한 인간의 소설 같은 비극적인 삶을 옮긴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이는 남북 분단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비극적인 스토리로 우리 민족이 겪어야 만 하는 슬픈 이야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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