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한국계 미군의 김영옥 대령 기고문
  • 관리자
  • 2010-06-15 12: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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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다시 '김영옥 대령'을 생각하며 [LA중앙일보] 임용균. 미육군 은퇴 기사입력: 07.13.08 18:25 중앙일보에 189회로 끝을 낸 영웅 김영옥 대령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회도 빠짐없이 오려서 수집했다. LA 일본 커뮤니티에 있는 2차대전 참전기념비에 '김영옥 대령'이 동판에 새겨져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김 대령의 아버님 김순권은 이승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과 함께 독립운동 하시다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8.15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아쉽다. 요즘 한국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유행가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일본의 36년동안 통치로 잃었던 우리의 역사적 비극이 김영옥 대령의 삶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영옥 대령은 아버지의 나라란 이유 하나로 번창해가고 있는 사업을 팽개치고 다시 군복을 입고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후방 보직을 제껴놓고 최전방에 나서 전투중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일본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자원해서 최전방 대대장으로 혁혁한 전과를 거두게 된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족적은 미국과 한국 전쟁사 그리고 일본 2차대전 전쟁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최전방으로 이동중 부산역에서 어린이들에게 '전투식량 시레이숀'을 던져주고 다른 동료 장교들에게 기차 안에서 곤욕을 치르는 대목이 내 마음을 격하게 했다. 그때 내가 국민학교 5학년으로 부산역에 모였던 어린이들 나이였으니까 더 그랬는지 모른다. 말로만 듣던 아버지의 나라에 처음 와서 어린이들이 손을 내밀며 무얼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넘기지 못했고 대대장 시절 전쟁 중에 눈보라속의 고아들을 챙긴 김영옥은 물보다 피가 짙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인종차별이 심한 시절 군인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경을 일본사람들과 같이 극복한 것이 일본 이민사회에 인정받아 나라를 초월해서 2차대전 참전 위원장으로 김영옥 대령 이름이 영원히 동판에 올려졌다. 1972년 대령 예편 후 2005년 12월까지 평생을 사회봉사 특히 우리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서 봉사하다가 서거했다. 한국인들은 영웅을 만들고 존경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봉사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데는 게을리 해왔다고 생각된다. 영웅이 없는 사회는 나침반이 없는 사회다. 본받을 인물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고 미래가 있는 사회다. 우리 한인사회에도 훌륭한 분들이 계셨지만 이민사회에 뚜렷한 영웅으로 기려지는 인물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옥 대령과 같은 분이 우리 이민사회에 큰 모델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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