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면 떠오르는 생각.
  • 관리자
  • 2010-07-13 10: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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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도 안 된 ‘누나’와 다섯 살 이나 되었을 ‘형님’은 뽑아온 강냉이 이삭을 돌로 짓뭉개 거기에 소금을 발라 돌도 안 된 동생에게 먹이고 있었다. 알도 안 생긴 강냉이 이삭을. 그것도 낟알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던 1998년 봄 필자는 아내와 함께 10리 도 넘는 산기슭에 힘겹게 뙈기밭을 일구고 강냉이 농사를 지었다.

늙은 어머니까지, 온 집안 식구가 동원해서 힘겹게 뙈기밭을 가꾸었고 7월이 되자 손가락 같은 이삭들이 내밀었는데.


어느 날 산기슭의 뙈기밭에 갔던 마누라는 화가 나서 돌아왔다. 그의 말인즉 어떤 놈이 금방 내밀기 시작한 강냉이 이삭들을 모두 뽑아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에 필자도 화가 나서 산기슭의 뙈기밭에 가보았는데.


거의 300평이 되는 강냉이 밭은 금방 내민 이삭들을 아내의 말처럼 누군가 모두 뽑아버린 상태였다. 화가 난 필자는 주변 산기슭의 오두막, “꽃제비들의 집”에 가보았는데. 필자가 짐작했던 것처럼 알도 생기지 않은 강냉이 이삭들을 뽑아온 것은 “꽃제비”들 이었다.


허나 필자는 “꽃제비들의 집”(오두막)을 들여다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곳에는 돌이 갓 지난 아이도 있었다. 부모를 잃은 꽃제비 형제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은 것이었다. 열 살도 안 된 ‘누나’와 다섯 살 이나 되었을 ‘형님’은 뽑아온 강냉이 이삭을 돌로 짓뭉개 거기에 소금을 발라 돌도 안 된 동생에게 먹이고 있었다. 알도 안 생긴 강냉이 이삭을. 그것도 낟알이라고.


다음 날 필자는 그 애들에게 밀가루 한 사발을 가져다주었다. 더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니 당연히 더 주어야 했으나 필자의 살림도 몹시 어려웠다. 밀가루 사발을 받아든 그 애들은 필자에게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지금도 7월이 되면 그 애들 생각이 난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지. 살아있으면 그 애들도 이제는 스무 살로 접어드는 나이인데.

한 달 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 북한에서 아이들이 땅에 심은 종자도 파먹는다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그때도 필자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 애들의 모습이었다.


 

 탈북자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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