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와 어머니 생각 (1)
  • 철죽꽃
  • 2010-07-29 15: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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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치고 운동도 할 겸 동네 아파트 단지 공원에 갔습니다. 연한 미색 치마에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반뜻하게 받쳐 입은 노인 한분이 나무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 그의 앞으로 갔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는 반가운 눈웃음을 지으며 앉으라고 저에게 자리를 권했습니다. 워낙 푸접이 좋은 저는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었는가 물었습니다.

 

83세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고향에서 저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하늘나라로 간 저희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는 고향이 함남도 단천이라고 하면서 저의 고향이 어딘지, 식솔은 다 함께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두 딸과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이곳 남한에 온지 7년이 됐다고 답했습니다. 할머니도 2005년도에 오셨는데, 두 딸과 손자 손녀도 같이 왔고 바로 옆의 아파트에서 딸, 사위, 손자, 손녀와 같이 살고 있으며 사돈도 함께 살고 있다고 자랑을 하시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시냐고 묻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저에게 할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은 중국을 떠나 이곳 남한으로 오기 위해 중국에 있는 어느 교회에 들어갔다가 신고 돼 강제 북송됐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북한에서 군 복무도 했고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도 잘 불렀다고 합니다.

 

2000년도에 잡혀 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여부를 모르고 있다고 하면서 밤이 되면 자꾸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에 아는 사람을 통해 아들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는데, 15년 이상의 징역을 받고 수용소에 가서 이제 7년이 되면 나온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7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눈에 손수건을 연신 가져갔습니다.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이것이 다 김정일 일가가 우리들에게 게 가져다준 상처이며 비극에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참을 말이 없던 할머니는 이곳 남한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고 하면서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쓰고 땔 걱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보지도 못하던 이름도 알 수 없는 과일이 없나, 쌀은 정부에서 매달 꼬박 꼬박 집까지 가져다주지, 생계 지원금도 날짜 맞춰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오지,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지, 반찬은 복지관과 교회에서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들 생각이 더 나는 지도 모릅니다.

 

할머니는 의자 가까이에 있는 살구나무를 보면서, 철따라 갖가지 꽃들이 피고 앵두와 살구들이 익어도 여기는 누구 하나 따먹지 않는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정말 살구나무를 올려다 보니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살구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져도 누구하나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살구 한줌을 주어 할머니와 나눠 먹었습니다.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달콤하고 맛있었습니다. 노란 살구를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어머님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곳 남한에 도착하자 인차 어머니를 모셔 왔더라면 지금도 살아 생존하고 계실지...

 

살아생전에 이 좋은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 한번 누려보고 하늘나라로 가셨더라면 원이 없었을 것인데... 이렇게 앉아서 살구를 나눠 먹을 수 있을 것인데...다시 한 번 후회 했습니다. 어머니! 지금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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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군님의 댓글

공산군 작성일

참 좋은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지나온 추억이 가슴아프게 떠오릅니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잘살았음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좋을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