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작가 림일
- 2010-10-14 13: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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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황장엽 선생은 해마다 우리 탈북자들의 송년회에 와서 "고령인 내가 이번이 정말 마지막 송년회일 수도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진한 감청 정장 차림으로 얼굴에 주름살 깊이 팬 노학자가 청중을 향한 연설만큼은 언제나 기력과 열정이 넘쳐 보였다.
평생토록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 배불리 못 먹고 사는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걱정할 때는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 흐느꼈고, 무능하고 잔인한 독재자 김정일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에는 두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매년 송년회 연설에서 눈물과 분노의 감정으로 청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황 선생님은 가히 철학자였고 우리들의 참스승이었다. 그의 훈화는 우리 탈북자들이 한시도 헐벗고 굶주리는 고향 땅을 잊지 말고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라는 고귀한 지침이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시구나. 암! 그래야지. 통일되는 날 황 선생님 모시고 우리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우리를 비난했던 노동당 간부들이 정신이 뒤집히도록 보란 듯이 보무당당히 말이야' 하는 생각에 그의 말을 흘려들은 적도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황장엽 선생의 별세소식에 분향소를 다녀온 엊그제 하루 종일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작년 논현동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렸던 2009 탈북자동지회 송년회가 정말 마지막이 됐다.
자유 남한에 와서 북한의 암살과 테러 위협은 물론이요 지난 좌파 정권의 방해에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북한 민주화와 김정일 독재정권 반대 투쟁에 온몸을 태우신 선생이셨다.
항상 오늘이 생의 최후라고 생각하고 강철의 의지로 사셨던 분이다. 함께 있을 때 미처 몰랐던 그분의 위대함을 영정 속에서 보았다. 우리는 너무나 큰 분을 보냈다. 세계 유례없는 북한의 김씨 왕조 3대 세습을 온몸으로 항거한 통일 애국자를 말이다.
아! 황장엽 선생님! 우리 2만 탈북자들의 정신적 지주이고 아버지였던 당신의 자리를 이제 누가 지켜주겠습니까. 우리에겐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울지 않겠습니다. 일어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지 못한 통일 조국의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꼭 봐주십시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부디 편히 쉬십시오.
분단 조국에서 한 떨기의 비운의 꽃으로 지셨지만 통일 조국에서 부디 만발하십시오. 당신의 그 위업과 정신을 우리가 굳세게 이어가겠습니다.
-조선일보 (2010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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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님의 댓글
박경원 작성일구구절절 맞는말씀입니다. 오늘은 저도 참 슬픕니다. 힘내십시요, 죽음을 뚫고 남한에오신 귀한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