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동신문, 中경제 극찬… '개혁·개방' 시도하나, 시늉하나
  • 조선일보
  • 2010-09-04 09: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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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자 노동신문 사설… "中, 등소평 이론 통해 비약적 발전 이룩"
訪中 때 중국측 발표… "김정일이 개혁·개방 언급"
시장경제 달갑지 않지만… 中 압력에 '성의' 표시 "개혁·개방 수준 놓고 심각한 고민할 듯"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 성과를 평가하는 사설에서 중국의 경제 발전을 극찬하며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이론'을 적시했다.

신문은 이날 "오늘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나라의 번영을 담보하는 비약적 발전이 이룩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 중국 인민들은 등소평 이론과 세 가지 대표 중요 이론, 과학적 발전관의 기치를 내걸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이고 있다"고 썼다. 여기서 '등소평 이론'은 중국식 개혁·개방의 밑거름이 된 이론이고, '세 가지 대표론'은 공산당이 자본가 계급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北 나선시장의 웃음… 북한 나선시가 2일 중국 창춘(長春)에서 훈춘(琿春)의 중롄(中聯)해상운송공사와 합작, 나진항을 이용해 컨테이너 운송선을 운항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체결 뒤 김수열 나선시장(왼쪽)이 리룽시(李龍熙) 연변조선족자치주장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북이 금기시해 왔던 '개혁·개방' 개념을 노동신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런 성의 표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국으로부터의 압박이 강력했음을 짐작게 한다. 안보 부서 당국자는 이번 북·중 정상회담 당시 "중국은 지난 5월 회담 때보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더 강도 높게 요구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은 어떤 식으로든 개혁·개방 시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우회적으로 개혁·개방을 촉구했지만 이번엔 후진타오 주석이 "경제 발전은 대외 협력과 분리될 수 없다"며 요구 강도를 높였다. 또 5월 중국측 발표에는 김정일이 직접 '개혁·개방'을 언급했다는 대목이 없었지만 이번 중국측 발표문에는 김정일이 중국의 발전이 '개혁·개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직접 언급한 것으로 돼 있다.

그동안 김정일은 '개혁·개방'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뒤 "개혁·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고 서울에 가면 적어도 정부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했었다. 당시 김정일이 어떤 표현을 써가며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김정일은 개혁·개방이란 말을 남한의 흡수 통일전략으로 판단하고 있다"(정보 당국 전 간부)는 설명이다. 한기범 전 국정원 북한 담당 차장의 박사 논문에 따르면 김정일은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우리 당과 인민은 결코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지 않을 것"(1998년 5월), "개혁·개방은 망국의 길이므로 절대 허용할 수 없다"(1999년 1월)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정일도 한때는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2001년 상하이 등을 둘러보고 "천지개벽"이라고 말한 뒤 2002년 신의주특구와 개성공단 등을 개방했고 2003년 시장을 확대 개편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통제가 잘 먹히지 않는 '시장세력'(시장에서 돈을 번 주민)이 등장하자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

지금 김정일은 후계 세습을 앞두고 체제 안정이 가장 시급하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민심을 달래려면 중국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공짜는 없다'는 입장이다.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를 보면 이번 북한 수해 때 중국이 지원한 현금은 미화 5만달러(약 600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 요구대로 개혁·개방에 대한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중국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란 관측이다.

후계자 공식화를 앞두고 주민들에게 후계자가 개혁·개방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줄 필요도 있다. 반면 개혁·개방은 주민 통제를 어렵게 만들어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박사는 "김정일은 개혁·개방의 수준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며 "중국에 나선항이나 청진항 사용권을 넘기거나 일반 주민 접근이 어려운 국경지대에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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