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필(도명학)
- 2010-08-07 12: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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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어느 방송인의 초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
북한을 경험한 탈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북한학을 전공하고 방송도 그 분야를 취급하지만 북한은 계속 생소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평양에도 가보고 금강산과 개성에도 수차례 가보았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의문점이 더 커진다는 것이었다.
북한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을 가 생각된다. 북한을 이념의 잣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념의 잣대로만 바라본다면 북한을 이해하는 것이 별로 복잡할 것도 없다.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그뿐이다. 북한사람은 모두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서 처형 및 처벌대상이므로 화해니 협력이니 하고 입씨름할 필요도 없다.
한걸음 양보하여 바라본다면 엘리트 집단은 모두 인민을 억압하는데 종사하는 독재집단이므로 타도하고 일반주민은 해방하여야 할 대상이 된다.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북한사회 모든 분야에 대한 이해가 여기로부터 출발한다면 단순하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북한문제다.
본인은 여기서 지난시기 남한에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반공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반공교육은 북한사람을 모두 얼굴이 빨갛고 이마에 뿔이 달린 마귀로 교육했다. 말하자면 북한사람 모두를 인간다운 모습은 없고 오직 “공산혁명”만 부르짖으며 남침 기회만 노리는 악당으로 인식케 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 후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제는 남한의 누구도 북한사람이 이마에 뿔 달린 마귀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던 반공교육 때문에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다녀왔고 북에서도 남한에 왔다 갔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주민과 함께 일도 해보았다. 탈북자도 2만 명을 돌파했다. 북한에도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다.
반공교육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했을 뿐 모두 근거 없는 거짓선동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것이 지나쳐 독재를 그렇게도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오히려 북한의 선군독재를 은근히 감싸는 친북세력으로 바뀌었다.
한편 반공교육의 후과는 남한사회에 새로 발붙인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빨갱이” 물이 빠지지 않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경계하고 있다. 위장탈북으로 국내에 침투한 간첩사건이 한 두건 터질 때마다 혹은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건이나 천안함침몰사건 같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직장사람들이 주는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퇴직하거나 당치도 않은 이유로 “권고퇴직” 당하는 탈북자들이 생겨난다.
탈북자의 취업실태가 열악한 이유를 능력부족이나 건강상태, 문화차이, 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다는 북한사람에 대한 편견이 더 문제다.
일부 탈북자들은 차라리 “중국조선족”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탈북자는 북한사회에서 진짜 독재의 맛이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한 산증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얼마나 허황하고 망국적인 정책인지 굶주림을 통해 절감한 사람들이다.
굳이 반공의식을 가지고 경쟁하자면 남한사람들에 대비할 바가 아니다. 일부 남한 사람들이 탈북자를 편견과 의심의 눈초리로 힘들게 하는 그 시각에 한편에선 북한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 걸고 북한내부에까지 들어갔다 오는 탈북자들이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려면 북한사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엘리트계층에도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과 양심적인 사람이 따로 있다.
일반주민들 속에도 악한 사람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 따로 있다. 독재정권에 종사해도 악한 사람은 악행을 즐겁게 할 것이고 양심적인 사람은 특별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하층에 살던 사람이 간부가 되더라도 천성이 악하면 악행을 한다.
북한에 대한 파악을 그 땅에서 사는 사람을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해야 정확한 판단과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북한실상을 전하는 강연들에 초청되어 가다 보면 가끔은 그 강연을 통일교육이나 안보교육이 아닌 반공교육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한번은 어느 고등학교에 갔는데 나이 많은 교장선생님이 강연시작을 알리면서 “지금부터 북한에서 살다 온 강사님의 반공교육이 있겠습니다.”하고 소개하여 당황스럽고 미묘한 감정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소개가 그러하니 본인도 서두에 “북한사람을 처음 보니 어떤가요? 제 얼굴이 빨갛지도 않고 뿔도 없지요?” 하고 말하고야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편향 된 반공교육의 연장선에서 북한을 볼 때가 지났고 그 후과를 정리해야 할 시대가 분명하다. 북한문제와 통일안보문제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사회전반에 구축하는 것이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국론분열을 막는 중요한 조건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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