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보내는 일본 납북자 가족들 편지
  • freenk
  • 2010-11-01 10:09:03
  • 조회수 : 2,591
마쓰모토 루미코 언니인 히라노 후미코

우리 여동생 마쓰모토 루미코는 1978년 8월 12일 일본 가고시마 해변에서 납치를 당했습니다. 당시 24살이었지만 지금은 벌써 3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족들은 매일 매일 마쓰모토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루미코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언니란다. 너가 잘 있는지 다들 걱정을 하고 있다. 너는 건강하고 명량한 성격이기 때문에 거기 사람들과 즐겁게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고향에 오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한으로 남는다.
 
벌써 32년 지나고 아버지는 돌아가고 어머니는 너의 귀국을 기다린다. 루미코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언젠가 꼭 일본에서 만날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아무걱정 말고 귀국하는 날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우리 가족 모두 힘을 내서 살아가자.
 
다시 추운 겨울이 오면서 북한의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되는데 지금 몸 건강하게 밥은 잘 먹고 있는가? 아픈 곳은 없는가? 치료는 받을 수 있는가? 건강한가? 이게 제일 걱정이다. 거기라고 별다른 곳이 있겠는가? 하지만 앞으로 무엇인가 큰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너의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위 깊게 보고, 그때를 위해 준비를 해라.
 
일본에 귀국하면 온천에 가자. 너와 함께 천천히 몸을 뜨겁게 하며 자유를 맛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일본 사람들을 너의 귀국을 희망한다. 일본을 힘내게 하기 위해서 절대로 귀국해야 한다. 기다린다.
 
언니부터..

 
마츠키 가오루 누나인 사이토 후미에

가오루 후미누나란다. 30년이면 목소리도 얼굴도 잊어버릴 것이라 생각한다. 누나는 지금 가오의 가까운 장소까지 올 수 있고, 지금 한국에서 가오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갔지만 어머님은 너의 귀국을 기다리며 병원 침대에서 너의 사진을 보며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어머님이 건강이 좋았을 때는 가오루가 왔을 때 "잘 왔다"고 말하기 위해 연습도 열심히 했고, 너가 좋아하는 일본식 묵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에 이 후미누나가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꼭 기다려 달라.
 
부모님과 형제들이 사이좋게 살던 시절이 그리웠다. 빨리 보고 싶다. 가오루의 귀국을 기다린다. 비록 북한생활이 어려워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꿈은 실현된다고 믿으며 일본에 귀국하는 것 만을 생각해야 한다.
 
힘내라 가오루!
 
어렵겠지만 만날 때까지 나는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기다리겠다. 우리 어머니도 가오루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갈 수 없다고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다. 어머님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가오루의 눈물이라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 얼굴을 생각하며 하루 빨리 일본에 올 수 있는 날을 희망해야 한다. 우리도 기다린다.

힘내라 가오루야 ....

 
이치가와 겡이치 부부

1978년 8월 12일 납치된 이치가와 슈이찌 형입니다. 가족들 모두 슈이찌가 건강하게 오기를 기다립니다. 식량도 원료도 없는 나라는 당신들의 나라 북한 밖에 없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모든 인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빨리 현재의 생각에서 깨여나야 합니다.
 
핵실험, 미사일 실험에 돈을 주입해서 인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지 않는 이런 정치를 없애지 않으면 인민모두가 아사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당신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원하고 있습다. 북한주민들 용기를 가지고 현재의 지도자들과 싸워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생 이치가와 슈이찌에게 슈이찌 잘 있지? 형이란다. 슈이찌와 강제로 헤어진 지 32년이다. 정말로 길고도 고달픈 세월이다. 슈이찌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즐거웠던 그 시절, 갑자기 슈이치가 북조선에 납치당한 후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다 해도 즐거움 느낄 수 없다.
 
납치를 지령한 자를 슈이치는 기억하는가? 슈이치와 함께 마셨던 맥주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몇 번식이나 이렇게 형제간에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형은 그때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유감스럽고 분하다.
 
우리 집 옆에 있는 사꾸라(벚꽃) 나무도 많이 컸고, 매년 많은 사꾸라 꽃이 핀다. 사꾸라 꽃도 슈이치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으며, 슈이치에게 아름다운 꽃을 보이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일본에 진입하여 일본인을 납치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일본 국민들도 세계 각국의 인민들도 북조선의 행위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납치를 지도한 놈들에게 꼭 천벌이 내려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자유 없고, 항상 감시당하는 생활, 형은 극한의 땅에서 생활하는 너를 보며 마음이 찢어진다.
 
하루 빨리 귀국을 시켜 따뜻한 고향에서 생활하게 해주고 싶다. 어떤 상황 안에서도 절대로 힘을 놓아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힘을 내고 있으면 귀국의 날이 올 것이다.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한다.
 
힘내라 슈이치!

 
슈이치 형수

저는 1978년 8월 12날 납치된 이치가와 슈이치 형수이다. 불가사의한 생각이 드는데 바로 25년 전 슈이치 어머님께서 한국 군사분계선인 3.8선에 와서 슈이치 이름을 부른 것이 생각난다. 25년 전 어머님 나이는 지금 저의 나이이다. 오늘은 어머님이 오시지 못해서 어머님의 마음을 포함하여 슈이치에게 호소한다.
 
10월 22일 우리 슈이치 56살 생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23살에 납치당한 슈이치 밖에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56살이 된 슈이치 지금 어떻게 지내는가? 아들이 2명 있다고 들었는데 다들 잘 있는가? 32년 전에 슈이치가 쓰던 옷, 책고지, 그리고 커피 잔 같은 것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빨리 그때를 기억하여 그것을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슈이치의 조카인 쇼이치도 지난 번 판문점을 방문해 삼촌 이름을 크게 불렀다. 우리 쇼이치도 아직 독신이지만 미국나사 캐내디 우주센터에 갔다 오면서 삼촌 빨리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정말로 부모, 형제 조카까지 이렇게 슬픈 마음을 주는 북한 지도자들의 행동에 대해 용서 할 수 없다.
 
슈이치도 인내 한도를 넘었을 줄 알지만 우리들도 열심히 일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기에 좀 더 기다려 달라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오래동안 찾지 못해서 미안하다. 북조선은 일본 보다 아주 극한의 땅이라 듣고 있다. 극한의 땅에서 몸만 조심하고 절대 극복해야 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마음은 뜨거운 바위라도 통한다’는 일본속담이 있다. 그리고 겨울이 있으면 봄이 오듯이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힘을 내라! 기다리고 있다

 
마츠모토 교코의 오빠인 마츠모도 하지메

한국에 온 것은 두 번째지만 이렇게 라디오를 통해 북한에 호소하는 것은 처음이다. 거기에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아직도 33년 동안 구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교코도 자기 뜻대로 자유가 없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어 불쌍하다.
 
지금 당장 구출할 수 없지만, 우리 교코가 좋아했던 다깡(단무지)을 어머님이 만들려고 했지만 지금은 연세가 있어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 11월 2일 날에는 휴전선 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그 때 그곳에 가서 다시 한 번 마음가짐 하겠다. 가족 그리고 친구 모든 사람들이 교코가 오기를 기다린다. 몸조심하고 힘을 내여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 절대로 꼭 구출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

 
다구치 야에코 오빠인 이이즈카 시케오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우리 야에코, 그리고 야에코를 알고 있는 북한 주민들, 우리 일본을 위해, 일본사람들을 위해 야에코의 정보를 보내주세요. 일본인 납치 피해자 및 한국인 납치 피해자 모두를 조국에 보내면 북한도 그만큼 부유해지라 약속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나라들과 세계 각국의 나라들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 일본과 한국 인민들 바램입니다.
 
우리 다구치 야에코, 북한에서 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너의 사랑하는 딸 아야에게는 지난달 아이가 생겼다. 우리 아야도 야에코 엄마랑 닮았는데 지금 여 손자도 야에코 너를 많이 닮았다.
 
너하고 헤어진 지 33년이 됐기에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너를 만나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너가 북한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던 김현희(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를 알지? 그를 만나서 너랑 같이 생활했던 모든 것을 전해 들었다.
 
김현희로부터 아주 사이좋게 친 자매처럼 지냈다는 말을 듣고 많이 안심했다. 김현희와 일본에서 함께 식사도 했다. 제일 큰 오빠인 나를 포함한 형제 6명 잘 있으며,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납치문제를 도와주는 단체들과 일본 정부도 이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
 
너무나 긴 세월이 지나다 보니 걱정되는 것은 너의 건강과 마음 상태다. 희망을 버렸는지? 그러면 안 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 너무 오래된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구출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니깐 조금 더 기다려서 인내를 해 달라.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북한주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가족들의 정보를 아시는 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보내주세요. 그 정보가 있으면 우리가족들이 일본까지 귀국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꼭 서로 정보 교환을 하며 유익한 정보가 발견되면 우리에게 보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정리 : 장성근 기자 nihao55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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