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아버님.... 이제 편히 쉬세요
  • 김혜숙
  • 2010-10-16 17:13:11
  • 조회수 : 2,297

부모님이 떠나신 이후로 가장 가슴 아픈 비보를 전해 들었다....
황장엽 아버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참말인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자라오면서 부모님을 통해서 황장엽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이를 스승으로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가까이 모시고 일할 기회가 있었던 어머니는 선생님을 높이 존경하여 말씀 하군 하셨다.
“최고인민회의 의장이신 황장엽선생님은 김일성종합대학 초대 철학 강좌장이며 학자 일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히시고 개인의 유한한 생명을 인류의 무한한 생명에 결부시켜 인민의 영원한 번영 발전을 위한 길에 한 몸 바치신 유일한 정치철학의 대가이시다 ...

황장엽선생은 일부 편협한 아첨군 간부들과는 달리 김일성 김정일 앞에서도 자기의 의견을 숨김없이 말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셨다. 국제비서로서 세계정세도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아주 융통성이 있고 가슴이 넓은 분이셨다. 부총리들은 나라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은밀한 얘기를 황비서에게 털어놓고 안타까운 심정들을 토로했지만 다른 간부들처럼 수령에게 일러바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술을 안 드시는 만큼 생활에서도 턱없이 깔끔하고 소박하고 겸손하셨다. 황선생은 이 나라가 믿고 의지 할 탁월한 영도력을 갖춘 단 한분의 인재이셨다.“
라고 감회깊이 회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국내외에서 수령의 것이라 떠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이 가장 총애하던 황장엽 선생님의 인간중심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어린 맘에도 우리가 그렇게 신처럼 모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 대해서 한동안 회의심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말뿐이고 내부적으로는 인간중심의 철학을 거부하였고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부정 했다 마르크스가 무산계급의 독재, 즉 계급주의를 주장했다면 김정일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표방한 집단주의 적 독재를 대폭 개악하고 극도로 변질시켜 “수령 독재”라는 개인독재체제를 내 놓았다.

김정일은 "진보적인 혁명이론은 탁월한 수령에 의해서만 창시 됩니다"라는 “명제“ 로 당권을 장악하였다. 결국 주체사상의 핵심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 뿐이라는 “유일적 지도체제”를 주장하면서 수령의 존재를 신격화 하는데 몰두했으며 드디어 “수령이 없으면 지구도 없고 인민도 없다” 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변질되었고 국민을 수령이라는 한 개인의 노예로 만들었다.

이윽고 선생님은 주체사상세미나를 열고 소장의 직함을 맡게 된 계기에 여러 나라에 주체사상연구소를 설립하고 방문하면서 인간중심철학의 진리가 국내외에서 김일성부자의 개인우상화와 북한의 대한 허위선전에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숨은 노력을 기울여 오셨다. 그래서 다른 나라 학자들에게는 조선의 주체사상을 그대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자기민족과 각 나라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발전 시켜야 한다고 강조 하셨다.

황선생의 가족은 고지식한 남편과 아버지 때문에 언제나 힘든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하지만 황장엽 선생님의 이론에 심취된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주체사상과학토론회 신봉자들이 보내오는 막대한 회비와 선물에 대해서도 일점의 녹도 취하지 않고 국고에 넣으시고 국민생활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으므로 김정일은 매우 흡족해 하였다고 한다.

1990년 대 후반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고난이 시작되었다. 황장엽선생님은 인민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에 바친 땀과 눈물이 마를 사이도 없이 인간중심철학의 심오한 진리가 부정되는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신다. 인민생활은 안중에 없고 전쟁준비에만 미쳐 날뛰는 정부를 향해 중국의 메시지를 알리고 개방할 것을 권유한 후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직감하셨다. 드디어 황장엽 선생님의 충격적인 탈북소식이 쉬쉬하며 온 나라에 전해졌다

내가 탈북 하여 남한에 입국한지 2년이 되던 어느 날 나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 왔다
지난해 10월 10일. 아 그러고 보니 세상엔 우연이란 없나보다. 꼭 1년 전 오늘이다.
소설 “인간이고 싶다”를 탈고하고 그이를 만나 뵙게 되었고 추천서를 받았다. 그날 그이는 내 가슴에 남아 잊혀지지 않을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셨다.
“두려워 말라.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한다.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소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운명에 대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맡기고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겸허히 맡기려고 한다. 세월이 지나 북한이 잘 사는 날이 오면 고난의 날에도 양심적인 지성인이 있었다고 역사가 회고 할 수 있는 그 속의 한사람이기 만을 바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빨리 서둘러라. 채찍질 하여라”

말씀 마디마다 힘 있고 신념이 묻어나고 있었다.
선생님은 북한의 최고위직에서 만민의 존경을 받으며 수령의 반열에 오른 정치가로서 자신의 성공과 명예로 호식하고 안위하며 최상의 복을 다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직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녕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결심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의 결단이 한날 속된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의 부름에 순응하는 것이며 조국통일의 제전(祭典)에 바치는 헌신이라는 철저한 신념 하나로 그토록 사랑하는 처자식을 사지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북한을 국민 모두에게 자유와 선택의 기회가 평등하게 다가오는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김정일 정권은 영원히 계속 될 수 없고 남쪽으로 온 탈북자들이나 북한에 남아있는 동지들이나 북한의 개혁개방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신심에 넘쳐 말씀하셨다.

우리 탈북자의 삶이 후대 앞에 떳떳할 수 있는 명분을 깨우쳐 주셨다. 그이는 젊은이들도 보지 못하는 균형감각과 틈새를 읽고 계셨다. 그분은 벌써 30년의 앞을 내다보고 계셨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세습으로 이어지는 독재를 청산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하시고 북한주민에게 평화로운 조국을 찾아 주기 위해 재능 있는 인권운동가들을 직접 발굴하고 교양 육성하는 것은 탈북자 단체들의 최우선의 과업이라고 하시고 국내외에 인권단체들과도 적극 협력하여 나가야 한다. 탈북자들이 지금은 조금 어렵다 해도 각오를 가지고 공부를 해서 3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시고

또한 망명 전 부터 집필하시던 ‘인간중심철학의 몇 가지 문제‘ 로부터 시작하여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황장엽의 대전략‘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인생관‘’논리학‘ ’전쟁하지 않고 김정일을 이기는 법‘등 수많은 책을 서술하였고 집필을 시작하시면 3개월 만에 장편으로 탈고 한 글도 있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에도 식음을 전패하시고 매일 두끼로 끼니를 정하시고 점심을 거르시며 젊은이들에게 신념과 진리를 심어 주시기 위하여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이신 황장엽 선생님의 노고를 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공존하는 명백하고 위대한 진리인 인간중심철학이론을 북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한의 대학생들에게 심어 주셨고 필승불패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전략에 대하여 열정에 넘치시어 강의 하셨다.

그런데 이제 그분이 우리 곁에 없다니? 비보를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 늘 자신감에 넘쳐 계시던 그 모습 .... 그분의 솔직하고 맑은 눈동자. 정의감에 불타시던 꼿꼿한 자세.... 목숨을 위협하는 모진 환경 속 에서도 태연히 서계시던 모습 너무도 생생한데....... 대체 왜,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

누구나 감히 견줄 수 없는 위대한 인간, 위대한 사상과 철학의 대가에게도 가고 싶은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으니 그토록 가보고 싶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랑하는 가족을 차디찬 북녘 땅에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을 착한 스승.

비록 가족들이 옆에 없지만 탈북자 동지들과 따뜻한 남한의 형제들이 곁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이제 또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이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시더니.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 탈북민들의 아버님으로 정신적 지주로 되어 주시더니

잘 있으라 ! 전화한통 기별 한마디 없이 찬바람 부는 세상에 부모 없는 우리 탈북자들을 남겨두고 홀로 조용히 떠나신 황장엽 아버님이 너무너무 무정하고 야속하셔서 가슴이 찢어진다.

....북받치는 오열을 삼키며 애석한 마음
하얀 국화 꽃송이에 담아 그이 가시는 길에 소복이 깔아 드리고
소중히 배웅해 드린다

이제 그만 이승에서 보내신 피곤하고 한 많은 인생 놓아버리시고 ...부디 미움없는 평화의 낙원에서 편히 쉬소서....
당신이 못 다 이룬 북한 민주화의 꿈. 북한의 봄을
당신이 사랑하던 선량한 후대들이 반드시 찾을 것 입니다 .
그리고 가족에게도 전해 드릴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 했다고. .... 그리고 사랑했다고.

황장엽 아버님. 당신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0년 10월 10일 소설 “인간이고 싶다” 저자 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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