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본 5.18 광주폭동
  • 광복군
  • 2011-11-07 20:23:49
  • 조회수 : 1,729
김정일이 본 5.18 광주폭동

김정일에게 광주폭동은 어떤 의미였던가? 광주폭동만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버이 수령의 후계자 지위가 불분명했을 때, 숙부 김영주나 이복동생 김영일, 김평일을 한번에 지위를 역전시킬수 있지 않았을까? 김정일은 끝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후계자지위가 불확실할 1980년 무렵까지만 해도 상당히 초조하고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어버이 수령에게 큰 선물을 해주겠다.
아쉬운 미완의 혁명
영웅적 광주 인민봉기

김정일은 광주폭동을 미완의 혁명, 영웅적 광주인민봉기라 하였다. 북괴 역적 김정일은 왜 5.18 광주폭동을 아쉬운 미완의 혁명이라며 애통해했고, 영웅적 인민봉기라고 예찬하였던가. 그리고 광주폭동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의도가 무엇인가?
더구나 5.18 직전에 어버이 수령에게 큰 선물을 해주겠다는 김정일의 발언의 의미는 무엇이던가?

이런 자들과는 절대 타협할수 없다던 김대중의 선동발언이 하나 터지자마자 인민군 특수부대원 600~800여 명을 잠수함에 태워서 내려보냈고, 이들의 거사는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5월 27일이 되자 사퇴는 악화되었고 일부 인민군은 기민하게 빠져나갔지만, 그렇지 못한 인민군들은 광주 시민군 폭도들과 함께 장렬하게 산화하려고 화순 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까지 탈취해다가 전남도청에 설치하는 광기까지 부렸다. 그러나 폭동은 결국 진압되고 만다.

김정일은 광주폭동의 실패를 크게 슬퍼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김정일의 복수심은 곧 전두환이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 중 아웅산 묘소에 참배가는 정보를 입수하고, 폭탄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 마저도 예행연습 때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김정일과 전두환의 전쟁은 이렇게 김정일의 철저한 실패로 끝이 났다.
단순히 남한 내에서 발생한 폭동인데 김정일에게 어떤 의미였길래 김정일은 5.18을 두고 그토록 미완의 혁명이라 절규하고 영웅적 광주인민봉기라 했던가? 그리고 광주폭동의 진압이 김정일에게 어떤 의미기에 복수를 다짐하게 했던 것인가?

현하 대한민국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왜곡, 날조, 미화되었으나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의 침투와 친북 세력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실, 그리고 폭동 직전 5월 17일 새벽에 김대중이 이런자들하고 절대 타협해서는 안된다 고 선동했던 사실, 그리고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지상 서울역 광장을 점령한 친북좌파 성향 대학생 10~15만 명이 서울역 주변 광장을 점거하고 상가와 노점상과 차량,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부렸던 사실은 철저하게 축소, 은폐되어오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후계자 지위가 불확실했던 김정일은 후계자 지위를 공인받고 싶어서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어버이 수령에게 바치려던 김정일의 큰 선물은 어이없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정일은 사람의 목숨 하나 알기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키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양심이 마비된 인간이다. 반드시 저 파렴치한 독재자, 살인광 김정일을 체포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고, 5.18 광주폭동 때 인민군을 내려보내 사태를 확산시킨 것에 대한 이유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