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사실혼 사실무근 증언
- 도장산
- 2010-11-02 10:30:59
- 조회수 : 3,046
황장엽 사실혼 사실무근 증언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68) 씨가 고인의 장례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김 씨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북사업가 또는 공작원이라는 풍설에 대해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보기관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기독교인이다.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갖고 활동했다. 당초 기독교방송국을 평양에 세우려는 게 우리 목표였다”고 그간의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신문은 1일 황 전 비서의 망명 일화와 김 씨가 수양딸이 된 배경,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아들에 대한 내막을 보도했다.
김 씨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북사업가 또는 공작원이라는 풍설에 대해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보기관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기독교인이다.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갖고 활동했다. 당초 기독교방송국을 평양에 세우려는 게 우리 목표였다”고 그간의 의구심을 털어놓았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신문은 1일 황 전 비서의 망명 일화와 김 씨가 수양딸이 된 배경,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아들에 대한 내막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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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한국
김 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안에서 어른을 만날 때 직원을 입회시켰다. 내가 '부녀간에 만나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 뒤로 둘만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청 때문에 필담(筆談)으로 대화했다. 한번은 어른이 '자유를 달라'고 썼다. 그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면서 과거 정부 때 황 전 비서가 국정원에 의해 통제받았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김 씨가 황 전 비서를 알게 된 것은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 나와 있던 북한여광무역 사장이었던 김덕홍 씨를 통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황 전 비서가 망명하기까지 두세차례 만남이 이어졌다.
황 전 비서는 남한 망명 전에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 것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어른은 '나는 밥을 먹고 국제적으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내 주체사상이 수령독재에 이용되고 있다'며 학자적 양심으로서 괴로워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하지 않고 북한 내부에서 개혁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선 “(북한은) 함께 개혁을 모의할 당 간부들을 만날 수 없다. 서로 한자리에서 대면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체제”라며 “김정일은 각자에게 팩스로 지시하고 보고받는다. 이대로 안에서 죽을 수 없다는 강박감이 어른에게 있었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 망명 직전 김 씨는 자신의 모든 행적이 국정원에 의해 도청,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황 전 비서의 망명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이 추진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스스로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을 느끼고 망명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 전 비서가 사선을 함께 넘었던 김덕홍 씨와 결별했던 배경에 대해선 “어른은 학자였고 김덕홍은 행동파였다. 김덕홍은 '여기서는 자유가 없다. 미국으로 망명가자'고 했을 정도다. 당시 국정원에서는 둘이 붙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른에게 '당신이 원하는 철학연구소를 내줄 테니 김덕홍과 떨어져라'고 했다. 그 배경을 알고서 김덕홍이 원망했다”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또 황 전 비서의 사망으로 언론에 알려진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 씨가 황 전 비서를 알게 된 것은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 나와 있던 북한여광무역 사장이었던 김덕홍 씨를 통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황 전 비서가 망명하기까지 두세차례 만남이 이어졌다.
황 전 비서는 남한 망명 전에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 것에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어른은 '나는 밥을 먹고 국제적으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내 주체사상이 수령독재에 이용되고 있다'며 학자적 양심으로서 괴로워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하지 않고 북한 내부에서 개혁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선 “(북한은) 함께 개혁을 모의할 당 간부들을 만날 수 없다. 서로 한자리에서 대면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체제”라며 “김정일은 각자에게 팩스로 지시하고 보고받는다. 이대로 안에서 죽을 수 없다는 강박감이 어른에게 있었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 망명 직전 김 씨는 자신의 모든 행적이 국정원에 의해 도청,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황 전 비서의 망명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이 추진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스스로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을 느끼고 망명을 후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 전 비서가 사선을 함께 넘었던 김덕홍 씨와 결별했던 배경에 대해선 “어른은 학자였고 김덕홍은 행동파였다. 김덕홍은 '여기서는 자유가 없다. 미국으로 망명가자'고 했을 정도다. 당시 국정원에서는 둘이 붙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른에게 '당신이 원하는 철학연구소를 내줄 테니 김덕홍과 떨어져라'고 했다. 그 배경을 알고서 김덕홍이 원망했다”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또 황 전 비서의 사망으로 언론에 알려진 사실혼 관계의 여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 씨는 “이 소문은 원래 김대중 정권 때 한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썼다. 국정원 내 안가에서는 모든 게 통제가 된다. 24시간 관리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소문의) 출처는 국정원 내부 같았다. 국정원 담당자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이렇게 나오면 참지 않겠다'고 난리쳤다. 어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악의적으로 유포한 것”이라며 “만약 아들이 정말 있다면 우리에게는 돌볼 책임이 있다. 어른을 부검할 때 구강 내 점막을 떼어놓았다. 언제라도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다”고 사실혼 관계는 낭설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소문의) 출처는 국정원 내부 같았다. 국정원 담당자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이렇게 나오면 참지 않겠다'고 난리쳤다. 어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악의적으로 유포한 것”이라며 “만약 아들이 정말 있다면 우리에게는 돌볼 책임이 있다. 어른을 부검할 때 구강 내 점막을 떼어놓았다. 언제라도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다”고 사실혼 관계는 낭설이라고 강변했다.
뉴스한국 고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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