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민, 우린 희망이 없어요
  • freenk
  • 2010-11-12 20:13:31
  • 조회수 : 2,690
[화폐개혁 이후 1년]

오늘부터 본방송은 뉴욕타임즈가 의뢰하고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마련한 8명의 북한주민 인터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이 인터뷰는 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나왔던 문자그대로의 '북한주민 인터뷰'로 이름과 거주지 등은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첫번째 인터뷰-
                              김 상 철
 
"항상 물이 얕은 곳으로 건너야 하니깐 이동을 자주 못해요.
그 구간으로 철저히 가야 합니다. 병사들도 알아요.
예컨대, 오늘 저녁에 물건이 확보된다면 한번에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확보된 다음 먼저 군대에 가서 밀수할 사람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군대에서도 금속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죠.
이것을(북한) 사람들은 '대거리' 라고 불러요.
중국에서 혹은 군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매매할 사람을 물색해서 있으면 그 다음에 알려줍니다. 그럼 오늘밤에 매매할 수 있는지,
만나서 돈을 줄 수 있는지,
은 외상인지 확인합니다."
 

질: 어디서 잡히셨나요?
답: 마을에서 많이 잡혀요. 두만강에서 넘어온 후에 가장 짧은 거리에  있는 마을에서요.  
 
질: 얼마나 자주 밀수 를 하셨나요?
답: 물건 있으면 일년에 한번 할 때도 있고 , 일단 물건이 있어야 합니다.  
 
질: 그럼 중국은 얼마나 자주 왔다 갔다 하시나요?
답: 우리는 두마강를 왔다 갔다 해요. 그러나  작년부터는  더 힘들어 졌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 식량사정도 안  좋아지고 , 금속도 없고 중국이 원하는 물건이 없는거죠. 그래서 여자들 25명을 중국으로 나가는것을 도와줬어요.  
 
질: 최근 1년 동안에는 밀수는  못하시고 여자들 나가는 것을 도와주신 건가요?
답: 네.  
 
질: 몇번 도와주셨나요?
답: 4번이요. 그러다가 감옥에도 갔어요.  
 
질: 그럼 마지막에 잡혀서 단련대에 간 건가요?
답: 단련대 1년형 받았는데, 두달만에 나왔어요.  
 
질: 탈출하신 건가요?
답: 네, 탈출해서 산에 숨어 있었어요. 불범으로 농사일 도와주고, 나무도 베고, 그러다가 중국에 갔습니다. 불법 무역도 하고요.  
 
질: 마지막에 집힌 게 언제였나요?
답: 2009년 11월 30일이요.  
 
질: 그럼 이제 (북란으로 )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요?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나요?
답: 부모님과 형제는 다 있어요.  
 
질: 형제는 몇 명인가요?
답: 형과 여동생이요.  
 
질: 그 파셨던 금속은 어디서 난 금속들인가요?
답: 전동기라든가, 변압기라든가, 기계에서요.  
 
질: 안 쓰는 기계에서 훔쳐서 판 건가요?
답: 네.  
 
질: 그럼 북한에서 제일 인기 있는 제품은 무엇인가요?
답: 화폐 교환 이후, 잘하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바로 차이가 나는데, 못사는 사람은 돈이 없습니다. 입에 풀칠할 돈도 없습니다. 지금 삶 자체가 바쁜 시기입니다.  
 
질: 그렇다면 원래 중국 제품은 잘사는 사람들만 구입하는 건가요, 못사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건가요? 
답: (화폐개혁 이후)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삽니다.  
 
질: 못사는 사람은 아예 돈이 없어 중국 제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건가요?
답: 돈이 없어서 시장에 가는 사람도 없단 말입니다.  
 
질: 그럼 화폐개혁 이전에는 어떤 물건이 제일 인기가 많았나요?
답: 땐스(티비)가 제일 인기 많았죠. 아무리 못살아도 땐스(티비)는 다 있죠. 하지만 화폐교환 이후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바쁩니다. 일두일에 한번 일요일에 시장이 열리는데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질: 11월부터 감옥에 있었고 그  다음에 산에 숨어 있었는데, 화폐개혁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잘 알고 있나요?
답: 감옥에서도 다 알아요. 감옥에서도 신문같은 쪽지는 보니까요.(지금까지) 화폐교환을 몇번 했어요. 예전 화폐교환 때, 500원짜리가 나왔는데 대단했어요.  
 
질 : 무슨 뜻인가요?
답 : 중국처럼 우리도 100원짜리밖에 없었는데, 500원짜리가 나오니 놀랬습니다. 돈이 가치가 없으면 500원 짜리가 나오겠는가 했는데 그러다가 석 달 만에 1,000원짜리가 나왔습니다.
 
질:화폐교환 이후, 왜 사람들이 돈이 없나요?
답: 화폐교환을 자주 시행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국가가 자금이 없으니 화폐교환을 자꾸 하는 겁니다. 왜야하면 잘 사는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저축을 하지 않거든요. 이제 (북한) 은행은 간판남 은행이지 일하는 직원도 안 나옵니다. 그러니깐 은행이 텅텅 비어 있어요. 은행에 돈을 맡겨야 돈이 돌고 도는데, 돈은 개인들이 다 갖고 있으니 결국 나라에 돈니 없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따내자 하니 화폐교환을 실시 하는 거죠. 화폐교환 한번 할 때 100만원 이상 합니다. 몇 십억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은행에 다 줍니다.
 
질: 한국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여자와 아이들인데 그건 왜 그런가요?
답: 나는 한국에 못 가봤으니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건 그냥 들은 소린데, 또 들어봐도 뻔하니깐 하는 말인데요. 나는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 하지만 여자들은 한국에 가야겠다고 하면 남자들이 도와주고, 돌봐주니까요.
 
질:그러면 북한 여자들은 (강을) 건너면 자기들을 돌봐줄 수 있는 남자들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도 중국 남자들이 돌봐줄 것이라 믿는 건가요?
답: 모르죠. 어쨌든 여자들이 결심을 하고 건너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나도 그렇고 다들 건널 때 목적이 있잖아요. 시집이라도 잘 가든지 돈이라고 벌든지 해야겠다는.... .(어떤 여자들은 ) 처음부터 팔려갈 것을 생각하니까요.
 
질: 그럼 여기(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가는 것을 도와줄 수 있나요?
답: (저는 ) 가망이 없었어요. 한국 가려고 많이 시도해봤지만 안 되더라고요.
 
질: 여기서 일은 하시나요?
답: 하긴 하는데요. 농촌에 가서 밖에 못하죠.
 
질: 북한 측에서 작년부터 어떤 식으로 탈북을 못하게 하나요? 국경 쪽에 군대들 더 배치 했나요?
답: 군대를 한번 이동시켜 국경에다 배치한다는 게 훨씬 더 힘듭니다.
 
질: 옛날에 비해 서 탈북이 얼마나 어려워졌나요?
답: 열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심해서 라기보다도 사회가 더 조였단 말입니다. 재작년부터 그랬습니다. 나라가 너무 못살면 밀수라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재작년부터 사회가 더 조였습니다.
 
질: 왜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셨나요?
답: 그러니깐 사람을 꽉 조여놓으면 범죄가 심해집니다.
 
질: 왜 범죄가 심해졌나요?
답: 그렇개 해야 살 수 있으니까요. 당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해야 돈이 되고, 국가에서 통제하는 것을 팔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질: 어떻게 범죄가 많아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세요?
답: 밖에 나가면 모든 게 다 범죄입니다. 뭐 범죄라는 게 딴 거 있습니까? 어린 사람이 나이 먹은 사람을 때리는 것도 범죄지, 통제하는 것을 파는 것도 다 범죄지, 그러니깐 (이런 범죄들이) 일상이 되니깐 나도 여동생이 있어 걱정이 됩니다. 2직원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9시간 노동제입니다. 그리고 3직원은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인데 1직원은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인데, 밤일 할때는 위험하니깐 여자들을 데려자 주어야 합니다.
 
질: 혹시 왜 밀수를 못하게 하는지 군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본 적 있으세요?
답: 우리 사돈의 형이 군대에 있어서 밀수를 많이 했어요. 사돈 조카는 17살부터 군대에 나갔는데, 군사복무 4년만 고생하면 (이후로) 생활은 면합니다. 우리는 8~9년입니다. 1년, 2년 지나 상급 병사되면 생활하기 낫습니다. 그러면 똑똑 한 놈들은 국사학교 가서 군관이 되고, 군관에서 소대장 되면 관할구역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제가 그 덕에 잘해 먹었는데, 2008년도에 야밤에 보니 그사람이 없고 다른 부대가 왔더라고요. 물어봤더니그 부대 어디 갔는디 행방도 모르더라고요. 3개월 후에 다시 나타낫길래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어요. 물어봐도 알려 주지는 않아요.
 
질:북한 체게에 대하여 어떻개 생각하세요? 아직까지 믿음을 가지고 계세요?
답:우리 제도요? 군재 제도요? 희망 같은 건 없어요. 뭐 뻔하잖아요. 이렇게 사는 게, 고생하는 게 몇 년째입니까? 예전에는 우리가 조금씩 미공급이 들어 왔단 말이에요. 조선에서는 국가에서 된장, 간장부터 해서 모든 것을 다 공급을 해 주었습니다. 근데 점차적으로 간장과 된장이 중단되고 (후에는) 배금도 끊었습니다. 이건 완전한 미공급 즉, 공급이 없다 해서 미공급이 되었습니다. 1994년도에 수령님 돌아가시고 95년, 96년, 97년도까지 미공급이니 사람들이 하루, 이틀 숱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그때 죽어 나간 사람들이 대부분 늙은이들과 아이들이 었습니다. 특히, 늙은이들은 면역력이 없어서 막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이들은 배를 채우지 못해서 죽었고요. 그렇게 사람들이 막 죽어나가니, 사람들은 살자고 나무껍질을 깎아 먹고, 그러니 나무도 없어지고요. 나무 송진 한번 벗겨봤어요?     
 
(다음에 계속)
 
정리 ) 한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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